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 겨우살이/정동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떠오른다.
꽤 오래전 있었던 일인지라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내용은 잊히지 않는다
여의도에서 친구 아들 결혼식에
참여했다가 한강 공원을
산책하다 선유도 닿았다.
선유도에는 예전에 정수장이
있었으나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조성 당시에
지방자치 단체장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도록 단속하고 조경전문가가
소신껏 공원을 만들도록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거닐었다.
잘 가꾸어진 공원 이곳저곳을
거닐고 있었는데
결혼 화보를 찍기 위해 나온
예비 신랑신부와 촬영 기사를
지나다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정중한 부탁을 했다
신랑신부의 화보 촬영 배경으로
뒤에서 걸어가는 사람의 역할을
해주시면 고맙겠다고.
No! 싫습니다.
이제껏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았는데 조연도 아닌 단역으로.
뜻밖의 완강한 거절에 그들 모두
당황한 눈치였다. 다시 그들에게
그러나 나의 조건을 받아주면
협조하겠다고 하니 귀를 쫑끗하며
가까이 다가왔다.
보아하니 곧 결혼할 분들 같은데
저기 겨우살이 아래서 키스하는
장면을 내 앞에서 연출하고
내가 시를 들려주는 모습을 담는다면
기꺼이 촬영에 협조하겠다고.
그리고 겨우살이 아래서 키스를
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과
서양에서는 파티를 할 때
문지방에 위에
겨우살이를 올려놓고 지날 때마다
선남선녀들이 키스를 한다는
내 이야기에 그들은 선뜻 동의하였다
겨우살이가 깃든 키 큰 버드나무
아래 두 젊은이가 마주 보며 섰고,
나도 중간에서 촬영 기사의
지시를 기다렸다.
시작 소리와 함께 그들은
입술만 겨우 닿을 만큼 뽀뽀하였고
나는 류시화 시인의 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를 천천히 들려주었다.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비록 길지 않은 시였지만
나는 최대한 천천히 암송하였고,
그들은 내 시를 귀로 들으면서
입술만 가만히 대고 있을 순
없으리라 생각되었다.
드디어 그들의 볼이 불룩불룩해지고
舌往舌來가 이루어지는 듯하였다
꽤 시간이 지나 나는 그들에게
당시 유행하는 말로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하면서 신랑의 어깨를 툭 치니
그들은 얼굴을 붉히며 떨어졌다.
그날 화보 촬영 기사는
웨딩화보 촬영 십 년에
이렇게 좋은 사진을 찍어본 적 없다며 백화점 점원 이상의
허리를 굽히며 고마워하였고 신랑신부도 의미 있는 키스를
나누었고 나는 눈앞에서....
서울 시청 뒤 프레스센터 지하의
곤드레 밥집에서 친구와 점심을
하면서 엽차로 나온 물이 겨우살이
달인 물이라는 주인의 설명을 듣고
이 얘길 친구에게 들려주면서
겨우살이는 종마의 씨를 받을 때
종마에게 먹여 흥분제로 사용한다
하니 친구도 물 한 컵 훌쩍 마셨다
난 벌써 두 잔이나 마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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