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길(山 능선)

진경산수화 길

능선 정동윤 2022. 12. 3. 15:14

진경산수화 길, 겨울 산책/정동윤

겸재의 진경산수화는
눈 앞 풍경에 화가의 생각을 담아
자신의 시선이 잘 드러나도록
사물의 본질을 파고드는 그림이다
한 시대를 열어주는 그림,

그 뜻을 따라 걷는 겨울 산책은
창의문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서시' 비와 뒷면의 '슬픈 족속'을
낭랑히 읽고 출발한다
발 아래,

청운 문학도서관은 한옥 기와집
마당의 연못과 꽃담이 일품
백운계곡 절벽 위의 그윽한 자태
한양의 서촌이 옹기종기 보인다.
눈 밑 백운동천 바위,

그곳으로 가려면 구기터널 입구 옆
모르몬교의 교회당 언덕을 오르면
풍운아 김가진 전 법무대신의 집
시들고 바랜 묵정밭 변함없는 바위
온 길을 되돌아서,

언덕 아래 경기상고로 들어서면
화단엔 고귀한 붉은 반송의 도열
건물 뒤쪽에 은거한 청송당지는
청송 성수침이 공부하던 서당
사화의 중종시대,

조광조의 제자로 명망이 높았으나 기묘사화의 불길에 올곧은 스승이
귀양가고 사약 받자 벼슬을 피해 학문과 자기수양 아이들 가르쳤다
아랫 동네,

경복고 마당은 겸재 정선의 생가
몰락한 양반 집에서 그림 그리다
김창집의 눈길 사로잡아 벼슬하고
시대의 흐름을 그림에 녹여냈다.
바로 인왕제색도,

조선 후기 문예 르네상스의 중심
장동 김문이 후원한 예술가들
그중 겸재 정선은 이웃 동네의
김창흡의 지원으로 승승장구하였고
안동 김씨는,

조선 후기 왕실의 후손 부족과
세도 정치의 부패가 춤 추었기에
조선 왕의 정치는 비틀거렸고
문화는 세도의 틈에서 꽃을 피웠다
약해지는 왕실,

청운초등학교는 송강 정철의 집터
서인의 수장으로 타협 모르는 강골
왕족의 사돈으로 궁궐 출입이 잦았고
탁월한 글 솜씨는 가사문학의 대가
청풍계과 백운동이 청운동,

그 학교 오른쪽 골목을 올라가면
주택 자투리 땅에 백세청풍 바위
청음 김상헌의 형 김상영의 집터
장동 김문의 기초를 다진 형제다.
척화의 기개가 흘러,

길을 조금 벗어나 청와대 광장 옆
무궁화 공원은 한때 궁정동 안가로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 장소이나
슬픈 피의 흔적은 드러나지 않는다
역사의 수레바퀴,

척화파 김상헌의 시비엔 청나라로
인질로 잡혀가며 남긴 시조 한 수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무궁화 향기에 빼앗긴 이념의 역사
제 갈 길로 돌아와 신교동,

백 년 농학교 지나 송석원 표지석,
중인들의 문화 욕구가 꽃피운 시사
백일장의 치열한 경합은 자부심
풍월향도서 흘러온 위항문학의 극치
열정의 송석원 시사회,

자수궁터 벽에는 위항문학의 모습이
그림과 시로 벽 위에 차분히 담겨
조선 문인의 옛모습이 활달하고
중인층의 진솔한 문화가 돋보인다
수성동으로 가는 길,

박노수 미술관엔 참 예쁜 정원
프랑스풍 건물에 동아시아풍 실내
친일파 거부 윤덕영이 딸에게 준
당시 최고 건축가 박길용의 작품
좁은 길을 건너면,

인왕산 아래 옥인동 윤동주 하숙집
연희전문 기숙사에서 2 년 보낸 뒤
우연히 시인 김송의 집에 하숙하며
정병욱과 '또 다른 고향'을 읊었다
나라 잃은 시인들,

항일의 감시는 김송 시인뿐 아니라
윤동주에게도 뻗쳐 송몽규가 머무는 북아현동으로 하숙을 옮겼는데
운 좋게도 정지용 시인의 집이었다
길 위의 문학,

수성동 계곡 입구 돌다리 기린교
안평대군 옛집이 근처에 있고
안평에게 내린 당호 '비해당'은
'게으름 없이 임금 한 분만 섬겨라'
세종 이도의 말씀,

이 수성동 계곡물이 경복궁으로 흘러
다시 종로 광화문우체국 근처
혜정교를 지나 청계천에 합류하니
수성동 계곡은 청계천의 발원지
지금 청계천은 지하수 퍼올린 물.

여기까지가 진경산수화의 길
세종대왕 나신 곳, 김가진 집터
시인 이상의 집, 통의동 백송
시인부락의 보안여관, 추사 집터는
부록으로 찾아 걸었죠.

갑자기 들어닥친 영하의 한파
점심 먹고 겨울옷 골라 챙겨입고
모자 목도리 마스크 장갑 장착하니
아내도 따라 나섰던 겨울의 산책
자주 걷고 싶은 향기로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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