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서울역 디오게네스

능선 정동윤 2022. 12. 13. 16:26

서울역 디오게네스/정동윤

유난히 남루한 노숙자
서울역 광장 구석 벽에 모로 누워
지나가는 세월 멍하니 바라본다

구세군 냄비의 딸랑거림도
급식 봉사자의 빵 봉지 유혹도
눈곱 떼기보다 귀찮아

빵 한 쪽 얻기 위해
긴 줄 오들오들 기다리느니
차라리 굶는 게 낫다

스르르 잠든 사이
누군가 빵 봉지를 두고 갔다
구세군 종소리는 아련히 딸랑거리는데

빵 봉지 뜯기는
식탐으로 허겁지겁 먹어대는
눈치 없는 거지 같아서 싫다

누가 봉지를 찢어
빵 한 조각 입에 넣어주면
못 이기는 척 씹기는 하겠으나,

그나마 다행인 건
주말마다 들리던 데모의 악다구니가
눈 내리는 오늘은 잠잠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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