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나무/도종환
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
내 딴에는 곧게 자란다 생각했지만
어떤 가지는 구부러졌고
어떤 줄기는 비비꼬여 있는 걸 안다
그래서 대들보로 쓰일 수도 없고
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보잘 것 없는 꽃이 피어도
그 꽃 보며 기뻐하는 사람 있으면 나도 기쁘고
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 마리 있으면
편안한 자리 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하략…>
우리는 불광동에서 9시 5분에 만나 금방 숨은벽 가자고 방향을 정하였다.
붐비는 704번 버스를 타고 출발했지만 불광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340번
버스를 타면 앉아서 갈 수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효자비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둘레길 11구간인 효자길로 여유롭게 걷다가
백운대 방향으로 올라갔다. 약간 흐린 날씨지만 기온은 여름의 한복판처럼 무덥다.
걸어가면서 들리는 새소리는 다섯 종류 정도가 들렸는데 직박구리와 찌르레기 소리만
알아 듣겠고 나머지는 잘 알아듣지 못하였다. 내 내공의 부족을 절실하게 느끼는 순간이다.
밤골 계곡의 하류에 도착하여 숨은벽 올라가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오른쪽인 밤골 계곡 방향으로
방향을 틀었다. 능선의 햇살보다 계곡의 그늘이 우리를 이끌었다.
밤골 계곡에서 백운대 아래 호랑이 굴로 통과하여 백운대로 오르기로 작정하고
짙은 여름의 신록 속에 푹 잠겨서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나니 하늘이 보이는 능선이 나타났다.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의 그 암릉 사이가 아직 나타날 때가 아닌데…
알고보니 숨은벽 능선이었다. 우리는 전망대 바위를 통과하여 고래등 가는 길에 올라섰다
시원한 바람이 땀에 젖은 옷을 뽀송하게 잘 말려 주었다. 우린 땀이 마를 때까지 푹 쉬었다.
숨은벽으로 가는 새로운 루트를 또 하나 알아 두었으며 숨은벽 능선에서 충분히 조망을 즐겼다.
밤골 계곡 중턱의 약수터는 오랜 가뭄으로 바싹 말라 있었다.
등산화도 흙먼지로 뽀얗게 코팅되었고 산길은 마른 먼지가 날렸으며 주변의 나무들은
비포장 도로의 주변 건물들처럼 하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숨은벽 아래서 점심을 먹고 나훈아 메들리를 들으면서 충분히 휴식을 하였다.
우린 북한산 최고봉인 백운대까지 올라갔다. 늘 북한산에 오지만 백운대 오르는 일은 거의
생략하였는데 오늘은 꼭 올라보자는 의견이 있어서 정상의 태극기 아래서
기념사진까지 찍어 두었다.
하산은 백운대 북쪽으로 능선을 타고 밤골 계곡으로 내려가다가 산성 계곡으로 빠졌다.
언젠가 봄에 이 계곡으로 내려 가다가 산딸나무의 하얀 꽃송이들이 나무에 가득 핀 모습을 보고
밤 하늘의 은하수를 떠 올린 적이 있었다. 녹색 밤하늘의 하얀 별처럼 유난히 눈에 띄었는데
오늘 역시 그 산딸나무를 볼 수 있어서 반갑고 반가웠다.
나는 시간이 허락하면 청량리 근처의 홍릉 수목원에 가곤 한다.
적어도 일년에 3번 이상 가는데 그 첫째 이유가 본관 오른쪽에 심어진 꽃댕강나무 때문이다.
숨겨놓은 애인처럼 계절별로 변해가는 그 모습에 반해서 매번 찾아가서 바라보고 둘러보고
만져보다 오기도 하는데 이곳 산딸나무도 그리움처럼 다가올 때가 많았다.
북한산 밤골 계곡의 산딸나무는 오월과 유월 사이 꽃이 필 무렵이 절정이다.
고향 뒷산의 찔레꽃처럼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고, 십자가처럼 꽃받침이 꽃잎처럼 보이는
그 산딸나무를 눈부시게 바라보다 하산을 서둘렀다.
가을의 열매가 딸기처럼 생겨서 산딸나무란다.
근엽이와 천수는 부가당 당구 모임에 참여하고자 하산의 발걸음을 서둘렀고
시종일관 기아 1단 산행속도를 유지하는 언묵이는 자신은 천천히 갈 테니
먼저 가라 손짓한다. 나도 모처럼 친구들 얼굴을 보려고 덩달아 서둘렀다.
산성 계곡으로 내려와 아름드리 튤립나무 아래서 스틱을 접었다.
다음 주는 덕산회 산행으로 청계산을 다녀 오고
그 다음 주는 운길산으로 지하철 산행하기로 잠정 결정하였다.
북아등 560회차 잘 다녀 왔습니다.
-정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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