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어처구니/이덕규

능선 정동윤 2011. 8. 24. 09:37

어처구니/이덕규

 

 

이른 봄날이었습니다

마늘 밭에 덮어놓았던 비닐을

겨울 속치마 벗기듯 확 걷어버렸는데요

거기, 아주 예민한 숫처녀 성감대 같은

노란 마늘 싹들이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요

나도 모르게 그걸 살짝 건드려보고는

갑자기 손끝이 후끈거려서

그 옆, 어떤 싹눈에 오롯이 맺혀있는

물방울을 두근두근 만져보려는데요

세상에나! 맑고 깨끗해서

속이 다 비치는 그 물방울이요

그 글쎄 탱탱한 알몸의 그 잡년이요

내 손가락 끝에 닿기도 전에 그냥 와락

단번에 앵겨붙는 거였습니다

어쩝니까 벌건 대낮에 한바탕 잘 젖었다 싶었는데요

근데요,이를 또 어쩌지요

손가락이, 손가락이 굽어지질 않습니다요.

 

 

 

'좋아하는 시(詩 능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의 잠/오탁번  (0) 2011.08.24
잠지/오탁번  (0) 2011.08.24
담쟁이/도종환  (0) 2011.08.24
봄날/홍신선  (0) 2011.08.24
몸/나태주  (0) 2011.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