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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 속의 카잔차키스/이길상 2010.서울신문

능선 정동윤 2011. 10. 6. 11:05

속옷 속의 카잔차키스/이길상

 

 

잘 갠 속옷 속에는 영혼의 세숫물이 썩어간다

눈을 씻어내도 거리의 습한 인연들 내 안을 기웃거린다

내 폐허를 메울 사막은 그때 태어난다

반성하듯 내복을 차곡차곡 갤 때 올마다 낙타 한 마리 빠져나간다

 

밤, 속옷을 갤 때마다

개어지지 않는 내가 보인다

불운 견디게 하는 사막 풍경은 상향등처럼 켜지고

내 안의 나를 알고 있는 생이 뭔가 흘리면서도 아파할 것이다

서른 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감히 물을 수 없을 때 부르튼 입술은 길을 알고 있었다

 

맹인 바구니의 노래가 퇴근하지 못한 마음에 파고들수록

노래 속 세상을 그쯤으로 짚으며 난 힘겹다

감이 잡힐 나이, 노래의 무거움은 몸 밖에서 온다

우산 안에서도 젖는 내일의 삶, 울음 삼킨 시늉할까

그래 달콤한 사막 밤의 모래 폭풍은 고독으로 피어난다

몸 밖의 사하라, 헛것 두르며 새벽 추위까지 껴입는다

내 속 깊은 모퉁이는 안전하게 돌아나간다

 

안경은 양심의 속 때, 나를 잘 아는 신발은 닳은 굽 한 장 더 깐다

사는 일로 얼어붙은 옥탑방, 열쇠 구멍 나를 열지 못했으므로

계단 낮아도 허공의 높이 착실히 밟아갔을 거다

응시할수록 더 귀먹은 삶의 발목

흩어진 가시나무 속에 내 얼굴 보인다

 

발목 깊이 쌓이는 생

추운 종아리의 살빛, 많이 본 듯할 때

책과 길마다 죽은 하늘이 펄럭인다

속옷을 갤 때 후회의 올마다 낙타, 낙타들 쉽게 빠져나간다

거죽만 진지한 나의 사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