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이 좋아하는 시인,
일제 시대를 관통하며
민족의 정서를 달래주었던
소월, 백석 그리고 윤동주를 불러내어
시의 호수로 배 저어 갑니다.
1.소월의 시:11편
1.)초혼
2.)진달레꽃
3.)못 잊어
4.)산유화
5.)개여울
6.)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7).먼 후일
8.)임과 벗
9.)가는 길
10.)왕십리
11.)접동새
1.)초혼/김소월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켜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2.)진달래꽃/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3.)못잊어/김소월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라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긋 이러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4.)산유화/김소월
산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5.)개여울/김소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 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런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6.)예전엔 미처 /김소월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7.)먼 후일/김소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 말은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8.)벗과 님/김소월
벗은 설움에서 반갑고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
딸기꽃 피어서 향기로운 때를
고추의 붉은 열매 익어가는 밤을
그대여,부르라,나는 마시리
9.)가는 길/김소월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ㅁ다시 더 한 번
저 산에도 가마귀, 들에 가마귀
서산에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뒤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10.)왕십리/김소월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 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往十里)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던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이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山)마루에 걸려서 운다
11.)접동새/김소월
접동/접동/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 가며 슬피 웁니다.
2.1세대 여류 문인과 시인들도 격변기의 아픔을 겪으며 고뇌했습니다
1)나혜석
2)윤심덕:사의 찬미
3)김일엽
4)김명순
5)한용운 :님의 침묵, 알 수 없어요
6)정지용:고향, 향수
1)나혜석 :
나혜석(羅蕙錫, 1896∼1948)은 한국 근대미술에서 최초의 서양화가로 먼저 알려졌으며, 여성해방론자로서 연애와 이혼 등에 얽힌 풍문으로 인해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으나, 근대문학에서 여성작가로서의 면모는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그러나 1988년에 발굴된 소설 <경희>는 그녀가 1910년대 한국 근대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케 했다. 이후 그녀의 소설이 잇따라 발굴되고, 2000년대 들어 ≪나혜석 전집≫과 ≪정월 라혜석 전집≫이 출간되면서 서양화가이자 여성해방론자이며 근대작가로서의 나혜석의 전모가 드러나게 된다. 이 두 전집은 나혜석의 그림과 시ㆍ소설ㆍ희곡ㆍ콩트ㆍ수필ㆍ평론 등의 문학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비평과 산문 및 미술 관련 인터뷰와 좌담까지 망라하고 있어 나혜석 연구의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2)윤심덕:
본관 파평(坡平). 평양 출생. 1918년 경성여고보(京城女高普) 사범과를 졸업하고 강원도 원주공립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조선총독부의 관비생으로 일본 도쿄음악학교에 유학, 성악을 전공하고 귀국했다. 그후 경성사범부속학교 음악교사로 근무하면서 음악회에 출연, 성악가로 명성을 떨치고 1925년 토월회(土月會) 배우로 활약하다가 유행가수로 전향하여 방송에 출연하는 한편 레코드를 취입, 특히 《사(死)의 찬미》로 인기를 끌었다.
1926년 레코드취입을 위하여 오사카에 있는 닛토[日東]레코드회사에 갔다가 귀국길에 관부연락선 도쿠주마루[德壽丸] 위에서 애인 김우진(金祐鎭)과 함께 현해탄에 투신, 정사(情死)하였다
*사의 찬미
광막한 황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苦海)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로다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혔음을 네가 아느냐
세상의 것은 너에게 허무니
너 죽은 후에 모두 다 없도다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3)김일엽:
아버지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관계로 20대까지는 교회에 다니며 성장하였다. 그는 기독교 문화의 영향을 받아 일찍 개화하였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구세학교(救世學校)와 진남포 삼숭학교(三崇學校)를 거쳐 서울 이화학당에서 수학하였다.
또한 일본에 건너가 닛신학교[日新學校]에서 수학하였다. 1920년 우리 나라 최초의 여성잡지 『신여자(新女子)』를 창간하여 스스로 주간이 되기도 하였으며, 동아일보사 문예부기자, 『불교(佛敎)』지의 문화부장 등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기독교신자였으나 1928년 만공선사(滿空禪師) 문하에서 득도 수계(受戒)하고 불교 신앙으로 전향하게 되어 만공이 있던 예산 수덕사(修德寺)에 입산, 수도하는 불제자로 일생을 마쳤다.
김일엽의 본명은 사실 원주(元周)이다. 일엽은 훗날 일본 유학 중에 만난 춘원 이광수가 일본의 신여성작가인 히구치 이치요[桶口一葉]의 이름에서 따와 지어준 필명이다. 교육을 많은 받은 인텔리 여성이었지만, 가난과 고독은 어린 시절 그녀를 가장 괴롭힌 요소였다.
4)김명순:
1896~?
1911년 서울 진명여학교(進明女學校)를 졸업한 뒤, 1917년 잡지 『청춘(靑春)』의 현상소설에 응모한 단편소설 「의심(疑心)의 소녀(少女)」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19년 동경유학시절에 전영택(田榮澤)의 소개로 『창조(創造)』의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본격적인 문필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매일신보(每日申報)의 신문기자(1927)를 역임한 바 있고, 한때 영화에도 관여하여 안종화(安鍾和) 감독의 「꽃장사」·「노래하는 시절」 등에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1939년 이후 일본 도쿄로 건너가 그곳에서 작품도 발표하지 못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정신병에 걸려 동경 아오야마정신병원[靑山腦病院]에 수용 중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5)한용운 :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띠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 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 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 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
제 곡조에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알 수 없어요(바지꽃근연타)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탑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 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6)
정지용
*고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3.백석의 시:8편 시집 '사슴'
1.)백화 .
2)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3)고향
4)바다
5)흰 바람벽이 있어
6)정주성
7)적막강산
8)여승
(허균 신현중 박경련:란 서상식 이시가와/하규일 신윤국)
*백석은 소월과 만해, 지용이 다져놓은 현대시의 기틀 위에서 새로운 시의 문법을 세움으로써 한국 시의 영역을 넓히는 데 기여한 시인이다. 평안 방언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언어들을 시어로 끌어들이고 고어와 토착어를 빈번하게 사용함으로써 시어의 영역을 넓히고 모국어를 확장시켰다. 또한 우리말의 구문이 품고 있는 의미 자질을 적절히 활용하여 경험세계를 감각적으로 재현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백석(白石))]
*본명은 백기행(白夔行)[6], 필명은 백석(白石, 白奭)인데 주로 '白石'으로 활동했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너무나도 좋아하여 그의 이름의 '석'을 빼와서 썼다고 한다.
*1930년대의 모던 걸 시대, 최정희, 모윤숙, 노천명, 이선희 등은 당대 여류 문인들 중 문학활동을 포함 신여성의 지명도에 있어서 비교적 상위층에 있었다. 앞서 1세대인 윤심덕, 라혜석, 김일엽 그룹의 파격적 각인으로 오히려 뒷세대의 운신의 폭은 편했다고 볼 수 있다
*《사슴》의 가격이 2원이었는데, 다른 시집과 비교하였을 때 2배 가량 더 비싼 가격이었다. 그때 쌀 가마 가격이 13원, 고급 양복이 30~40원이었으니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선광 주식회사 혹은 선광인쇄 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어내어, 나중에는 구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22] 신경림의 경우 우연히 헌책방에서 《사슴》을 구하게 되었을 때[23] 매일 품에 안고 다니면서 줄줄 욀 정도로(!) 몇 번이고 읽고 다녔고[24] 윤동주의 경우 아무리 찾아봐도 시집을 구할 수 없어서 연희전문학교 도서관에서 노트에 시를 베껴 적고 다녔다고. 당시 <사슴>이 구하기 어려운 책이라 많은 문인 및 팬들이 필사본을 만들어 애독하거나 선물했다고 한다. 노천명의 시 <사슴> 역시 백석의 별명이기도 한 <사슴>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1.)백화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켕켕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은 온통 자작나무다.
*노천명의 사슴은 백기행이라는 설
2.)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에 눈이 푹푹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이 푹푹 나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는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 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에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것은 더러워서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출출이:뱁새(오목눈이)
3.)고향
나는 북관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같은 상을 하고
관공의 수염을 드리면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 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아버지 백시박 조선일보 사진반장
4.)바다 - 백석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는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눌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개지꽃 :나팔꽃
지중거리다: 약간 마뭇거리다
통영의 박경린을 짝사랑'란'
........
5.)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 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 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 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뉘 사이엔가
이 흰 바람 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ㅡ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나 많은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ㅡ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잡지 문장지 폐간호에 실린 백석 작품
문장(文章)》은 1939년 2월 1일자로 창간되어 1941년 4월 통권 26호에서 일제의 강압으로 폐간된 문학잡지이다
6.)정주성/조선일보 등단 시
산턱 원두막은 뵈였나 불빛이 외롭다
헝겊 심지에 아즈까리 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잠자리 조을든 문허진 성터
반디불이 난다 파란 혼들 같다
어데서 말 있는 듯이
크다란 산새 한 마리
어두운 골짜기로 난다
헐리다 남은 성문이
한울빛 같이 훤하다
날이 밝으면 또 메기 수염의 늙은이가
청배를 팔러 올 것이다.
7.)적막강산
오이밭에 벌배채 통이 지는 때는
산에 오면 산 소리
벌로 오면 벌 소리
산에 오면
큰솔밭에 뻐꾸기 소리
잔솔밭에 덜거기 소리
벌로 오면
논두렁에 물닭의 소리
갈밭에 갈새 소리
산으로 오면 산이 들썩
산 소리 속에 나 홀로
벌로 오면 벌이 들썩
벌 소리 속에 나 홀로
정주 동림 구십여 리
긴긴 하룻길에
산에 오면 산 소리
벌에 오면 벌 소리
적막강산에 나는 있노라.
*덜거기:늙은 장끼 벌배채:들 배추, 야생배추
갈새:개개비. 통이 지는 때:배추 속이 꽉 찰.때
8.)여승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4.2세대 여류 문인과 시인들
1)최정희
2)모윤숙
3)노천명:사슴,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
4)김영한 :
백석, 내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5)도연명:
동쪽 뜰에서 국화를 바라보며
6)이생진:그리운 바다 성산포
내가 백석이 되어
7)이시카와 다쿠보쿠
1)최정희 :
호는 담인(淡人). 1912년 12월 3일 함남 단천 출생. 숙명여고보, 서울중앙보육학교를 졸업했다.
1930년 일본에서 유치진‧김동원 등과 함께 학생극예술좌에 참가했고, 이듬해 삼천리사에 입사했으며, 1934년 제2차 카프검거 때 수감되기도 했다. 한국전쟁 중에는 공군종군작가단인 창공구락부에 참가하였고, 한국여류문학인협회장, 예술원 회원 등을 역임하였다. 서울시 문화상(1958), 3‧1문화상(1983) 등을 수상하였다. 1931년 『삼천리』에 「정당한 스파이」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카프 제2차검거사건 이전까지는 주로 프롤레타리아문학적인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출옥 후부터는 사상문제를 벗어난 작품들을 발표해 나갔다.
흉가를 얻어 살면서도 생의 의지를 굳혀 가는 인물을 그린 「흉가」(1937)를 위시하여 미망인의 애정문제를 그린 「지맥」(1939), 남편 아닌 남성과의 애정문제를 다룬 「인맥」(1940), 모성애와 이성애를 보인 「천맥」(1941) 등에서는 여성의 개인적 불행 문제를 다루었다. 특히 이 삼부작 「지맥」, 「인맥」, 「천맥」은 삼원론적 우주관에 기초하여 여성의 욕망과 본질을 규명하고자 한 최정희의 대표작이다. 8‧15 광복 이후에는 소작인의 가난과 불행의 원인을 지주의 횡포에서 찾은 「점례」(1947), 부자 지주와 소작인의 삶을 대극적으로 제시한 「풍류잡히는 마을」(1947) 등을 통해 시대와 사회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켜 나갔다.
한편 한국전쟁 이후에는 전쟁 때 피난도 못 간 노파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다룬 「정적일순」(1955), 우리 근대사를 배경으로 지식인 남녀의 인간역사를 그린 장편 『인간사』(1960~1964) 등을 통해 역사의 굴곡 속을 헤쳐 나가는 사람들의 삶을 그려나갔다. 『인간사』는 중일전쟁에서 4‧19 혁명에 이르는 우리 근대사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하여 파란많은 역사와 함께 지식인 남녀 및 그 주변 사람들의 생활사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후 「이백오병실」(1970), 「탑돌이」(1975) 등 허무와 고독이 짙게 밴 작품을 발표하였다.
2)모윤숙
*동방의 여인들/모윤숙
새날이라서
상차려 즐기지 않겠습니다
입던 옷 그대로
먹던 밥 그대로
달가워 새 아침을 맞이하렵니다
동은 새로 밝고
바람은 다시 맑아졌습니다
훤한 하늘 새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독수리 나래
쳐다보며 쳐다보며 호흡을 준비합니다
비단치마 모르고
연지분도 다 버린 채
동아의 새 언덕을 쌓으리라
온갖 꾸밈에서
행복을 사려던 지난날에서
풀렸습니다
벗어났습니다
둘러보세요
저 날카로운 바람 새에서
미래를 창조하는
우렁찬 고함과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산-발자국 소리
우리는 새날의 딸
동방의 여인입니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모윤숙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런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깊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는다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으나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였노라
작렬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처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 신년 송금녀의 노래/모윤숙
그러나 님이여!
한 줄기 피의 자손
그 얼굴 그 얼굴 같은 얼굴들
제 나라 위해 모이는 장사들 맘 놓고 손 잡으사
앞으로 앞으로 저 원수 물리치소
씨름도 첫째 헤엄도 첫째
이 동네 이름 낸 장사이시니
산도 물도 무서울 게 없으리라
바람 속 눈물 속도 마다 않고 가시리라
오늘 부로 이 몸은 공장 색시 되어서
서방님 달리던 길 아침저녁 걸어서
나라 위해 왼 정성 이바지 하려하오
님이 쓰실 총포탄을 내 손수 만들려오
3)노천명:
*사슴/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보다
물속에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본다.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노천명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심고
들장미로 울타리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 버린 마을
놋양푼에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4)김영한 :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김영한
내 나이 어언 일흔 셋
함께 살던 그 시절의 추억은
내 생의 전부
내 가슴속의 그리움은
쏟으려 해도 쏟기지 않는 물병
서러움만 저절로 쏟아져 나온다.
*.김영한의 유언
(대원각 삼청각 청운각 오진암)
"한 겨울 눈이 제일 많이 내린 날
내 뼛가루를 길상사 마당에 뿌려달라".
7월1일 백석 생일은 종일 금식.
5)이생진
내가 백석이 되어 /이생진
나는 갔다
백석이 되어 찔레꽃 꺾어 들고 갔다
간밤에 하얀 까치가 물어다 준 신발을 신고 갔다
그리운 사람을 찾아가는데 길을 몰라도
찾아 갈 수 있다는 신비한 신발을 신고 갔다
성북동 언덕길을 지나
길상사 넓은 마당 느티나무 아래서
젊은 여인들은 날 알아채지 못하고
차를 마시며 부처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까치는 내가 온다고 반기며 자야에게 달려갔고
나는 극락전 마당 모래를 밟으며 갔다
눈 오는 날 재로 뿌려 달라던 흰 유언을 밟고 갔다
참나무 밑에서 달을 보던 자야가 나를 반겼다
느티나무 밑은 대낮인데
참나무 밑은 우리 둘 만의 밤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울었다
한참 울다 보니
그것은 장발이 그려 놓고 간
그녀의 스무살 때 치마였다
나는 찔레꽃을 그녀의 치마에 내려 놓고 울었다
죽어서도 눈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손수건으로 닦지 못하고 울었다
나는 말을 못했다
찾아오라던 그녀의 집을
죽은 뒤에 찾아 가서도 말을 못했다
찔레꽃 향기처럼 속이 타 들어갔다는 말을 못했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이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 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 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 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도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을 놈의 고독은 취하지도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수는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그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는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이를 못 보겠다
온 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이를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 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아 있었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에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은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을 좋아하던 사람은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은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짝 놔 주었다
삼백육십오 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6)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 1886~1912)
이와테현(岩手県) 출신으로 요사노 히로시(与謝野寛) 부처에게 사사했다. 사회사상에 눈을 떠 와카의 혁신을 추구하고 구어를 섞은 3행서로 생활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하고 있다. 알기 쉬운 말로 실생활에 뿌리내린 삼행서의 단카는 가단에 신풍을 일으켰으나 폐결핵으로 젊은 나이에 생애를 마쳤다. 가집에 『이치아쿠노 스나(一握の砂)』, 『가나시키 간구(悲しき玩具)』가 있고 그 외에 시, 소설, 평론 등이 있다.
*도우카이의 작은 섬 바닷가의 백사장에서
나는 눈물에 젖어
게 벗 삼아 놀았지
*친구가 모두 자신보다 훌륭해 보이는 날은
꽃을 사들고 와서
아내와 어울린다
7)도연명
*동쪽 뜰에서 국화를 바라보며/도연명
어린 시절은 예전에 이미 가 버리고
청춘도 지금 또한 다 했다
쓸쓸한 마음 달랠 길 없어
다시 이 황량한 뜰에 왔다
나 홀로 뜰에 오래 서 있으니
햇살은 옅고 바람은 차갑다
가을 푸성귀는 잡초에 모두 뒤엎히고
푸르던 나무도 시들었다
오직 몇 떨기 국화만이 울타리 근처에서
막 꽃을 피우고 있다
술잔 들어 술을 조금 따르고
그대 국화 옆에 잠시 머물러 본다
내 젊었던 시절 돌이켜 보면
늘 신이 나고 즐거웠다
술을 보면 시도 때도 없이 마셨고
마시지 않아도 벌써 유쾌했다
요즘 나이가 든 뒤로는
즐거움 느끼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더 노쇠해 지는 것은 늘 걱정이니
억지로 마셔보지만 역시 즐겁지 않다
그대 국화를 돌아보며 이르노니
이 늦은 때 어찌 홀로 고운가?
나를 위하여 피지 않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대 때문에 잠시 활짝 웃어 본다.
5.윤동주 시 11 편
1)서시
2)슬픈 족속
3)자화상
4)새로운 길
5)별 헤는 밤
6)참회록
7)십자가
8)쉽게 씌여진 시
9)병원
10)또 다른 고향
11)길
문학관 벽:'새로운길'
전시관은 '자화상' 우물을 모티브한 배수지
언덕 서시(앞면)/슬픈족속(뒷면) 시비
서시정/백호,청운도서관:ㄴ누정, 꽃담
백운동천 바위, 경기상고 내부/청송당
경복고/정선 집터, 대은암샘
청운초등 후문 백세청풍 김상용(김상헌 형) 집터,청풍계곡. 청운초교/정철 집터
신교 농학교/선희궁터,우당기념관,
자수궁터/겸재 50대 살던곳,가재우물/노가재 김창업 집터,송석원 각자,기린교
*2상3수6창
김상용, 김상헌,
김수증, 김수흥, 김수항,
김창집, 김창협, 김창흡, 김창업, 김창즙, 김창립 등으로 대표되는 장동 김문은
윤동주를 노래하다
1)서시 2)슬픈 족속 3)자화상 4)새로운 길
5)별 헤는 밤 6)참회록 7)십자가 8)쉽게 씌여진 시
9)병원 10)또 다른 고향
★윤동주는 1917.12.30에 태어나서 해방을
6 개월 앞둔 1945.2.16에 승천하였습니다
그를를 노래하는 첫 인사는 역시
"서시"로 시작해야 되겠지요
1.)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 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인왕산 윤동주 시인의 언덕 시비 전면엔 서시가 적혀있고 뒷면에 적힌 시가 바로 "슬픈 족속"입니다.
2.)슬픈 족속
흰 수건이 검은 머리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그는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걷고자 합니다
흰 옷을 입은 민족과 함께 가는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이 아닐까요?
3.)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새로운 길을 걷다보면 마을에 닿고
어느 마을에나 우물은 있습니다.
외딴 우물을 들여다보며 우물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자화상"을 씁니다
4.)자화상
산모퉁이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 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우물 속에는 가을이 있고 한 사나이가
있으며 그는 우물 속에서도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볼 것입니다.그리고 별을 헵니다.
"별 헤는 밤"
5.)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습니다.
나는 아무걱정도 없이
가을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헤는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하나에 추억과
별하나에 사랑과
별하나에 쓸쓸함과
별하나에 동경과
별하나에 시와
별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식 불러봅니다.
小學校 때 冊床을 같이 햇든 아이들의 일홈과 佩, 鏡, 玉
이런 異國少女들의 일홈과
벌서 애기 어머니 된 게집애들의 일홈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일홈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푸랑시쓰 쨤, 라이넬 마리아 릴케
이런 詩人의 일홈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이 멀듯이,
그리고 어머니,
당신은 멀리 北間島에 게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러워
이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우에
내 일홈자를 써보고,
흙으로 덥허 버리엿습니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버레는
부끄러운 일홈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우에 파란 잔디가 피여나듯이
내 일홈자 묻힌 언덕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 할 게외다
★별을 바라볼수록 부끄러워지는 것은
창씨개명한 이름,'히라누마 도슈'
유학을 가기 위해서 왈본식으로 바꾼 이름을
흙으로 덮어버리고픈 심정입니다
그 부끄러움을 참회하며
"참회록"으로 자신을 반성합니다.
6.)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어느 운석 밑으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은
유아세례를 받으며 기독교가 모태신앙
인지라 교회나 십자가가 눈에 익어서
십자가를 쉽게 발견하고 회한에 잠깁니다
"십자가"
7.)십자가(十字架)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이국 땅의 십자가가 상징인 기독교의
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며 시를 쓰는 데
그에게 시는 그날 따라 "쉽게 쓰여진 시"가 있습니다
8.)쉽게 씌어진 시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은 최초의 악수.
★그러나 늘 그리운 고향을 꿈 꾸지만 타향살이에서 "또 다른 고향"으로 위로를
받고싶지만 심신은 지쳐갑니다.
마지막 안식을 누릴 수 있는 편한 고향,
9.)또 다른 고향/윤동주
고향에 돌아 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 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고향을 그리워하고 천국을 꿈꾸며 정신적으로 더욱 힘이 들어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는 병명을 모르고
심신은 더욱 피곤합니다
10.)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으나 옷깃을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한글로 시를 쓰며
왈본 땅에서 저항하다 송몽규와 함께 후쿠오카 감옥에 갇히고 괘씸죄로
생체 실험용 혈액 대체제인 생리 식염수일지도 모르는 알 수 없는 주사를 맞고
1945.2.16일 영원한 "별"이 되었습니다.
죽기 전 마지막 외마디가 "대한독립만세"
정갈한 마음으로 별를 바라봅니다.
이성선 시인의 눈으로.
11.)길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6.1)프랑시스 잠
2)라이나마리아 릴케
3)이성선
1)프랑시스 잠(1868~1838):
프랑스 남부 피레네 산맥 기슭에서 일생 동안 사랑과 생명을 노래한 전원시인.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껴안고 어루만지는 포용과 모성의 시인이자 세기말 프랑스 문학의 퇴폐적 요소를 씻어낸 자연주의 대가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겸손과 온화로 이끌어 고압적이고 난해한 시에 넌더리를 내던 독자들에게는 청순한 샘물과 같았다.
°잠주의 (Jammisme) : 간명하고 쉬운 시
°릴케(1875~1946), 말라르메(1842~1898), 윤동주(1917~1945), 백석(1912~1996)도 그를 사랑했다.
°잠은 당나귀를 너무나 좋아해서 자신의 친구라고 부르며 당나귀 시편을 많이 남겼다. 당나귀는 꿈의 매개(백석), 사랑과 생명과 희망의 메타포(윤동주, '밤')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나무 병에 우유를 담는 일,
꼿꼿하고 살갗을 찌르는 및 이삭들을 따는 일,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들 옆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
숲의 자작나무들을 베는 일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버들가지를 꼬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즐겁게 노는 어린 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들이 날카롭게 울 때
처지는 소리를 내며 베틀을 짜는 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만드는 일,
정원에 양배추와 마늘의 씨앗을 뿌리는 일,
그리고 따뜻한 달걀을 거두어들이는 일.
*집은 장미로 가득하리라
집은 장미와 꿀벌로 가득하리라
오후 만도의 종소리 들려오고
투명한 옥빛 포도알들
느슨한 그늘 아래 햇빛 받아 졸음에 겨운 듯하리라
그곳에서 마음껏 당신을 사랑하리
스물네 살의 이 마음을 고스란히 당신에게 바치리
내 조소적인 마음과 자존심과 백장미의 시마저 바치리
하지만 난 당신을 알지 못하고
당신 또한 내 곁에 있지 않다
내가 아는 건 만일 당신이 살아 있다면
그리고 나처럼 이 초원의 어느 모퉁이이에 자리하고 있다면
우리 서로 웃음 지으며 입 맞추리라는 것뿐
황금빛 꿀벌 아래에서, 맑은 시냇가에서
우거진 나뭇잎 밑에서 입 맞추리라는 것뿐
그땐 햇볕의 따사로움밖엔 들리는 것 없으리라
당신의 귓가에 호두나무 그림자 드리워지면
우린 말로 못 다할 사랑을 속삭이기 위하여 웃음 거두며
입과 입을 하나로 섞으리라
그리고 나는 당신의 빠알간 입술 위에
금빛 포도알이며 붉은 장미랑
벌꿀의 달콤함을 찾으리라
*기도
주여, 당신은 사람들 가운데로 나를 부르셨습니다
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는 괴로와하고 사랑하나이다
나는 당신이 주신 목소리로 말했고
당신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에게 가르쳐주시고
또 그들이 내게 주신 글로 썼습니다
나는 지금 장난꾸러기들의 조롱을 받으며
고개를 숙이는 무거운 짐을 진 당나귀처럼
길을 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으로 나는 가겠나이다
삼종의 종소리가 웁니다.
*푸른 우산을 들고
치즈냄새가 나는 옷을 입고, 푸른 우산을 들고
더러운 양떼를 몰고 너는 언덕의 하늘을 향해간다
호랑가시나무나 참나무나 모과나무를 짚고
몸을 기댄 채, 튀어나온 등에 광택없는 물통을 걸친 당나귀와 억센 털로 덮인 개를 뒤따라 너는 간다
마을마다 있는 대장장이 앞을 지나
향기에 싸인 산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작은 덤불같은 너의 하얀 양떼는 풀을 뜯으리
그곳에 안개는 길게 늘어져 산봉우리를 감추고
그곳에 목에 깃털이 빠진 독수리가 날고
빔안개 속에서 붉은 연기가 타오르리
거기서 너는 고요한 마음으로 바라보리라
끝없는 광대함 위에 성령이 떠도는 풍경들.
2)라이나 마리아 릴케(1875~1926)
칠삭둥이로 태어난
심약한 청년 릴케는 13세 연상의
루 살로메의 사랑을 시작으로
수많은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었으며
조각가 로뎅의 비서로도 일하였고
51살에 이집트 여인 니메트 엘루이에게
장미 몇 송이를 따주다 가시에 찔려
패혈증으로 고생하였으며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도
내 눈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아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부러뜨려주소서, 나는 손으로 하듯
내 가슴으로 당신을 끌어안을 것입니다,
내 심장을 막아주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
내 뇌에 불을 지르면,
나는 당신을 피에 실어 나르겠습니다.
*표범
스치는 창살에 지쳐 그의 눈길은
이젠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다.
그 눈길엔 마치 수천의 창살만이 있고
그 뒤엔 아무런 세계도 없는 듯하다.
아주 조그만 원을 만들며 빙빙 도는,
사뿐한 듯 힘찬 발걸음의 부드러운 행보는
하나의 커다란 의지가 마비되어 있는
중심을 따라 도는 힘의 무도(舞蹈)와 같다.
가끔씩 눈동자의 장막이 소리 없이
걷히면 형상 하나 그리로 들어가,
사지의 긴장된 고요를 뚫고 들어가
심장에 이르면 존재하기를 그친다.
*인생
인생을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
하루하루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가라.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그 꽃잎을 모아 둘 생각은 하지 않는다.
꽃잎을 줍는 순간을 즐기고
그 순간에 만족하면 그 뿐.
*내 눈을 감기세요
내 눈을 감기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꺾으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잡을 것입니다.
손으로 잡듯이 심장으로 잡을 겁니다.
심장을 멎게 하세요.
그러면 뇌가 고동칠 겁니다.
마침내 당신이 나의 뇌에 불을 지르면,
그 때는 내 피가 흘러 당신을 실어 나르렵니다
*가을날/라이나 마리아 릴케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으소서.
마지막 열매들이 무르익도록 명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열매들이 무르익게 재촉하시고,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기나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일 것입니다.
3)이성선(1941~2001)
시인이자 환경운동가. 평이한 수법의 시어로 동양적 달관의 세계를 깊이 있게 표현하였고, 시를 통한 자연과의 일체적 교감을 추구하였다. 특히 설악산과의 친화적 합일을 모색하면서 '설악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1941년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나 속초중학교와 속초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농학과를 나왔다. 이후 잠시 농촌진흥청에서 근무하다가 1970년 고향의 동광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같은 해 《문화비평》에 《시인의 병풍》외 4편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고, 1972년 《시문학》(현대문학 간행)에 《아침》 《서랍》 등으로 재등단하였다.
1990년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으로 위촉되었다. 1996년에는 속초·양양·고성에서 환경운동연합을 결성하였고, 이후 원주 토지문화관 관장을 역임하였다. 1988년 강원도 문화상을 수상하였고, 1990년 제22회 한국시인협회상, 1994년 제6회 정지용문학상, 1996년 제1회 시와 시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2000년 마지막으로 출간한《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등을 포함해 총 12권의 시집이 있다. 평이한 수법의 시어로 동양적 달관의 세계를 깊이 있게 표현하였고, 시를 통한 자연과의 일체적 교감을 추구하였는데, 특히 설악산과의 친화적 합일을 모색하면서 '설악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2001년 5월 4일 60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미시령 노을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
*가을 편지
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원고지처럼 하늘이 한 칸씩
비어가고 있습니다.
그 빈곳에 맑은 영혼의 잉크 물로
편지를 써서
당신에게 보냅니다.
사랑함으로 오히려
아무런 말못하고 돌려보낸 어제
다시 이르려 해도
그르칠까 차마 또 말못한 오늘
가슴에 고인 말을
이 깊은 시간
한 칸씩 비어 가는 하늘 백지에 적어
당신에게 전해달라
나무에게 줍니다.
*구도
세상에 대하여
할 말이 줄어들면서
그는 차츰 자신을 줄여갔다
꽃이 떨어진 후의 꽃나무처럼
침묵으로 몸을 줄였다
하나의 빈 그릇으로
세상을 흘러갔다
빈 등잔에는
하늘의 기름만 고였다
하늘에 달이 가듯
세상에 선연히 떠서
그는 홀로 걸어갔다
*노을 무덤
아내여 내가 죽거던
흙으로 덮지는 말아 달라
언덕 위 풀잎에 뉘여
붉게 타는 저녁놀이나 내려
이불처럼 나를 덮어다오
그리고 가끔 지나가는 사람 있으면
보게 하라
여기 쓸모없는 일에 매달린
시대와는 상관없는 사람
흙으로 묻을 가치가 없어
피 묻은 놀이나 한 장 내려
덮어두었노라고
살아서 좋아하던 풀잎과 함께 누워
죽어서도 별이나 바라보라고
*도반
벽에 걸어 놓은 배낭을 보면
소나무위에 걸린 구름을 보는 것 같다
배낭을 곁에 두고 살면
삶의 길이 새의 길처럼 가벼워진다
지게 지고 가는 이의 모습이 멀리
노을진 석양 하늘 속에 무거워도
구름을 배경으로 서 있는 혹은 걸어가는
저 삶이 진짜 아름다움인 줄
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을까
알고도 애써 모른 척 밀어냈을까
중심 저쪽 멀리 걷는 누구도
큰 구도 안에서 모두 나의 동행자라는 것
그가 또 다른 나의 도반이라는 것을
이렇게 늦게 알다니
배낭 질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지금
*백담사
저녁 공양을 마친 스님이
절 마당을 쓴다
마당 구석에 나앉은 큰 산 작은 산이
빗자루에 쓸려 나간다
산에 걸린 달도
빗자루 끝에 쓸려 나간다
조그만 마당 하늘에 걸린 마당
정갈히 쓸어놓은 푸르른 하늘에
푸른 별이 돋기 시작한다
쓸면 쓸수록 별이 더 많이 돋고
쓸면 쓸수록 물소리가 더 많아진다
*별을 보며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바라보면 너 눈물 같은 빛남
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랴.
*사랑하는 별 하나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춰 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 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 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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