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흔들리는 날
어느 해 오월 홍릉 숲에서
모란을 보고 있을 때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을
누군가가 "모란이 지기까지는"이라는
확신에 찬 목소리에
몹시 흔들린 적이 있었다.
휴대폰 기능이 약한 시절이라
집에 오는 내내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지기까지는
반복하며 중얼거리다
집에 와서 컴퓨터 검색 후에
참 허탈했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싸락눈이 함박눈으로 변한
인왕산길을 걷다
통인 시장으로 나와
어느 지하 만둣집에서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서른,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로
누가 고쳐 말하는 바람에
또 심하게 흔들렸다.
휴대폰 검색하면 금방이지만
대화의 핵심이 아니라 넘겼더니
만두전골 국물이 짜졌다.
어설프게 아는 것은
더 깊이 아는 것을 방해한다.
따뜻한 물 한 잔,
아직 물맛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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