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파란 대문에 관한 기억/최문자

능선 정동윤 2011. 9. 2. 14:31

파란 대문에 관한 기억/최문자

 

 

막다른 집에서 꽤 오래 산 적이 있다

헐어빠진 나무 대문들을

희망처럼 보이게 할려고

페인트로 파랗게 칠을 했었다

대문의 나무결은 숨을 멈추고

그날부터 파랗게 죽어갔다

늦은 밤 돌아와 보면

길고 좁은 골목 마지막 끝에

자기 그림자 꼭  껴안고

바다 속으로 뛰어 들 것 같은

그런 흔들림으로 서 있던 파란 대문

그 대문을 바라보고

가끔 생각 난 듯 개가 짖어댔다

어느 날은

죽은 나무 대문이 다시 나무로 살아날 것처럼

사정없이 짖어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긴 골목도 없이 나를 막아서는 802호

지금은 거기에 산다

열쇠를 돌리려면 한참씩 문 앞에서 달그닥거리지만

잠긴 저 안은 언제나 쇠처럼 고요하다.

 

하루종일

이 색갈 저 색갈로 덧칠 당하고 돌아온 나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희망처럼 보이는 푸르딩딩한 폐허를

아무도 짖지 않는다

사라진 개를

찾아나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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