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市 능선)

또 흔들리는 날

능선 정동윤 2019. 5. 19. 21:23

또 흔들리는 날

 

 

어느 해 오월 홍릉 숲에서

모란을 보고 있을 때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을

누군가가 "모란이 지기까지는"이라는

확신에 찬 목소리에

몹시 흔들린 적이 있었다.

 

휴대폰 기능이 약한 시절이라

집에 오는 내내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지기까지는

반복하며 중얼거리다

집에 와서 컴퓨터 검색 후에

참 허탈했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싸락눈이 함박눈으로 변한

인왕산길을 걷다

통인 시장으로 나와

어느 지하 만둣집에서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서른,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로

누가 고쳐 말하는 바람에

또 심하게 흔들렸다.

휴대폰 검색하면 금방이지만

대화의 핵심이 아니라 넘겼더니

만두전골 국물이 짜졌다.

 

어설프게 아는 것은

더 깊이 아는 것을 방해한다.

따뜻한 물 한 잔,

아직 물맛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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