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읽기

[이인]뫼르소, 알베르 카뮈가 그린 보통 이인

능선 정동윤 2014. 2. 20. 20:35

[고전 소개]
1942년에 발표된 『이인』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알베르 카뮈의 첫 소설이다. 비평가 롤랑 바르트와 누보로망이라는 새로운 소설 장르를 탄생케 한 이 작품은 20세기 프랑스 문학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의 역사에서도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소설이다. 소설의 전통문법을 파괴한 매우 다르고 새로운 글쓰기 형식이 주는 ‘낯섦’과 전대미문의 태양 살해범이자 “유일한 그리스도”(카뮈의 표현)인 주인공 뫼르소가 보여주는 사고와 행동의 ‘낯섦’은 독자에게 거리감을 안겨주면서도 독자들을 유혹하고 흡입하는 마력의 샘이다. 읽기는 쉬우나 이해하기 힘든 작품으로 정평이 나 있고, 투명한 듯하지만 투명하지 않은 중의적인 언어로 인해 일종의 고난도의 퍼즐이나 숨은그림찾기가 텍스트의 밑그림으로 깔려 있는 작품이다. 탄생 70년을 맞이하는 『이인』의 뫼르소는 겉으로는 평범한 일상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결코 오롯이 이해할 수 없는 이인(異人)이기에 ‘이인으로 남은 이인’이고, 어쩌면 ‘영원한 이인’의 운명을 타고 난 인물이다. 작품 속에서 몰이해의 제물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뫼르소는 독자들이라도 “증오의 함성”이 아니라 사랑의 속삭임으로 자기를 이해해주기를 오늘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나의 결백함이 입증될 그 새벽, 그 순간”을 기다리며.

[저자]
알베르 까뮈 (1913~1960)
1913년 11월 7일 알제리의 시골마을인 몽도비에서 가난한 농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알제의 달동네에서 자란 카뮈는 알제 대학에서 석사를 마친 후, 연극 활동을 하다 1937년 첫 작품인 산문집 『안과 겉』을 알제의 샤를로 출판사에서 발표함으로써 작가로 데뷔했다. 이듬해인 1938년에 신생 좌파 일간지 『알제 레퓌블리캥』에 입사한 새내기 기자 카뮈는 알제리 원주민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기사로 연일 식민지 정부당국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인간의 정의와 자유를 부르짖는 지성인으로 거듭 태어났다. 1942년에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이인』과 『시지프의 신화』를 발표함으로써 카뮈는 일약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로 발돋움했다. 1943년부터 레지스탕스 좌파 지성인들이 만드는 지하신문 『투쟁』지에 참여해서 이듬해 편집국장인 된 카뮈는 격조 높은 사설로 프랑스 지성계를 대표하는 사상적 지도자로 인정받았고, 해방 직후 지성인 숙청을 놓고 프랑수아 모리악과 벌인 “인간의 정의”(카뮈) 대 “그리스도의 자비”(모리악) 논쟁은 20세기 프랑스 지성인사의 가장 유명한 일화들 중의 하나로 남아있다. 1947년에 『페스트』를 발표해서 ‘올해의 비평가상’을 수상했고. 1951년에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한 『반항인』을 발표했다. 흔히 ‘『반항인』 사건’으로 불리는 카뮈와 사르트르의 치열한 논쟁으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두 친구”는 영원히 결별했다. 1956년에 발표한 『전락』은 당대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이듬해인 1957년 스웨덴 한림원은 “우리 시대의 인간들의 양심에 제기되는 문제들을 조명하고 있는 작품들”을 발표한 공로로 불과 44세의 젊은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했다.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은 카뮈는 이후 주로 남불에 있는 한적한 중세 마을인 루르마랭에서 집필 활동에 몰두하다 1960년 1월 4일 파리로 올라오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 비운의 죽음에 대해 전 세계가 애도했는데, 사르트르는 옛 친구를 “골수 휴머니스트”라고 칭송하면서 가장 감동적인 추도사를 헌정했고,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비젤은 1999년에 카뮈를 회상하면서 “우리에게 인간의 인간성을 믿게 해준 카뮈야말로 진정한 휴머니스트”라고 칭송한 바 있다.

 

[이인]뫼르소, 알베르 카뮈가 그린 보통 이인
이인은 다른 사람, 이상한 사람, 기이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이인과 두 사람인 이인의 뜻을 모두 포함하는것 같다.제 1부에서의 주인공인 뫼르소와 제 2부에서의 주인공인 뫼르소는 동일인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모순적인 이인인 것같이 쓰여져 있다. 제 1부에서의 뫼르소는 자기의 시선으로 바라본 자신이고, 제 2부에서의 뫼르소는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뫼르소로서 이 두 대상은 동일인이지만 서로 일치 될 수 없는 다른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뫼르소는 태양과 바다를 사랑하며, 자신과 직접 접촉하여 사는 이웃들에게는 다소 배려해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사회를 멀리하고, 자기 집 주위만을 맴도는 주변인에 머물고 있으며, 만사가 시큰둥 한 듯 마찬가지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가며, 여자친구 마리아 마저도 뫼르소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본 뫼르소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인 것 같다. 다만 소설속 타인들이 자신들의 잣대로 판단하고 뫼르소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생각한다.

 
[이인]뫼르소, 알베르 카뮈가 그린 보통 이인
[문]알베르 카뮈의 <이인>이 왜 <이인>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이에 대해 자신이 이해한 바와,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을 정리해보세요  
  
[답]나는 강사가 직접번역한 "이인"이라는 제목의 번역본이 아닌 김영섭교수가 번역한 "이방인"이라는 제목의 번역본으로 이 작품을 감상하였다. 주요 고전들 대부분이 국내에 처음으로소개될 때 일본어역본을 중역하거나  참고하여 번역했기 때문에 원어에서 나타나고자 했던 뉴앙스를 충분히 나타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데 알렉산드로 듀마의 [La dame Aux Camelias]가 일본식 번역어 춘희[椿姬 츠바키 히메 : 동백아가씨]라는  의미를 알 수없는 말로 굳어진 것이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 의미상 정확한 제목은 아마[화류계 여인]정도이고  문자 그대로 의미는
[동백꽃을 단 여인]정도가 아닐 까?
하여간  여기에서 <이인>은 다른 사람, 이상한 사람, 기이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이인(異人)과 두 사람인 이인(二人)의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기에 이 소설은 서로 평행관계에 있는 다소 비대칭적인 두 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1 부에서의 주인공인 뫼르소와 제2 부에서의 주인공인 뫼르소는 동일인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모순적인 二人인 것같이 쓰여져 있다는 것이다. 즉 제1 부에서의 뫼르소는 자기의 시선으로 바라본 자신이고,  제2 부에서는 타인(수사검사, 공판검사. 변호사 등)의 시선으로 바라본 뫼르소로서, 이 두 대상은 동인인이지만 서로 일치될 수 없는 다른 사람(異人.二人)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소설의 구조, 형식, 시각들로 비추어 볼 때 <이인>이라는 제목이 보다 적절한 것이라는 주장이 더 타당성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주인공 뫼르소는 이방인이 아닌, 낯선 사람, 타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영어번역본에서도 foreigner가 아닌 stranger, outsider로 번역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경찰, 사창가, 젖은 수건, 일요일을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느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만사를 귀찮아 하는 내성적이고 어떤면에서는 이기적이기도 한 현대 젊은이를 표상하고 있다.
그는 태양과 바다를 사랑하며,자신과 직접 접촉하여 사는 이웃사람들에게는 다소 배려해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사회를 멀리하고,자기 집 주위만을 맴도는 주변인에 머물고 있다. 만사가 시쿤둥 한듯  마찬가지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가며.그와 몸을 섞는 사이인 여자친구 마리아 마저도 뫼르소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와같이 뫼르소는 우리와는 다른 인간, 이인이며, 여러 가지 차원에서 두종류의 뫼르소로 보여 주지만, 그가 작열하는 태양과 바닷가 뜨거운 모래사장의 열기속에서  약간의 신체상의 위협이 있었다고는 하나  위협사격을 한다든가, 칼잡은 손을 쏜다든가 하는 대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아랍인에게 권총을 네발이나 쏘아 죽여버린다.
이유가 크게 없는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를 기소하고 그에게 사형을 언도한 재판결과가 빌라도가 예수에게 사형선고한  것과 비교하여 판결결과가 불공정하다고 비난한다거나, 한 걸음나아가 그의 처형을 예수의 그것과 비교한 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 같고 그 런입장을 수긍 해야 할 타당한 사유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없는 것 같다.
자기 실존을 확인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실존을 말살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문명인을 자부하는 프랑스인이 피식민지 인간이며 이교도이며 미개인인 하찮은 아랍인을 죽였다고 해도 말이다.
이 소설 말미에서 그와 비교적 밀접한 관계를 가져온 살라마노 영감의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해야 합니다." 라고 외친 말이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 말인가? 다만 이 말을 현대의 세분화된 세상 속에서 오직 자기와 관련된 것에만 관심을 두고 타인에게는 전혀 무관심하게 살아가고 있는 일부 특이한 젊은이 들에게도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고, 그들에게도 진정한 실존의 의미를 찾아주어야 한다는 외침의 말로 이해할 수는 있겠다.

[이인]뫼르소, 알베르 카뮈가 그린 보통 이인
12/18/13' 이인
#1 카미의 일생(1913-1960); 불우한 어린 생활, 레제스탕스 활동, 공산주의 비판, 노벨상 수상, 사르트르와 논쟁 - 사후에 골수 휴머니스트로 칭송

#2 이인의 문학사적 위상
* 이인의 평가
1. 이인은 누요르망의 원조로 20 세기 최고의 걸작
2. 새롭고 다른 형식의 소설; 전통 문법을 파괴한 코페르쿠스식 혁명적 소설 형식
이인; 현재가 기준 시점 - 오늘
전통 소설; 과거의 한 시점이 기준 시점 - 그날
3. 전통 문법 파괴의 효과
4. 문장 형식의 특징
- 간결하고 쉽고 군더기가 없음
- 일상어와 구어체 사용
-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없으면서 잘 이해가 안된다; 문장 하나가 섬이므로 작품 전체 의미가 어렵다 = 투명한 듯 하며 투명하지 않은 언어
- 텍스트의 특징; 고난도의 퍼즐이고 고난도의 숨은 그림 찾기

#3. 이인의 구조;
1. 이인의 2 부 구조; 1, 2부는 접점을 못 찾고 평행 관계를 달린다
2. 2 부 구조의 상징성;
1) 뫼르소 얼굴이 비대칭 -> 이인 구조가 비 대칭 -> 1 ,2 부의 메르소는 같으면서 다르다는 것을 암시
2) 거울 장면; 1부의 뫼르소; 웃음, 2 부의 메르소; 심각함
3. 2 부 구조의 의미
1) 1,2 부의 단절;
- 1 부의 메르소; 현재형 인간, 자유인, 육신의 인간, 태양과의 사투
- 2 부의 메르소; 과거형 인간, 구속인, 정신의 인간, 죽음과의 사투
2)1, 2 부는 대칭과 평행 관계
- 1부; 어머니의 죽음에서 불행의 문을 두드리기까지 18일 까지 벌어진 사건들
- 2 부; 법조인들의 심판으로 1 부 해석인데 찌그런진 거울이므로 왜곡된 해석일 수 밖에 없다
3)프랑스 법 체계상 수사검사와 공판 검사가 다른데 몰이해로 인하여 뫼르소이긴 뫼르소인데 모르소가 아닌 뫼르소가 됨.

#4. 메르소 - 부조리한 인간, 이인 - 부조리한 소설
1. 2 인의 뫼르소; 법조인의 그릇된 해석에서 나옴
2. 공판 검사의 해석
1)뫼르소가 범죄를 사전에 계획을 했다. 정상적인 여지가 없는 폐륜아, 사악한 영혼의 소유자
2)검사의 모르소는 독자들의 모르소와는 다른 인간 - 이인
3. 변호사의 해석
1)뫼르소는 번호인에 대하여는 부정적인 평가
2)메르소를 한순간의 실수에 빠진 성실한 인간으로 변론
4. 검사의 논고(그럴듯한 변호사의 논고) VS 변호사의 변호(하자가 있는 변호사의 변론) ; 서로 다른 뫼르소 = 이인의 뫼르소
5. 공판 검사와 변호사의 해석에 대한 뫼르소의 촌평;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무색의 물과 같다
6. 변호사의 한마디; 1 부에 내용은 사싱인 반면에 2 부에 기술된 법조인들의 해석은 같은게 없다 -> 1 부의 뫼르소와 2 부의 뫼르소는 다른 인간 이인이다
7. 그릇된 해석의 결과
1) 1부의 뫼르소와 2 부의 뫼르소는 서로 바라보면서 서로에게 낯설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이인을 담음
2)1부, 2 부를 나누는 여백은 두 뫼르소를 단절시키는 균열을 상징
8. 부조리 철학;
1)부조리 개념; 나와 세계 사이에 단절된 것을 이어주는 것이 부조리다.
2)이인; 부조리한 소설 - 1 부, 2 부 사이에 단절
  뫼르소; 부조리한 인간 - 1부, 2 부의 뫼르소 사이에 단절과 대립
9. 2 부 구조에 담긴 철학적 의미
1)이인을 부조리 철학을 형상화한 소설
2)이인은 부조리를 마주하고 있는 인간을 적나라하게 그려준다
#5. 별종 화자 뫼르소
1. 특이한 화자 나; 통상적인 1 인칭 소설에는 화자와 나사에 단절이나 균열이 없으나 이인은 삼인칭 소설에 가깝다
2. 화자의 전략;
1)화자의 세밀한 외부 묘사;
- 내면이 텅빈 인간
- 외부 세계에 대하여는 자세하게 묘사하는데 자신의 내면 감정에 대하여는 일언 반구가 없음
2)화자의 감추기 전략; 장례식 장면
3)신종 화자
1)일인칭 나가 아니라 삼인칭 나로; 자기를 남처럼대하여 삼인칭 나로 나타냄
2)나를 주관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객관적 시각에서, 제 삼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며 나를 이야기 한다
3)화자 뫼르소가 인물 뫼르소를 다른 인물 처럼 취급함으로써 화자와 인물 사이에 단절을 부각시키는 전략을 사용
4)단절의 효과; 독자에게 낯섦을 안겨주고 냉소적인 유모와 빈정거리기를 자아냄
5. 이인의 화자
1)부조리한 화자
- 이인의 화자는 일인칭 소설의 전통 문법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신종 화자이자 별종 화자
- 화자 나와 인물 나를 타인 처럼 취급함으로서 이 두 사이에 균열과 단절 현상이 빚어지고 있기때문에 이인의 화자는 부조리한 화자
2)프르스트의 나안에 있는 나에 해당된다.
#6. 뫼르소의 진실; 태양을 살해하다
1.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살해하다
2. 해석학적 차원에서 진실을 밝혀보기
1)뫼르소와 태양; 태양을 사랑하는 가난하고 숨길것이 없는 뫼르소
2)태양과 사투를 버리는 운명의 장남; 뫼르소의 반항
30정오의 태양을 향해 첫 발을 발사하는 것은 사랑하는 태양을 살해하려는 것임
4. 태양 살해범 뫼르소; 태양의 죽음은 곧 뫼르소인데 태양은 죽지 않음; 뫼르소; 죽음 + 태양
#7 죽음의 정복자 뫼르소
1. 죽음과의 사투
1)사형수 뫼르소의 처절한 사투; 사형 선고 직후 삶에 대한 애착을 느낌
2)단두대를 피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새벽을 기다림
2. 죽음의 정복자 뫼르소
1)상고 기각후 "그래 좋아 죽으면 되잖아" -> 죽음을 오롯이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
2)패배자가 아니라 정복자로서 자신의 죽음을 받아 들이겠다는 선언 -> 죽음의 주인
3. 새 뫼르소 탄생; 무관심의 화신이었던 뫼르소 -> 새 뫼르소로 거듭 태어 났으므을 알림
4. 유일한 그리스도
1)뫼르소는 낙오자가 아닌 어떠한 가식도 없는 인간이다
2)뫼르소는 반 기독자인데 어떻게 우리가 섬길만한 그리스도인가이라고 할 수 있는가? -> 죽음의 사투에서 죽음을 넘어서 죽음의 정복자로 다시 탄생한 새 뫼르소이기 때문.
#8 뫼르소, 이인으로 남은 이인
1. 이인의 의미; 1 부의 뫼르소와 2 부의 모르소는 다른 뫼르소이기 때문에 두 인간 이인이다
2. 뫼르소의 정체성;
1)태양 살해범이자 죽음의 정복자로 거듭 태어난 유일한 그리스도이자 특이한 인간, 기인이기도 하다
2)뫼르소는 자신을 보통 사람이라고 보고 있는데 겉으로 보기에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일 수 있다
3)마리의 판단; 이상한 사람
3. 이인 뫼르소; 뫼르소는 보톤 사람이 아니라 이상한 사람이다
4. 보통 이인 뫼르소
1)뫼르소는 보통 사람이기는 하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이상한 사람
2)1 인 2 역의 인간이 바로 뫼르소
3)아무리 이해하려고 하여도 이해할 수 없는 뫼르소
5. 이인의 메세지
1)살라마노 할아버지의 한마디; 이해하여야 합니다. 이해하여야 합니다
2)현대 사회에도 많은 이인이 있다. 이들을 이해하여야 이간으로서 인간의 정체성을 지킬수가 있다
3)이인의 기다림; 뫼르소는 누구에게도 이헤을 받지 못하였는데 독자들이 이해하여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인]뫼르소, 알베르 카뮈가 그린 보통 이인
<이인> 1부에서의 뫼르소는 뫼르소 자신이 바라보는 '나'를 표현하고 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보통사람이고 남들과 절대적으로 같은 사람, 시쳇말로 '귀차니스트' '마찬가지스트'이다. 2부에서의 뫼르소는 세계가, 다는 사람이 바라보는 '나'로서 뫼르소 여자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판단할 때 특이한 사고나 행동으로 상궤를 벗어나서 일반적인 사람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별종인간 이다. "모든 것이 사실이고, 어느 하나 사실인 것이 없다." 라는 변호사의 말 한마디에서 1부의 내용은 모두 '사실'인데 2부에서 기술된 법조인들의 해석은 1부의 것과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유추하며 1부 뫼르소와 2부 뫼르소는 서로 맞닿을 수 없는, 낯섦을 느낄 수밖에 없는 서로 다른 인간 즉, 異人이며 동시에 二人일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상황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부조리하다는 것이 인간이 상식적인 이치나 도리에 맞지 않고 무의미하고 불합리한 세계에 처해 있는 인간의 절망적 한계상황이나 조건을 의미 했을 때 알베르 카뮈가 2차 세계대전 전 전쟁의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세계 정세 속에서 절망감과 소외감을 느끼고 죽음을 넘어서는 의지를 불태우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부조리는 희구하는 정신과 이를 좌절시키는 세계 사이의 단절이고 대립이고 분열이며 불일치이다. “부조리는 인간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세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 인간과 세계의 공존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부조리는 인간과 세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다."라는 <시지프의 신화>에서의 내용과 "부조리란 하나의 사태를 지칭하는 동시에 이 사태를 인식하는 명철한 의식을 지칭한다."라는 사르트르의 말이 조금은 이해될 듯 하다. 그래서 '살라마노' 영감의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해야 합니다"라는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인간인 우리들이 인간을 이해하지 않으면 누가 이해할 수 있는가? 우리가 사랑의 마음과 열린 마음으로 異人인 뫼르소를 이해하려고 할 때 인간으로서의 인간성을 지키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뫼르소는 곧 나 일수 있기 때문이다.
 
[이인]뫼르소, 알베르 카뮈가 그린 보통 이인
우선 강의는 굉장히 체계적이었고, 흥미로웠다. 다만 강의의 내용이 이방인이라는 책이 이인이어야 하는 어떤 주관적 주장에 대해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조금은 못마땅했다.

책을 1부와 2부로 나누어 같지만 다른 두사람에 모습을 보여준다는 강의 내용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리고 최초의 태양 살해자라는 의견, (사실 나는 책을 읽으며 이부분이 상당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명쾌한 해석으로 인해 상당부분 이해가 되었다.

사실 문학은 읽는 사람에 따라 이해가 달라진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 의견이 맞고 틀리고는 작가자신의 의도와 해석이지만 청자는 다르기때문이다.

어쨌든 까뮈는 죽었고, 정확한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또한 예상컨데 까뮈자신조차 정확한 것은 무엇인지 모를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방인을 읽었다. 매우 흥미로운 책이었다. 특히 가장 천 문장 '엄마가 죽었다.'는 뇌리에 깊이 박혀 잊혀지지않는다. 너무나도 담담한 문체와 스스로의 일을 남일 대하듯 하는 그 느낌은 여타의 문학과는 달라 읽는 나에게 신선하고 새로운 충격을 주었고, 이 소설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어쩌면 까뮈는 내가 바라보는 나, 생각하고 행동하는 나, 타인이 바라보는 나, 내가 바라보는 타인, 내가 바라보는 세상.. 이들 사이의 단절과 균열, 그 사이의 이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방인이든, 이인이든 무엇보다 까뮈의 글은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이인]뫼르소, 알베르 카뮈가 그린 보통 이인
알베르 카뮈의 이인이 왜 이인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 이해한 바를 설명하라.

카뮈의 이인은 전통 문법을 파괴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일으킨 소설 형식이다. 즉 전통 소설은 과거의 한 지점이 기준 시점으로 시작되는 반면, 이인은 현재가 기준시점이다. 카뮈의 시대 전통 소설은 모두 그날이 시점으로 시작되는 반면, 이인은 오늘이라는 새로운 시점을 나타낸다. 마치 화자가 일기를 쓰는 것 같은 형식을 취한다. 그리고 이인은 간결하고 쉬우며 군더더기가 없고, 일상어와 구어체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인은  읽기에는 어려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를 당시 비평가인 사르트르가의 지적에 의하면,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세계가 없어졌다가 다시 태어나기 때문에 독자들은 무에서 무로 위험천만한 건너뛰기를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인의 화자는 독자와 텍스트 사이에 투명 유리창을 설치한 것 같은, 즉 전화 박스 밖에 있는 독자가, 전화 박스 안에서 통화하고 있는 사람의 손짓 발짖, 입 놀림을 볼 수는 있으나,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는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인은 극도의 절제된 언어와  극도로 섬세한 짜임새를 말할 수 있는, 비유하자면  고난도의 퍼즐과 고난도의 숨은 그림 찾기 라고 말 할 수 있다.

이인의 의미는 1부와 2부의 평행관계에 담겨 있고, 또 1부의 뫼르소와 2부의 뫼르소는 다른 뫼르소이기 때문에, 뫼르소의 정체성은 다른 인간, 다시 말하면 두 명의 인간을 말하는 제목처럼 진짜 이인인 것이다. 그리고 뫼르소의 정체성은 독자들에게 낯섦과 거리감을 안겨주는 이상한 캐릭터이고, 태양 살해범이자 죽음의 정복자 로서 거듭 태어난 유일한 그리스도, 특이한 인간 기인을 말한다.
 
[이인]뫼르소, 알베르 카뮈가 그린 보통 이인

이인은 서로 다른 두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둘이지만 하나인 우리의 실체와 동일하다.
마치 삼위일체에 나오는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그 영이신 하나님과 일치한다.
셋이지만 하나이며, 또 하나이지만 셋으로 표현되고 실재와 되는 그것과 흡사하다.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그리고 결코 낯설지 않은 뫼르소가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이 되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이인으로 남아 있는 것일까? 다시 말해서, 뫼르소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일까? 본 연구는 바로 이 물음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폴 리쾨르의 해석학 이론을 빌려 이인 텍스트에 대한 해석학적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 텍스트에서 뫼르소는 화자이자 주인공으로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뫼르소는 무엇 때문에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리쾨르의 용어를 빌리자면, "자기 인식" 혹은 "자기 이해"를 위해서이다. 리쾨르에 따르면, "자기 인식"은 데카르트의 코기토 전통과는 달리 "간접적인" 인식이다. 즉, "자기 인식"은 3중의 매개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자기 행동"을 통해서, "자기 이야기"를 통해서, 그리고 타인들이 자기에게 내리는 "도덕적 평가"를 통해서 자기 인식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인식의 간접성은, 너무나 우연하게도, 이인 텍스트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뫼르소는 "자기 행동의 주체"이고, "자기 이야기의 화자이자 인물"이고, 타인들이 내리는 "도덕적 평가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세 가지 매개들을 분석하면서 이인 뫼르소의 다르고 특이하면서도 다양한 얼굴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이 얼굴들의 합이 뫼르소의 정체성을 규명해 줄 것이다.이인 텍스트에는 두 뫼르소가 있다. 1부의 뫼르소와 2부의 뫼르소가 있는데, 같은 물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낯설고 다른 자이다. 이런 점에서, 뫼르소는 `이인`이자 `이인`이다. 이것은 죄수 뫼르소가 독방에서 자신의 얼굴이 비친 거울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도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뫼르소가 "웃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울 속의 이미지는 "심각하고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카뮈 자신이 지적한 대로, "이인의 의미는 정확하게 2부 구조의 평행관계에 담겨 있다"는 것이 거듭 확인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이인 텍스트가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들 중의 하나는 뫼르소의 정체성에 관련된 문제이다. 우리는 앞에서 뫼르소가 때로는 보통 사람, 때로는 다른 사람, 때로는 특이한 사람, 때로는 예외적인 인간, 때로는 유일한 인간, 때로는 엉뚱한 인간, 때로는 이인, 때로는 기인,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낯선 인간, 때로는 사회에 낯선 인간이라는 사실을 보았고, 게다가 화자 뫼르소와 인물 뫼르소, 1부의 뫼르소와 2부의 뫼르소가 서로에게 이인이면서 이인이라는 사실을 보았다. 여기에다 뫼르소 자신이 말하는 "새 뫼르소"도 있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 볼 때, 모두에 던진 물음에 대해서 뫼르소는 `이인으로 남은 이인`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찾아낸 뫼르소의 정체성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이 글의 모두에 명시했던 우리의 해석학적 읽기의 전제, 즉 뫼르소가 "자기 행동"을 통해서, "자기 이야기"를 통해서, 그리고 "타인들이 자기에게 내리는 도덕적 평가"를 통해서 자기 인식 혹은 자기 이해를 시도하고 있다는 전제의 결과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이론모델을 제공한 폴 리쾨르의 대답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타자처럼 자기 자신". 리쾨르의 이론을 따른다면, 이것이곧 뫼르소의 "이야기 정체성일까???하여간??여기에서 <이인>은 다른 사람, 이상한 사람, 기이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이인(異人)과 두 사람인 이인(二人)의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그러기에 이 소설은 서로 평행관계에 있는 다소 비대칭적인 두 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1 부에서의 주인공인 뫼르소와 제2 부에서의 주인공인 뫼르소는 동일인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모순적인 二人인 것같이 쓰여져 있다는 것이다. 즉 제1 부에서의 뫼르소는 자기의 시선으로 바라본 자신이고,??제2 부에서는 타인(수사검사, 공판검사. 변호사 등)의 시선으로 바라본 뫼르소로서, 이 두 대상은 동인인이지만 서로 일치될 수 없는 다른 사람(異人.二人)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이와 같은 소설의 구조, 형식, 시각들로 비추어 볼 때 <이인>이라는 제목이 보다 적절한 것이라는 주장이 더 타당성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주인공 뫼르소는 이방인이 아닌, 낯선 사람, 타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영어번역본에서도 foreigner가 아닌 stranger, outsider로 번역되어 있는 것 같기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경찰,사창가,젖은 수건,일요일을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느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만사를 귀찮아 하는 내성적이고 어떤면에서는 이기적이기도 한 현대 젊은이를 표상하고 있다.그는 태양과 바다를 사랑하며,자신과 직접 접촉하여 사는 이웃사람들에게는 다소 배려해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사회를 멀리하고,자기 집 주위만을 맴도는 주변인에 머물고 있다. 만사가 시쿤둥 한듯??마찬가지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가며.그와 몸을 섞는 사이인 여자친구 마리아 마저도 뫼르소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다.이와같이 뫼르소는 우리와는 다른 인간, 이인이며, 여러 가지 차원에서 두 뫼르소로 보여 주지만, 그는 작열하는 태양과 바닷가 뜨거운 모래사장의 열기속에서??신변상의 큰 위협이나 특별한 이유없이 한 사람의 아랍인에게 권총 네발을 쏘아 죽여버린다.이유가 크게 없는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를 기소하고 그에게 사형을 언도한 재판결과가 빌라도가 예수에게 사형선고한 것이나 아테네 법정에서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언도한 것과 같이 판결결과가 불공정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해야 할 타당한 사유가??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없는 것 같다.자기 실존을 확인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실존을 말살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문명인을 자부한 프랑스인이 피식민지 인간이며 이교도인 아랍인을 죽였다고 해도 말이다.이 소설 말미에서 그와 비교적 밀접한 관계를 가져온 살라마노 영감의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해야 합니다." 라고 외친 말이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 말인가? 다만 이 말을 현대의 세분화된 세상 속에서 오직 자기와 관련된 것에만 관심을 두고 타인에게는 전혀 무관심하게 살아가고 있는 일부 특이한 젊은이 들에게도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고, 그들에게도 진정한 실존의 의미를 찾아주어야 한다는 외침의 말로 이해할 수는 있겠다.

우리는 서로다른 두존재의 현실적 실체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투영시켜 본다.
이상적인 나와 현실적인 나의 모습은 항상 충돌하며, 나를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간다.
하나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둘의 존재를 끊임없이 부정하고 때로는 긍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존재라는 생각을 해본다. 치우치지 않고 서로를 인정할 때 인생은 그만큼 풍요로워 짐을 느낀다.
 
[이인]뫼르소, 알베르 카뮈가 그린 보통 이인
[문]알베르 카뮈의 <이인>이 왜 <이인>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이에 대해 자신이 이해한 바와,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을 정리해보세요  
  
[답]나는 강사가 직접번역한 "이인"이라는 제목의 번역본이 아닌 김영섭교수가 번역한 "이방인"이라는 제목의 번역본으로 이 작품을 감상하였다. 주요 고전들 대부분이 국내에 처음으로소개될 때 일본어역본을 중역하거나  참고하여 번역했기 때문에 원어에서 나타나고자 했던 뉴앙스를 충분히 나타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데 알렉산드로 듀마의 [La dame Aux Camelias]가 일본식 번역어 춘희[椿姬 츠바키 히메 : 동백아가씨]라는  의미를 알 수없는 말로 굳어진 것이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 의미상 정확한 제목은 아마[화류계 여인]정도이고  문자 그대로 의미는
[동백꽃을 단 여인]정도가 아닐 까?
하여간  여기에서 <이인>은 다른 사람, 이상한 사람, 기이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이인(異人)과 두 사람인 이인(二人)의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기에 이 소설은 서로 평행관계에 있는 다소 비대칭적인 두 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1 부에서의 주인공인 뫼르소와 제2 부에서의 주인공인 뫼르소는 동일인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모순적인 二人인 것같이 쓰여져 있다는 것이다. 즉 제1 부에서의 뫼르소는 자기의 시선으로 바라본 자신이고,  제2 부에서는 타인(수사검사, 공판검사. 변호사 등)의 시선으로 바라본 뫼르소로서, 이 두 대상은 동인인이지만 서로 일치될 수 없는 다른 사람(異人.二人)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소설의 구조, 형식, 시각들로 비추어 볼 때 <이인>이라는 제목이 보다 적절한 것이라는 주장이 더 타당성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주인공 뫼르소는 이방인이 아닌, 낯선 사람, 타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영어번역본에서도 foreigner가 아닌 stranger, outsider로 번역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경찰,사창가,젖은 수건,일요일을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느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만사를 귀찮아 하는 내성적이고 어떤면에서는 이기적이기도 한 현대 젊은이를 표상하고 있다.
그는 태양과 바다를 사랑하며,자신과 직접 접촉하여 사는 이웃사람들에게는 다소 배려해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사회를 멀리하고,자기 집 주위만을 맴도는 주변인에 머물고 있다. 만사가 시쿤둥 한듯  마찬가지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가며.그와 몸을 섞는 사이인 여자친구 마리아 마저도 뫼르소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와같이 뫼르소는 우리와는 다른 인간, 이인이며, 여러 가지 차원에서 두종류의 뫼르소로 보여 주지만, 그가 작열하는 태양과 바닷가 뜨거운 모래사장의 열기속에서  약간의 신체상의 위협이 있었다고는 하나  위협사격을 한다든가, 칼잡은 손을 쏜다든가 하는 대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아랍인에게 권총을 네발이나 쏘아 죽여버린다.
이유가 크게 없는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를 기소하고 그에게 사형을 언도한 재판결과가 빌라도가 예수에게 사형선고한  것과 비교하여 판결결과가 불공정하다고 비난한다거나, 한 걸음나아가 그의 처형을 예수의 그것과 비교한 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 같고 그 런입장을 수긍 해야 할 타당한 사유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없는 것 같다.
자기 실존을 확인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실존을 말살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문명인을 자부하는 프랑스인이 피식민지 인간이며 이교도이며 미개인인 하찮은 아랍인을 죽였다고 해도 말이다.
이 소설 말미에서 그와 비교적 밀접한 관계를 가져온 살라마노 영감의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해야 합니다." 라고 외친 말이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 말인가? 다만 이 말을 현대의 세분화된 세상 속에서 오직 자기와 관련된 것에만 관심을 두고 타인에게는 전혀 무관심하게 살아가고 있는 일부 특이한 젊은이 들에게도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고, 그들에게도 진정한 실존의 의미를 찾아주어야 한다는 외침의 말로 이해할 수는 있겠다.
[이인]뫼르소, 알베르 카뮈가 그린 보통 이인
[문]알베르 카뮈의 <이인>이 왜 <이인>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이에 대해 자신이 이해한 바와,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을 정리해보세요  
  
[답]나는 강사가 직접번역한 "이인"이라는 제목의 번역본이 아닌 김영섭교수가 번역한 "이방인"이라는 제목의 번역본으로 이 작품을 감상하였다. 주요 고전들 대부분이 국내에 처음으로소개될 때 일본어역본을 중역하거나  참고하여 번역했기 때문에 원어에서 나타나고자 했던 뉴앙스를 충분히 나타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데 알렉산드로 듀마의 [La dame Aux Camelias]가 일본식 번역어 춘희[椿姬 츠바키 히메 : 동백아가씨]라는  의미를 알 수없는 말로 굳어진 것이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 의미상 정확한 제목은 아마[화류계 여인]정도이고  문자 그대로 의미는
[동백꽃을 단 여인]정도가 아닐 까?
하여간  여기에서 <이인>은 다른 사람, 이상한 사람, 기이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이인(異人)과 두 사람인 이인(二人)의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기에 이 소설은 서로 평행관계에 있는 다소 비대칭적인 두 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1 부에서의 주인공인 뫼르소와 제2 부에서의 주인공인 뫼르소는 동일인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모순적인 二人인 것같이 쓰여져 있다는 것이다. 즉 제1 부에서의 뫼르소는 자기의 시선으로 바라본 자신이고,  제2 부에서는 타인(수사검사, 공판검사. 변호사 등)의 시선으로 바라본 뫼르소로서, 이 두 대상은 동인인이지만 서로 일치될 수 없는 다른 사람(異人.二人)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소설의 구조, 형식, 시각들로 비추어 볼 때 <이인>이라는 제목이 보다 적절한 것이라는 주장이 더 타당성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주인공 뫼르소는 이방인이 아닌, 낯선 사람, 타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영어번역본에서도 foreigner가 아닌 stranger, outsider로 번역되어 있는 것 같기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경찰,사창가,젖은 수건,일요일을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느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만사를 귀찮아 하는 내성적이고 어떤면에서는 이기적이기도 한 현대 젊은이를 표상하고 있다.
그는 태양과 바다를 사랑하며,자신과 직접 접촉하여 사는 이웃사람들에게는 다소 배려해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사회를 멀리하고,자기 집 주위만을 맴도는 주변인에 머물고 있다. 만사가 시쿤둥 한듯  마찬가지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가며.그와 몸을 섞는 사이인 여자친구 마리아 마저도 뫼르소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와같이 뫼르소는 우리와는 다른 인간, 이인이며, 여러 가지 차원에서 두종류의 뫼르소로 보여 주지만, 그가 작열하는 태양과 바닷가 뜨거운 모래사장의 열기속에서  약간의 신체상의 위협이 있었다고는 하나  위협사격을 한다든가, 칼잡은 손을 쏜다든가 하는 대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아랍인에게 권총을 네발이나 쏘아 죽여버린다.
이유가 크게 없는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를 기소하고 그에게 사형을 언도한 재판결과가 빌라도가 예수에게 사형선고한  것과 비교하여 판결결과가 불공정하다고 비난한다거나, 한 걸음나아가 그의 처형을 예수의 그것과 비교한 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 같고 그 런입장을 수긍 해야 할 타당한 사유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없는 것 같다.
자기 실존을 확인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실존을 말살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문명인을 자부하는 프랑스인이 피식민지 인간이며 이교도이며 미개인인 하찮은 아랍인을 죽였다고 해도 말이다.
이 소설 말미에서 그와 비교적 밀접한 관계를 가져온 살라마노 영감의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해야 합니다." 라고 외친 말이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 말인가? 다만 이 말을 현대의 세분화된 세상 속에서 오직 자기와 관련된 것에만 관심을 두고 타인에게는 전혀 무관심하게 살아가고 있는 일부 특이한 젊은이 들에게도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고, 그들에게도 진정한 실존의 의미를 찾아주어야 한다는 외침의 말로 이해할 수는 있겠다.
[이인]뫼르소, 알베르 카뮈가 그린 보통 이인
[문]알베르 카뮈의 <이인>이 왜 <이인>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이에 대해 자신이 이해한 바와,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을 정리해보세요  
  
[답]나는 강사가 직접번역한 "이인"이라는 제목의 번역본이 아닌 김영섭교수가 번역한 "이방인"이라는 제목의 번역본으로 이 작품을 감상하였다. 주요 고전들 대부분이 국내에 처음으로소개될 때 일본어역본을 중역하거나  참고하여 번역했기 때문에 원어에서 나타나고자 했던 뉴앙스를 충분히 나타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데 알렉산드로 듀마의 [La dame Aux Camelias]가 일본식 번역어 춘희[椿姬 츠바키 히메 : 동백아가씨]라는  의미를 알 수없는 말로 굳어진 것이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 의미상 정확한 제목은 아마[화류계 여인]정도이고  문자 그대로 의미는
[동백꽃을 단 여인]정도가 아닐 까?
하여간  여기에서 <이인>은 다른 사람, 이상한 사람, 기이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이인(異人)과 두 사람인 이인(二人)의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기에 이 소설은 서로 평행관계에 있는 다소 비대칭적인 두 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1 부에서의 주인공인 뫼르소와 제2 부에서의 주인공인 뫼르소는 동일인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모순적인 二人인 것같이 쓰여져 있다는 것이다. 즉 제1 부에서의 뫼르소는 자기의 시선으로 바라본 자신이고,  제2 부에서는 타인(수사검사, 공판검사. 변호사 등)의 시선으로 바라본 뫼르소로서, 이 두 대상은 동인인이지만 서로 일치될 수 없는 다른 사람(異人.二人)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소설의 구조, 형식, 시각들로 비추어 볼 때 <이인>이라는 제목이 보다 적절한 것이라는 주장이 더 타당성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주인공 뫼르소는 이방인이 아닌, 낯선 사람, 타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영어번역본에서도 foreigner가 아닌 stranger, outsider로 번역되어 있는 것 같기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경찰,사창가,젖은 수건,일요일을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느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만사를 귀찮아 하는 내성적이고 어떤면에서는 이기적이기도 한 현대 젊은이를 표상하고 있다.
그는 태양과 바다를 사랑하며,자신과 직접 접촉하여 사는 이웃사람들에게는 다소 배려해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사회를 멀리하고,자기 집 주위만을 맴도는 주변인에 머물고 있다. 만사가 시쿤둥 한듯  마찬가지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가며.그와 몸을 섞는 사이인 여자친구 마리아 마저도 뫼르소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와같이 뫼르소는 우리와는 다른 인간, 이인이며, 여러 가지 차원에서 두 뫼르소로 보여 주지만, 그는 작열하는 태양과 바닷가 뜨거운 모래사장의 열기속에서  신변상의 큰 위협이나 특별한 이유없이 한 사람의 아랍인에게 권총 네발을 쏘아 죽여버린다.
이유가 크게 없는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를 기소하고 그에게 사형을 언도한 재판결과가 빌라도가 예수에게 사형선고한 것이나 아테네 법정에서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언도한 것과 같이 판결결과가 불공정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해야 할 타당한 사유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없는 것 같다.
자기 실존을 확인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실존을 말살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문명인을 자부한 프랑스인이 피식민지 인간이며 이교도인 아랍인을 죽였다고 해도 말이다.
이 소설 말미에서 그와 비교적 밀접한 관계를 가져온 살라마노 영감의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해야 합니다." 라고 외친 말이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 말인가? 다만 이 말을 현대의 세분화된 세상 속에서 오직 자기와 관련된 것에만 관심을 두고 타인에게는 전혀 무관심하게 살아가고 있는 일부 특이한 젊은이 들에게도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고, 그들에게도 진정한 실존의 의미를 찾아주어야 한다는 외침의 말로 이해할 수는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