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형기
적도하의 밀림 속
코끼리의 시체 하나 썩고 있다
독한 냄새로 사방에 기별하는
이제야 혼자된 이 기쁨
거대한 짐승은 제 몸을 헐어
필생의 대향연을 벌인다
오라, 바람아
햇빛아 미물들아
와서 먹고 마시고 취하라
여기 원래 그대들 몫이 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광난의 도가니
하늘도 벌겋게 달아오른 그때
홀연 코끼리는 온데간데 없고
상아 두 뿌리
높이 暮天을 뚫고 솟는 기적!
썩게하라 나를
그리고 내일 아침
두 개의 송곳니만 남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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