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기적/이형기

능선 정동윤 2011. 8. 26. 13:20

기적/이형기

 

 

 

적도하의 밀림 속

코끼리의 시체 하나 썩고 있다

 

독한 냄새로 사방에 기별하는

이제야 혼자된 이 기쁨

거대한 짐승은 제 몸을 헐어

필생의 대향연을 벌인다

 

오라, 바람아

햇빛아 미물들아

와서 먹고 마시고 취하라

여기 원래 그대들 몫이 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광난의 도가니

하늘도 벌겋게 달아오른 그때

홀연 코끼리는 온데간데 없고

상아 두 뿌리

높이 暮天을 뚫고 솟는 기적!

 

썩게하라 나를

그리고 내일 아침

두 개의 송곳니만 남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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