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길(山 능선)

북아등 645

능선 정동윤 2014. 1. 26. 23:08

산에 오르면 겹겹이 쌓인 산과

넓게 트인 풍경을 볼 수 있고

강변을 거닐면 머무르듯 흐르는

시간의 파장를 볼 수가 있다

 

오전엔 북한산에 올라 

미세먼지에 가린 뿌연 도심을 내려다 보고

오후엔 한강으로 가서 

잔파도 일렁이는 도도한 강물을 보았다

 

10여 년 드나든 북한산은

떠나려 해도 쉽게 떠나지질 않는다

힘겨운 일상에 팽이처럼 쓰러지다가도

팽이채 한 대로 죽비처럼 맞으며 다시 일어나고

때론 반환점 돌아서서 더욱 힘을 내는 마라토너처럼

결승점에 눈을 맞춰 뛰어가며 위안을 받는다.

 

 

빈손으로 와도 오를 수 있고

막걸리 한 병 챙겨와도 오를 수 있는 산,

3시간도 걸을 수 있고 8시간도 걸을 수 있는 산

종일 걸어도 발바닥에 물집이 생길 것 같지 않는 산

토요일 산요일엔 방해받지 않고 오르고 싶은 산

이런 산이 곁에 있으니 얼마나 고마우랴.

 

한 그루 나무가 잘 자라려면

꽃이 피고 지고 열매가 익고 떨어지고

껍질와 가지도 비와 바람에 수십 년 젖고 흔들려야

높이와 뿌리를 더 하여 간다.

그런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고 끝내 북아등의 산림을 완성한다.

 

오늘은 근모 부부,종수,근엽이와 함께 산책하듯

겨울 속의 봄, 는개 같은 봄비를 맞으며 북아등을 다녀왔고

영등포구청역 근처까지 가서 점심을 먹고 당구장에서 차 한 잔 마신 뒤

혼자서 당산역 뒤편의 한강으로 걸어갔다.

강을 거슬러 서강대교를 지나고 마포대교 위로 올라 강을 건너서

집으로 왔다. 마포대교 난간의 글들은 삶을 예찬하고 자살을 설득한다.

산길 3시간, 강을 거쳐 집에까지 오는데 2시간 반.

 

강은 낮게 흐르고 그 옆의 콘크리트 길을 많이 걸으면

산에서는 조용하던 내 발바닥이 짜증을 낸다.

어설픈 개발에 걷기를 거부한다. 자연은 건들이지 않는게 자연스럽다.

수없이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을 밟으니

발은 물집을 만들어 항의하고 데모를 한다.

 

평지 물집을 핑게로 다음 날 박물관 탐방을 멈추고

집에서 종일 딩굴딩굴 쉬었다.

 

 


 

 

 

 


 

 

 

 

 

 

 

 

 

 

 

 

 

 

 

 

 

 

 


'걸어가는 길(山 능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아등 648(주흘산)  (0) 2014.02.16
북아등 647  (0) 2014.02.08
북아등 643  (0) 2014.01.13
청마(청계천에서 마포대교까지)걷기  (0) 2014.01.05
거잠포 해돋이  (0) 2014.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