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디오게네스/정동윤
유난히 남루한 노숙자
서울역 광장 구석 벽에 모로 누워
지나가는 세월 멍하니 바라본다
구세군 냄비의 딸랑거림도
급식 봉사자의 빵 봉지 유혹도
눈곱 떼기보다 귀찮아
빵 한 쪽 얻기 위해
긴 줄 오들오들 기다리느니
차라리 굶는 게 낫다
스르르 잠든 사이
누군가 빵 봉지를 두고 갔다
구세군 종소리는 아련히 딸랑거리는데
빵 봉지 뜯기는
식탐으로 허겁지겁 먹어대는
눈치 없는 거지 같아서 싫다
누가 봉지를 찢어
빵 한 조각 입에 넣어주면
못 이기는 척 씹기는 하겠으나,
그나마 다행인 건
주말마다 들리던 데모의 악다구니가
눈 내리는 오늘은 잠잠해서다.



'좋아하는 시(詩 능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백석이 되어 (0) | 2023.01.03 |
---|---|
사평역에서 (0) | 2023.01.03 |
혜화동 겨울 저녁 (0) | 2022.12.13 |
절반의 생/칼린 지브란 (0) | 2022.09.10 |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원태연 (0) | 2021.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