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발자국 깊이/오규원

능선 정동윤 2011. 9. 7. 16:18

발자국 깊이/오규원

 

 

어제는 펑펑 흰 눈이 내려 눈부셨고

오늘은 여전히 하얗게 쌓여 있어 눈부시다

뜰에서는 박새 한 마리가

자기가 찍은 발자국의 깊이를

보고 있다

깊이를 보고 있는 박새가

깊이보다 먼저 눈부시다

기다렸다는 듯이 저만치 앞서 가던

박새 한 마리 눈 위에 붙어 있는

자기의 그림자를 뜯어내어 몸에 붙이고

불쑥 날아 오른다 그리고

허공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지워 버린다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허공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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