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참가
가인/천근엽,산안개/박성식.일출/문정선,백련/장수현,솔향/양근모
김육태,정언묵,박문환,김한주,정동윤.............................................15명
일정
인천공항에서 숙소 로즈캐빈까지
..............................................
북아등 특징중에 하나가 시간을 잘 지킨다는 것이다.(약속은 9시였다)
인천국제공항 G번(일정표에는 6번으로 보인다고 6번을 찾은 친구도 있음)에 전원 모인
시각은 8시 30분경이었다.나는 7시에 집에서 나와 서울역에서 7시 25분에 공항버스
리무진을 탔는데 50분 정도 소요 되었다.
일찍 출국 수속으로 한뒤 면세점에서 간단한 쇼핑을 하며 기다리다가 11시 30분
말레이항공 MH-65편으로 코타 키나발루 공항으로 이륙하였다.
약 4시간 50분이 소요되며 현지의 온도는 섭씨 33도 정도라는 아나운서 멘트가 있었다.
시간이 서울보다 약 1시간 늦어진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시계를 현지시간으로 고치진 않고
한국시각 빼기 1을 하며 시계를 보았다.
도착하니 현지 가이드 조나딴(산행은 불참),한국인 통역 박건순씨 (남;실제 가이드),압준 기사가
우리들을 맞이 주며 짐을 챙겼다.숙소는 공항에서 2시간 30분정도의 버스 거리에 있으며
우리는 로드캐빈으로 이동중에 실제의 가이드인 박건순씨의 전체적인
일정과 사바섬의 풍속과 인구,종족의 분포,집의 구조등을 들을 수 있었고 도중의 휴게소에서
손가락 두개 크기의 바나나와 탱자크기의 랑샷을 먹어 보았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보르네오섬 북쪽의 말레이시아 사바주 안에 위치한 코티키나발루는
일년내내 여름인 아열대 기후이며 고산지대는 늦가을이나 초겨울처럼 쌀쌀하단다.
가이드에 의하면
공항에서 시내까진 7분정도 걸리며
건물에 파란색이 칠해져 있는것은 경찰 아파트며 인구분포는 말레이계가 40%.중국계가 30%
나머지 30%이며 말레이종족은 카다잔족과 두손족으로 쌀농사에 종사하는 부유계층인데
카다잔족은 시내에서 현대산업에 참여하여 부자가 많고 두순족은 시골에 살아 가난한 편이라고.
카나발루 공원은 2000년 12월 유엔에서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뱀도 못잡으며 사피섬에선
수많은 바닷고기도 잡지 못한다고 한다.
자동차는 일제가 많고,중고차값이 비싸며,기름값은 한국의 1/4 정도며,최근에 이곳으로
유학 오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말레이어,영어,중국어를 함께 배울수 있다며,
지상의 집도 수상가옥처럼 사각기둥으로 떠있게 지었다.뱀이 올라오지 못하고 스콜시 습도를
막기 위하여,1부 4처의 이슬람 풍속으로 이혼하면 자식은 남자가 책임져야한다고,
조혼하여 16~17세에 여자는 애가 엄마가 되며 평균수명이 55~60세 정도이며,인사를 할땐 오른손을
가슴에 얹는다고 하는데 한번도 볼 수가 없었다.손가락으로 가르키는 것은 욕을 의미하며
주먹쥐고 엄지로 가리켜야한다고 한다.술은 빨대로 돌려가며 마시고,바다의 산호가 뼈에 좋아서
허리 휜 사람이 없다고 하며 인조뼈도 산호로 만든다고 한다.
이곳의 코큰 숫원숭이는 나무를 탈때 성기가 덜렁거리는 것을 피하여 늘 발기시켜 몸에
착 붙히고 다닌다고 하며 암컷이 임신하면 버리며(60키로 몸집에 성기 길이는 30센티)간단다.
산거머리가 아지랑이 처럼 춤을 추며
산속에서 여성들이 소변을 보면 산거머리 때문에 대단히 위험하다고 하며
그래서 사냥할 때는여자를 데리고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현지어로 바나나는 비상,오징어는 소똥,옥수수는 자궁이라 발음한단다.
가이드의 설명을 다 듣고나니 숙소인 로즈캐빈에 도착하였다.(한자로 天山酒店)
이곳은 해발 1500미터로 바로 이웃에 Fairy Golden Resort도 있었다.
부부의 방을 최근에 지은 넓직한 방이 배정되었고(더불 더하기 싱글 침대)
싱글은 두명씩(싱글 침대 둘) 이층에 배정되었다.
방에는 에어컨도 히타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지만 순간 온수기가 있어서 더운물로
샤워할 수는 있었다.
현지식(내가 생각하기로는 중국식)으로 저녁을 먹고 한주방으로 소주를 들고 집합하였다.
나른한 피곤을 소주 한잔 마시고 잠 잘 생각이었는데 술이 늘어났고, 마당에 나가서 한잔씩
밤하늘의 별을 보며 더하고는 내일의 산행을 위하며 절제,절제하며 10시반에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둘쨋날;라반라타 산장까지(2005.10.9)
참가 전원/산행가이드 3명(포터 겸함),김석우 서울가이드,박건순 현지 가이드..20명 일정 1)등산과 라반라타 산장까지 아침 5시에 기상하여 30분 정도 조깅을 하는데 하늘의 별들이 바로 머리 위로 쏟아질 줄 알았는데 왕관에 달린 보석처럼 떨어지진 않았다. 내일 이시간쯤은 키나발루 정상아래서 땀을 흘리고 있겠지. 한바퀴 돌고 오니 성식이도 마당으로 나왔고,또 한번 돌고오니 언묵이도 산책을 나왔다.금방 하늘이 밝아지고 일찍 일어난 친구들이 마당으로 나와 아침산을 보았다. 숙소 뒷편으로 카나발루 정상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매일 스콜로 씻기웠는지 화강암이더욱 하얗게 빛나며 신비로움을 보여 주었다. 8시20분에 공원 관리 사무소(1564m)에 도착하여 입산 신고를 하고 산행가이드 3명을 배정 받았고 (8명당 1명씩 배정)이들 산행가이드는 포터를 겸하며 정상까지 함께 하였다. 짐이 많은 친구들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포터 수수료는 1 키로당 \2.200 이며육태,문환,현지가이드,산안개,백련,가인씨가 짐을 맡겼다. 산행가이드는 선임이 마이클,따비,꼴리니우스 3명이 맡긴 짐을 모두 해결하였다. 입산신고를 하고 이름표를 받으니 가져갈 것은 사진이며 남겨둘것은 발자국뿐이라고 영어로 적혀 있었다. (Take nothing but photographs. Leave nothin but footprints.) 20분 정도 기다리며 얼굴에 썬크림을 바르고 주의 사항을 숙지하고 공원 셔틀버스로 팀폰게이트(1866m) 에 도착하여 이름표를 확인하고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하였다. 입구 게시판엔 역대 산악마라톤 작년 성적 1등은 2시간 40분 04초로 이탈리아인이 차지하였고 금년에는 멕시코인이 1등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도 당초 10월초에 산행을 계획했었는데 국제 산악마라톤 행사로 밀렸었다.
산행은 제1휴게소(1981.7 m) kandis Shelter 9시29분 제2휴게소(2081.4 m) Ubah Shelter 9시52분 제3휴게소(2267.4 m) Lowii Shelter 10시32분 제4휴게소(2515.47M) Mempening Shelter 11시28분 제5휴게소(2702.3 m) Layang Layang Shelter 12시15분 제6휴게소(2960.8 m) Villsa Shelter 14시15분 제7휴게소(3080.42m) Paka Shelter 비로 인해 그냥 통과 라반라타 산장(Laban Rata Resthouse) 16시10분도착(선두는 15시 40분) 처음부터 시종 오르막이 계속되며 내리막길은 없었다. 계단은 흑단나무로 만들어져 있으며 군데군데 손잡이도 까만 흑단나무로 반질반질 하였다. 날씨는 서늘한 초가을 날씨 같았다. 변화무쌍한 구름과 파란하늘,빛나는 하얀산 그리고 웅장한 열대림이 남국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나무줄기는 열대성 소나기인 스콜 때문에 모두 이끼가 끼어 있으며 쉼터마다 들쥐들이 사람들의 주변을 서성거렸고 제5 휴게소에서 한국식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다. 라양라양은 제비 서식지라는 뜻으로 해발 2740미터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다른 코스(메실라우트레일)와 겹쳐지는 곳으로 사람들이 많았다. 흑단나무 계단보다 돌계단이 많아졌고 계단의 높이가 꽤 높았다. 계단의 높이를 서양인을 기준으로 영국인이 설계됐다는 얘기도 들렸다. 6휴게소(2960.8M)부터 고소증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다른 등산객이 구토하는 모습도 보였고 과자의 포장지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도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고 라반라타 산장에 도착할 때까지 비가 내렸고 잠시 그치는 경우도 있었다.우리들은 방수 옷이나 우의.우산으로 우중 등산을 즐기게 되었다.북한산에서 자주 우중등산을 한탓에 비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없다 하루중 언젠가는 한번 이상 내릴 비였기에 반갑기도 하였다.정상에서 하얀 빗줄기의 긴 폭포가 어두워진 화강암 위로 수백미터의 높이로 빗물이 떨어졌다. 비가 그치면 없어지는 폭포수다. 산행가이드들은 이곳 관리소에서 모든 숙식이 제공된다고 들었다. 2)산장에서 ㄱ.)고소증과 술 애호가들 우리 대원들 중에 고소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서울에서 동행한 김석우 팀장과 한주 뿐이고 나머지 친구들은 전혀 경험이 없었다. 대부분 약간의 고소증을 느꼈으나 특히 산안개님과 성식이,수현이가 심하였고 나도 조금 불편하여 술을 사양하였다. 부페식 저녁식사를 하면서 가지고 온 젓갈류와 김치로 느긋하게 만찬을 즐겼다. 샤워 시설이 되어 있었으니 현지 산행 가이드외엔 샤워를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고소증에 도움이 되지않고 급격하게 내려가는 기온 때문에 체온을 유지함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방은 여성들 5명,남자들은 4명,8명으로 나누어 배정했는데 방마다 바퀴벌레들의 천지였다. 우리나라 군인들이 베트남에서 귀국하며 가져온 나무박스에 숨어온 바퀴벌레가 우리나라 바퀴벌레의 원조였다고 근모가 들려주었다. ㄴ.)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 잠을 이룰 수 없는 가장 큰 원인은 고소증이며 그 다음은 바퀴벌레들의 활약을 꼽으며 마지막으로 낡은 2층 나무침대의 삐꺽거리는 소리였다. 고소증을 이기기 위하여 성식이는 헬기장을 50번 이상 돌며 소화되지 않는듯이 더부룩한 현상과 씨름 하였고 수현이도 수시로 바깥바람을 쐬며 고소증을 달래었다. 나는 조용히 누워서 일찍 잠을 청해 보았지만 두통이 사그라 들지 않아 아스피린을 얻어 먹었다. 나도 아스피린을 들고 왔는데 출발시에 짐을 가볍게 하라는 김석우 팀장의 얘기를 듣고 약을 빼 버렸고 함께 가지고 온 헤드랜턴도 약병과 한 곳에 두었기 때문에 두고 왔다. 가만히 누워있는 것보다 대화를 나누며 차를 많이 마시는게 좋다는 충고로 다시 식당으로 내려가 술자리에 끼어 들었다. 언묵이는 그림엽서를 몇장 골라내어 보여 주었고 석우씨의 경험에 의하면 외국에서 보낸 엽서가 꽤 감동이 온다는 얘기를 듣고 한주를 비롯한 몇몇이 그림엽서에 가족 사랑을 담아 석우씨에게 발송을 부탁하였다. 모든 친구들이 힘들었지만 관절염으로 한달 이상 고생하며 치료해온 산안개씨는 심한 고소증으로무릎이 아픈 줄도 모를 지경이었고 가인씨도 최근 발목 부상으로 치료중 임에도 기꺼이 참가하였다. ㄷ.)산장의 풍경 라반라타 산장은 고도3358M 로 산행 출발지에서 6KM 에 위치하여 있다. 입구에 넓은 헬기장이 작은 운동장처럼 있었고 3층 건물로 팔각형 중에 3각의 모습으로 지어 놓았다.인근의 산장인 Waras Hut(3244m),Gunting Lagadan Hut(3323m),Pana Laban Hut(신의 제단:3314m), 에는 없는 히터가 있어서 잠 잘 때 추위로 부터의 공포는 해결 되었다. 산장은 선착순이며 내국인 우선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인들은 종종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다.물론 우리는 일찍 예약을 해 두었다. 이곳의 일몰은 대장관이었다.바로 머리 위에서의 구름으로 비는 내렸으나 헬기장에 서있는 나의 그림자가 길게 보이며 주변은 환하였다.비는 수직으로 내렸고 지는 저녁해에 구름의 그림자는 사선으로 멀리 달아났고 동쪽 하늘에는 반원의 쌍무지개가 당당하게 보였다. 운해아래 낮은 산들과 그 위의 구름들이 모두 발 아래에 있으니 천상에 올라온 기분이었다. 오른쪽의 어두워진 키나발루 산과 왼쪽의 구름이 산을 이루어 마주 보는 듯하였고 뒷쪽의 하얀 구름산은 빙벽을 연상케하며 높고 두껍게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이렁게 멋진 일몰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다음날 일출을 나는 감상하지 못하였나보다. 해가 지고도 한참동안 저녁 노을을 언묵이와 한주는 바라보았다고 하였다
"키나발루 트래킹/셋째날(2005.10.10)"
1.새벽 2시의 출발
고소증으로 고생하며 억지로 잠을 청하지만 희박한 산소로 잠들기가 어렵다.
수시로 물을 마셔본다.
잠들 지 못해 몸을 뒤척거리면 나무침대의 아우성이 다른 사람의 잠마저 빼앗는다.
가수면 상태를 유지하다 밤 1시 30분에 기상하여 대망의 로우픽 봉우리 등정을 준비한다.
한국에서 가져온 누룽지를 물에 끊이고(주방에 부탁함) 아침으로 준비된 빵과 스프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출발을 서둘렀다.스틱이 필요없다는 말과 필요하다는 말을 우리는
그간의 경험으로 당연히 필요한 쪽으로 선택하고 모두 스틱을 챙겼다.
2시 20분,생각보다 좀 늦게 출발 하였다.
부족한 잠과 고소증을 온 몸에 감추고 어둠을 헤치며 산으로 들어갔다.
모두 헤드랜턴과 손전등을 준비해 왔고 나도 석우씨에게 손전등을 빌릴 수 있었다.
천천히 걸어라,갈지자로 걸어라,늦게 오르는 사람이 정상에 먼저 오른다 등등 서둘지 않고
오르도록 강조하며 절대로 산행 가이드를 앞지르지 못하도록 압박 당하였다.
그리고 우리를 추월하는 사람이 있으면 과감히 양보하라고 한다.
천천히 걸으니 대오의 후미로 조금씩 밀려났다.
내가 산에서 좀 빨리 걷는 편이라 다른 사람들이 따라오기 어렵다고
더 후미로 빠져라는 얘기를 듣고 아예 맨 뒤쪽에서 따라갔다.
최고봉의 이름이 low's peak(4095.2m) 이라면 다른 어딘가에 high's peak도 있다는
이야긴가? 아니면 1851년에 최초로 Sir Hugh Low 씨가 탐험대를 이끌고 이 산을 올랐기
때문에 Low's Peak 이라고 불렀을까?
아마 후자라고 생각하며 한걸음 한걸음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조금 올라가니 파나라반(Pana Laban Hut;신의 제단)를 만났는데 이곳에서
선조들의 넋을 달래는 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2.고소증과 싸우는 6시간
밤 2시 20분에 출발하여 산장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8시 40분으로 6시간의 장정이었다.
아주 심한 고소현상으로 산행을 포기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그러나 모두들 조금씩
두통과 무기력증을 느끼면서도 귀가 아프게 강조하는 천천히 걷기에 충실 하였다.
선두그룹과 중간그룹 후미그룹으로 나누어져서 위로 위로 올라갔다.5시가 지나자 어둠이
빠져나가고 랜턴이 없어도 길이 보일 정도였다.
손전등을 끄고 주위를 보니 근모와 솔향씨가 나란히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고
육태도 서둘지 않고 걸어가고 있었다.그 위로 한주가 쌍지팡이로 천천히 가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나는 후미에 속해 있었다.
일찍 올라가면 추운데서 기다리게 되니 천천히 가라는 의견에 동조하여 살아 오면서
가장 느린 걸음으로 걸어 보았다.그런데 5시 30분이 지나니 현지 가이드가 5시 50분에
해가 뜨니 빨리 가라고 한다.정신이 버쩍 들었다.정상까지는 까마득한데 일출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초조 하였다.그때부터 있는 힘을 다해 빨리 걸었다.
하늘이 더욱 밝아오고 로프를 따라 올라가면 도저히 일출을 보기가 어렵다고 판단되어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갔다.정상에서는 볼 수 없어도 능선에서라도 볼 수 있다면 다행이라
믿고 무리하게 걸었다.그러나 능선에 오르고 보니 일출은 볼 수 없었다.오른쪽으로
내가 오른 능선보다 더 높은 능선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아뿔사...
King Edward Peak,Ugly Sister Peak.등이 길게 뻗어 있어서 Low's Peak에 이르지 않으면
일출을 보기 어려웠다.일출을 보기 위해 밤잠을 설치고 어둠을 가르고 올라왔는데 단 10분
차이로 수평선 위로 이미 훌쩍 올라온 아침 해를 보아야 하다니..
다행히 선두에 있었던 문환이와 수현이,백련씨는 일출을 보았다고 하였다.
15분 ~20분 사이로 모두 정상에 도달하였으나 정상에 오래 머물면 뇌세포의 손상이
온다고 사진 한 장만 찍고 곧장 내려 가란다.모두 함께 사진도 찍을 수 없으니 난감하였다.
일본팀들이 모두 모여 현수막을 걸고 사진 찍는 모습이 부러웠다는 문환이의 소감을 들으며
조금 아래 양지바른 곳으로 내려가서 전체 사진을 찍자고 하였다.정상주도 한 모금하고.
조금 늦은 친구들도 기다리며.
3.전원 낙오자 없이 4095.2M 고지를 오르다.
비록 키나발루 정상에서 다 함께 일출을 맞이하지 못하였지만 Low's Peak에 우리들의
발자국을 남길 수는 있었다.우리 친구들의 산행 능력을 과소 평가한 현지 가이드의
지나치게 안전을 강조하다 보니 목표관리를 하지 못하였다.사전에 일출 시간을
내 스스로 확인하지 않았고 전체적인 산행 조율을 후미에 스스로 밀려가서 하지 못하여
충분히 일출을 볼 수 있는 친구들까지 아쉬움을 남게하여 미안하였다.
최소한 10명은 가능하였는데..
양지바른 곳에서 로우 협곡으로 가는 너덜지대를 바라보며 북아등 친구들이 모였다.
관절염으로 고생하면서도 끝까지 완등한 산안개씨와 역시 발목의 부상을 딛고 정상에
다녀 온 가인씨에게 모두 박수로 그간의 고생을 위로해 주었다.
8시 50분경 라반라타 산장에 도착하니 잠이나 실컨 자고 싶었다.
아침식사는 새벽에 출발할 때와 같은 토스트와 야채,스프 였는데 영 입맛도 없고
부족한 잠만 자고 싶을 정도로 만사가 귀찮았다.고소증상이 아직 남았나보다.
그래도 내려가야하니 억지로 요기를 하고 9시 40분 쯤 하산을 시작하였다.
피곤하지만 않으면 내려오는 길에 열대숲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하며 노래라도
부르며 즐겼을 텐데. 무거운 몸으로 수많은 계단과의 긴 씨름이 계속 되었다.
등산보다 하산을 더 조심해야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걸었다.
육태,문환이,정선이,일출씨는 석우씨와 함께 잰걸음으로 먼저 내려갔고 나머지 친구들은
가인씨와 산안개씨를 동무로 식충식물인 낭상엽도 감상하며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우리가 팀폰게이트를 최종 통과한 시간은 오후 2시,먼저 내려온 친구들은 오후 1시쯤
통과 했다고 한다.어제 7시간,오늘 약 10시간 모두 17시간의 산행을 하였으니
종아리와 허벅지가 뻐근하여 일어설 때마다 끙끙 거린다.
키나발루 등반 확인증을 나중에 모두 교부 받았다.(산행 가이드들이 확인후
교부하며 정상까지 오른 사람에게만 칼라로 발급한다고.)
이제 푹 쉬는 일만 남았다.
북아등 200회 기념 행사의 하나인 키나발루 등정에 참가한 전원이 최고봉 Low'd Peak
을 올랐음 보고드립니다.잘 다녀 왔습니다.
키나발루를 떠나며(2005.10.11)
카나발루산 인근의 숙소(로즈캐빈)에서 늦은 점심을 마치고 보관해 두었던 짐을 찾아
코타키나발루 시내의 호텔로 향했다.
로즈캐빈의 숙소처럼 2인 1실로 535/천근엽부부,622/양근모부부,735/박성식부부,
722/문정선부부,835/장수현부부,926/언묵동윤,1030/문환육태,1022/한주석우로 배정
되었다.여장을 풀고 간단한 샤워를 한 후 시내의 부페식 샤브샤브 식당으로 이동하여
별난 식사를 해 보았다.
호텔로 돌아와서 다시 한주방에 모여 시바스리갈,발렌타인,조니워카,소주 6팩을
나누어 마시며 피곤한 몸을 달래었다.
나는 술을 많아 마시면 안구건조증과 안면근육의 이완으로 눈물이 흘러나와 오해의
소지가 많기 대문에 '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하지 못하였고...'
모두 대취 하였을 것이다.
내일 아침 8시30분에 사피섬으로 이동해야 하지만 피곤한 심신 술에 취해 빨리
잠들고 싶었다.방으로 돌아와서 온수에 몸을 풀고는 이내 잠이 들었다.
아침 8시 10분 경에 잠이 깨어 허둥지둥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성식이부부와
정선이 부부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수현이 부부와 근모 부부는 상쾌한 기분으로 일찍 일어나서 아침 산책도 하였다나.
다른 곳으로 운동하러 간 문환이와 육태 그리고 한주도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약간의
차질이 있었지만 잘 다녀왔단다.오후에 들은 이야기다.
12명은 유람선을 타고 사피섬으로 이동 하였다.
사흘간의 산을 잊고 바다와 친해지는 시간이다.
여러가지 해양놀이가 있지만 경비가 별로 들지 않는 스노클링을 남자들은 하기로 하고
구명조끼등을 무료로 빌려서 바다로 나갔다.여성들은 씨워킹($70)을 하도록 유도하고
바닷물에 몸을 담궜다.정선이와 수현이는 바다 깊이 들어가지 않았고 성식이와 근엽이는
좀 늦게 발동이 걸렸고 근모와 나는 아예 물 밖에 나오지도 않았다.
나중엔 오리발도 빌리고 샌달도 신고 스노쿨링을 하니 산호에 발이 다치는 일이 줄었다.
나는 여러군데 상채기를 입었으나 개의치 않고 열대어와 바닷속 풍경에 깊이 빠졌다.
점심으로 해산물 BBQ로 게와 새우등을 많이 먹었다.
가장 햇살이 뜨거운 시간임에도 솔향씨,백련씨와 가인씨를 대동하고 남자들은 또 바다로
나갔다.비싼 씨워킹보다 우리와 함께 한 스노클링이 훨씬 재밋고 바닷속 풍경에 여성들은
감탄에 감탄을 하였다.억지로 권한 보람이 있었다.
뜨거운 햇살에 종아리 타는 줄도 모르고 놀다가 정선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바다에서
나왔다.3시까지 호텔의 체크 아웃을 해야하므로 서둘렀다.돌아오는 길은 모타보트로
속도도 즐기고 휘청거리는 스릴도 맛보았다.파라세일링(보트에 낙하산을 연결하여 하늘을 남)
하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시내관광을 마치고(주청사,이슬람 사원, 중국식 절,전망대,카디쟌 축제를 한 민속촌?),
한국식 식당에 들러 삼겹살과 소주의 한식으로 마지막 저녁을 푸짐하게 먹었다.
소주 한 병에 만원이라고 들었는데 확실치가 않다.
다시 리카스 콘도에 들러 너댓시간 남은 비행기 시간을 기다렸다.
피곤하여 잠시 눈을 붙히거나 샤워를 하거나 하였고 나는 남국의 바다 햇살에 익은
빨간 피부를 식혀 보려고 찬물에 한참동안 몸을 담궜다.
그동안 근모는 슈퍼에서 맥주와 안주를 사왔고 우리들은 이번 키나발루 산행의
총평와 향후 바람을 모두 한마디씩 하였다.오기 어려운 친구들이 왔기 때문에
더욱 보람이 있었고 일년에 한번쯤 이런 이벤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모두들 많은 추억과 스트레스를 싹 날리고 공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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