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부산역 광장에서/박시향

능선 정동윤 2011. 9. 8. 10:53

부산역 광장에서/박시향

 

 

비둘기 떼들이 한바퀴 공중을 선회하며

광장을 끌고 온다

하늘이 푸르게 휘어진다

하얀 눈발을 기다리던 나뭇가지도 둥글게 휘어진다

빌딩 숲을 돌아 세상이 덩달아 잠시 둥그러진다

길이 시작되는 곳에서도,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돌아가고, 돌아오는 사람들도

둥그러진다

 

다시 역 광장을 물고

비둘기 떼들이 어디론지 떠나가 버린다

아, 그렇구나

새들도 밤이 되면

오순도순 깃털을 맞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구나

 

칼바람이 분다

어둠을 짊어지고 빈 광장으로 돌아온 노숙자들

누더기를 걸친 각자의 사연들이

벌써 자정을 넘겼으나 광장의 시계 초침처럼

제자리를 빙빙 돌며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나 봐

춥다 그립다

별빛처럼 빛나는 단어 떠올리며

돌아갈 곳 없는 자들은

하늘 한 조각 이불처럼 끌어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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