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만나고 싶은/김광규

능선 정동윤 2011. 10. 2. 11:24

만나고 싶은/김광규

 

 

모두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낯익은 얼굴들이다

내가 모르는 낯익은 사람들이 너무 많구나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은 어디였던가

병아리 떼 모이를 쪼으던 유치원 마당이었던가

솜사탕 사먹던 시골 장터였던가

아카시아꽃 한참 핀 교정의 벤치였던가

불볕 아래 앉아 버티던 봉제 공장 옥상이었던가

눈물 흘리며 짐승처럼 쫓기던 봄날의 광장이었던가

술내기 바둑을 두던 숙직실 골방이었던가

간첩을 뒤쫓으며 헐떡이던 구치소 앞이었던가

두부 장수 지나가던 골목길 여관방이었던가

줄담배 피우던 산부인과 복도였던가

마을을 싣고 도부치던 아파트촌이었던가

부가가치세 신고를 하던 세무소였던가

민방위 교육을 받던 변두리 극장이었던가

흰봉투를 건네주던 다방의 구석 자리였던가

비행기를 갈아 타던 어느 공항  대합실이었던가

고인을 추모하며 밤새우던 초상집이었던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모두가 거짓된 기억 헛된 착각이다

우리는 부딪쳤을 뿐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모두가 낯익은 사람들 모르는 사람들이다

내가 아는 낯선 사람들이 너무 적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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