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성탄제/김종길

능선 정동윤 2011. 8. 23. 16:39

성탄제/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어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흐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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