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속에 시계를 달다/김선호
새벽 6시면 알람시계가 울린다
하룻동안의 삶에 자신이 없는 나는
시계소리 한 알을 삼킨다
둥글고 메끄러운 시그너스 시계 캡술이
몸에 들어오면서부터 아침이 시작된다
몸 속의 시계는 쉬지 않고 약물을 퍼뜨리며
나를 데리고 어디로든 가려고 한다
몸과 마음은 시계에 갇힌 채
시계바늘을 따라서 둥근 세상을 돈다
시계는 제가 정한 처방대로 나를 이끈다
밥을 먹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도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나를 재촉한다
내 안의 시계는
시간의 경계가 확실치 않아서
슬픔 너머 저쪽 지나간 시간을 불러오거나
희망 언저리를 따뜻하게 데우기도 한다
약효가 소모될 때 쯤이면
시계에 의지했던 하루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내일 삼키게 될 알약을 다시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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