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벚나무의 저녁/장철문
민박 표시도 없는 외딴집. 아들은 저 아래 터널 뚫는
공사장에서 죽고, 며늘아기는 보상금 들고 집 나갔다 한다
산채나물에 숭늉까지 잘 얻어 먹고, 삐그덕거리는 널빤지 밑이
휑한 뒷간을 걱정하며 화장지를 가지러 간다. 삽짝 없는 돌담
한켠 산벚꽃이 환하다. 손주놈이 뽀르르 나와 마당 가운데서
엉덩이를 깐다. 득달같이 누렁이가, 땅에 떨어질세라 가래똥을
널름널름 받아먹는다. 누렁이는 다시 산벚나무 우듬지를 향해
들린 똥꼬를 찰지게 홡는다. 손주놈이 마루에 올라서자 내게로
달려온 녀석이 앞가슴으로 뛰어오른다. 주춤주춤 물러서는 꼴을
까르르 웃던 손주놈이 내려와 녀석의 목덜미를 쓴다. 녀석은
꼬리를 상모같이 흔들며 긴 혓바닥으로 손주놈의 턱을 비투
홡는다. 저물어 가는 골짜기 산벚꽃이 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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