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길은 X 염색체 사이에서 지워지고 있다/김선호

능선 정동윤 2011. 8. 24. 13:12

길은 X 염색체 사이에서 지워지고 있다/김선호

 

 

인간 게놈 지도를 사러 서점에 갔다

지방도로의 미세한 부분의

인쇄가 덜 되었으니 나중에 오라고 한다

내게 찾아오던 달거리가 차츰

뜸해 진다고 했더니

급하면 주소지 인쇄만 끝낸

지도라도 가져가라 한다

유전자 길에서 나온 지도를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며 길마다 두드린다

사춘기 이후 시작된 17번 국도가

형광물질로 희미하게 표시되어 있다

주기적으로 꽃 피우는 일을 거부하고 싶었던 마음 만큼

길을 서서히 지우고 있다

달마다 쏟아냈던 붉은 꽃잎들도 시든 채

비포장도로 중간중간에서

내 숨결을 움켜쥐고 있다

씨방을 자라게 했던 사랑의 흔적만 남기고 있다

나를 두고 떠나는 시간들을 찾아내어

색연필로 진하게 그려 본다

몸속에 내장되어 있는 길마다

환한 온기를 불어넣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