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봉에서 대남문 산성계곡으로
여름 산은 발걸음을 붙잡지만
겨울 산은 발걸음을 재촉한다
지금은 가을과 겨울 사이
곧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
메마른 나뭇가지와 낙엽이 가득한 산길
그림자도 없는 앙상한 숲이 더 황량해 보이는 아침
불광역을 출발한 다섯 명은
익숙한 수리봉 아래 그 바윗길로 올라갔다
현직과 은퇴가 뒤섞이는 시기
한 명씩 한 명씩 쓰리 쿠션을 시작하는 시기
특별한 친구들이 평범해 지고
화려한 친구들이 수수해 보이는 시기
누군가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시기
아직도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우리들의 계절도
오늘 날씨처럼 조금씩 쌀쌀해지는 겨울 직전.
우리는 수리봉을 우회하지 않고 곧장 올라갔다
편안한 길이라고 좋아하지도 않고
험한 길이라고 불평하지도 않으면서
눈에 보이는대로 발이 부딪치는대로 넘고 올라섰다.
겨울이 오기 전에 어머니는
쌀 두어 가마니 장만하여 들여놓고
연탄 한 이백 장 광에 쌓아놓고
김장 한 접 해 놓으면
어떤 겨울이 와도 두렵지 않다고 하셨는데...
우리 인생의 겨울은 길고 길어서
어머니의 양식으로는 어림도 없다
어머니의 겨울은 짧지만 오붓하였는데
우리들의 겨울은 긴긴날 추해질까 두렵다.
그래도 북아등에 오면 봄날이다
쌉쌀한 살구차 향기가 그윽하고
잘 썰어 온 노란 감 맛이 달콤하고
비닐 봉지 속의 육포마저도 쫄깃하다
상념에 빠져 혼자 걷다가
돌아보면 친구가 따라오고
바람에 옷깃 여미다 고개 들어 보면
앞서 친구가 걸어가고 있다.
오르고 내리고 반복하다
대남문 안쪽 빈자리에 둘러 앉았다.
하산은 길고 편안한 산성계곡
일부러 만든 계단도 없고
급경사도 없는 내리막의 부드러운 길,
우리들의 남은 세월처럼
완만하고 바람도 불지 않는 아늑한 산길
이따금 억새밭의 포근함을 내보이는 길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기도, 혼자 걷기도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도 지루하지도 않는 길
드디어 뒤풀이 집에 들어서는 순간까지
여유로운 산행,
하산주 막걸리가 술술 넘어가는 산행을
한주, 근엽이, 천수, 종수와 함께
잘 다녀 왔습니다
-정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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