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市 능선)

가을 메타세쿼이아 이야기

능선 정동윤 2020. 11. 20. 11:36

가을 메타세쿼이아 이야기

간밤에 내린 가을비에
우리 숲 낙엽들이 모두 입을 닫았다
솔잎도 가랑잎도 비에 젖어
바스락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내 발자국 소리에 숨죽이며
바람이 불어와도 들썩거리지 않는다
양반나무라는 대추나무보다
의젓한 메타세쿼이아 나뭇잎이
깃털처럼 가볍게 내려앉아
눈처럼 푹신한 숲길을 만들어 준다.

중생대 백악기부터 살아온 나무로
빙하기 때 멸종되었다고 알려졌으나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살아있는 화석으로
뼈대 있고 전통이 있는 준수한 줄기는
함부로 허리를 숙이지 않으며
겨울이 채 가기도 전에
안달하여 꽃을 피우거나
봄이 무르익었다고
온통 하얀 꽃을 퍼뜨리며
사람들을 현혹하지도 않는다.
봄이 지나갔다고 잊을만해야
비로소 지난해 맺은 열매 떨궈내고
연초록 잎을 틔운다고 한다.

삼림계에서는 귀족 가문이지만
매화를 좋아한 조선의 선비들과는
친할 사이가 없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엔 1956 년에 들어왔으니
나보다도 나이는 어리지만
그리 단단하지 않는 속성수로
쭉쭉 뻗은 기골이 장대하여
담양, 양재천에도 유명한 가로수로
한참 선배이고 스승 같아 보인다.

외래종이라면 함부로 번식하여
토종 식물과 경쟁하며 더러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메타세쿼이아는
오히려 사랑받기에도 바쁘다.
키 훤칠하고 몸가짐이 반듯하고
아무 데나 촐싹거리며 나대지 않고
멋대로 가지를 뻗지 않아서
이웃과도 잘 지내고 있다

가을바람에 길가에 서 있는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난 뒤,
제우스가 황소로 변하여 에우로페를
납치하여 플라타너스 아래서 사랑을
하였기에 제우스는 이 나무에게
가장 늦게 낙엽이 되라고 하였다.
가을비에 플라타너스 넓은 잎이
도로를 덮을 때쯤 메타세쿼이아는
비에도 불구하고 나뭇잎을 떨구지 않고
저녁 6시 전에 어둠이 내려야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듯 뒤늦게
다른 낙엽 곁에 내려와서 앉는다.

내가 일하는 우리 숲 상징이 바로
이 점잖은 메타세쿼이아 신사이시다.
주변의 유명짜한 이름 들먹거리며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
늘 높은 하늘과 대화하는 편이란다
하늘은 아무리 높고 넓어도 스스로
자랑하는 법이 없다고 하면서
겸손한 몸짓으로 하늘을 우러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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