좋아하는 시(詩 능선)

들꽃/정해종

능선 정동윤 2011. 9. 29. 06:39

들꽃/정해종

 

 

소리 소문 없이 들꽃 피더니

들불처럼 들판을 점렬한다

겨우내 등이 가렵던 들판

들판 폭탄 터진 자리마다

아지랑이 포연 어지럽다

멀리서 들려오는 총성처럼

내 안에 망울 터뜨린 한 송이 들꽃

이 겉잡을 수 없는 사태가

다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이유 한번 묻지 못한 채

무장해제 당하는 내 거친 욕망들

내 안의 식민정부가 들어서고

나는 들꽃의 제복을 입는다

점렴군 만세! 들꽃제국 만세!

밀항도 망명도 꿈꾸지 않겠다

미안하다 내 겨울의 동지들

나는 여기서 살아남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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