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길산에 다녀와서/정동윤
풀빛 나뭇잎이고 싶어라
더운 햇살에 뒤척이는
떡갈나무 넓은 잎 같은’
쉬어가는 사람들의 그늘이 되고
그늘에서도 향기 나는 잎새이고 싶어라
이따금 솔잎 흔들어 깨우는
맑은 바람이고 싶어라
오백 년 고독의 은행나무 줄기를
부드럽게 쓰다듬다 위로하며 떠나는
한 줄기 푸른 바람이고 싶어라
그 바람 따라 떠도는
뭉게구름이고 싶어라
목마른 대지를 적시기 위해
빗방울 되어 떨어지는 잿빛 구름이 되고
산마루에 쉬어가는
하얀 구름이고 싶어라
향기로운 사람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사람보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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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를 하루 넘겼지만 지금은 낮 시간이 가장 긴 여름
낮 기온이 섭씨 32도를 예고하고 있었다.
지하철 산행의 두 번째는 예봉산에서 운길산까지
나는 중앙선 출발역인 용산에서 근엽이와 만났고 이촌 역에서 천수가 합류하였다.
지상으로만 달리는 중앙선이 교외로 빠져나가면서부터 나는 소풍 가는 기분이 들었다
신문을 보거나 옆 사람과 담소하며 한 시간 정도의 여유를 즐기다가 팔당역에 내렸다.
팔당역은 지방에서 올라온 등산모임과 몇 개의 동호인들이 뭉쳐 기념 사진을 찍느라
조금은 소란스러웠다. 우린 잠시 배낭과 신발을 챙긴 후 곧장 예봉산으로 향했다.
오늘은 팔당 역에서 시작하여 예봉산(683). 철문봉(635), 적갑산(561) 새재고개, 운길산(610),
수종사, 그리고 운길산역으로 내려오는 종주산행이다
예봉산 산마루까지 오르는 오르는 2시간 동안은 땀의 홍수다.
몸에 걸친 것은 죄다 벗어 던지고 싶다.
폭염의 하늘에서 땀 대신 소나기나 한바탕 내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내친 김에 가뭄에 타 들어가는 한반도 전체를 흥건하게 적셔주면 얼마나 좋을까
예봉산 정상에서 적갑산 까지는 내리막이나 다름없었다.
단숨에 내달리듯 철문봉 지나고 적갑선까지 내달으니 에너지 고갈을 심하게 느낀다.
연료의 소모가 걷는 속도에서 나타나며 점점 방전되고 속도도 줄어든다.
새재고개 가기 전에 조용하고 아늑한 떡갈나무 아래서 지고 온 연료의 주입을 시작하였다.
배경 음악은 최성수의 동행을 시작으로 조용필의 단팔머리까지 끝없이 이어진다
긴 산행을 예상하고 평소 보다 많은 연료와 냉각수을 담아왔기에 빈 연료 탱크를 잔뜩 채웠다.
땀에 젖은 상의를 벗어 말려놓고 2시간 가량 낮잠을 포함하여 긴 휴식을 취하였다
구름이 머물다 간다는 운길산으로 가는 길은 몇 개의 봉우리를 넘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높고 낮은 봉우리들의 연속이었다. 아마 이 봉우리들이 바위산이었으면 금방
운길산 공룡능선이라 불려졌을 것이다. 흙먼지 날리는 산길을 따라 걸으니 등산화는 물론
종아리까지 땀과 먼지가 뒤엉켜 기하학적인 무늬를 만들어 낸다.
천수는 도중에 어느 산꾼에 두고 간 휴대폰을 발견하여 주인을 찾아주느라 바쁘다.
드디어 운길산에 도달하니 냉각수의 부족이 간절하고 절실하였다.
연료는 충분히 보충하여 넉넉한데 냉각수가 없으니 엔진이 뜨거워져 자주자주 식혀야 했다.
하산은 그늘을 찾아 이동하려고 산기슭으로 내려오다가 주능선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수종사로 내려 가는 길을 꽤 통과 하고 말았다. 한참 만에 다시 유턴하자니 힘이 쭉 빠졌다.
더 이상 오르막은 없다고 생각하다가 다시 등산하자니 심리적 연료소모가 더하였다.
그러나 수종사에 가면 시원한 물과 아름다운 전망이 있다는 생각으로 힘든 길을 견뎌내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수종사의 전경은 익히 알려진 대로 장관이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 그 양수리가 한 눈에 잡히고 점을 찍은 듯한
작지도도 풀빛 숲을 이루며 풍경이 되었다.
잔잔하게 펼쳐진 산과 강의 조화를 머리로 이해하지 않고 가슴으로 느껴 본다
팔당호 주변의 산세를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새기려는 것이다.
어느덧 해는 서쪽 하늘의 구름 속에 숨었다 나타나며 긴 하루를 마감하려 하였고,
고즈늑한 수종사의 풍경소리와 독경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지친 심신을 달래 주었다.
육산이라 능선에 심어진 많은 나무들로 조망이 가려졌지만 겨울이라면 종주산행의 전망이
참 좋을 것 같았다. 산에는 떡갈나무와 생강나무가 유독 많았고 철쭉 군락지와
나뭇가지와 잎을 물에 담그면 물이 푸르게 변한다는 물푸레나무 군락지도 있었다.
무엇보다 수종사의 500년 넘은 은행나무가 사방팔방으로 가지를 뻗어 넓은 그늘을 만들고
주름투성이 늙은 나무지만 가을이면 노란 은행알을 송글송글 맺는다고 한다
수종사엔 가뭄에도 물이 고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조망할 수 있고 오랜 역사를 간직하며
승용차로 이곳까지 올라 올 수 있어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듯하였다.
내려오는 길은 콘크리트 도로를 피하여 다시 산 속으로 들어가서
지는 해와 더불어 긴 여름 산행을 하산하며 운길산역에서 마무리 하였다.
북아등 562회차 지하철 산행 잘 다녀 왔습니다.
-정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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