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야기

최후의 승리자이자 지상 최고의 과학자/나무

능선 정동윤 2011. 9. 19. 22:11

3억5천만 년 동안 지구라는 제국 지배해와

세세한 기록 남기는 지상 최고의 과학자

▲ <사진 4> 복수초.
좀 더 깊은 숲으로 발길을 옮기며 문뜩 나무의 기원이 궁금해진다. 언제부터, 왜 나무가 땅위에 또는 산에 살게 되었고, 지금의 숲이 되었을까? 정말 까마득한 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공룡이 나타나기도 전인 3억5천만 년 전의 시절이다. 인류가 그때부터 살았더라면 우리의 11,500,000만대의 시조님을 만나러 가는 셈이 된다.

또 나무들의 조상은 어디서 왔을까? 학자들은 바다에 사는 아주 작은 단세포생물(phytoplankton)로 본다(사진 11). 지구가 탄생하고 4억 년이 지난 후 대략 41억 년 전에 바다에서만 살던 단세포생물들이 점차적으로 땅을 정복하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나무의 시조는 무려 34,500,000만대 할아버지가 된다.

지구가 처음 탄생했을 때의 대기에는 거의 산소가 없는 상태였으며, 동물이나 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우리 육안으로 관찰할 수 없을 만큼 작은 단세포생물인 녹조류는 엽록소를 지니고 있어 대기 중에 있는 탄소를 받아들이며, 소위 광합성이란 활동을 하기 시작함으로 해서 산소가 없었던 대기의 성분을 점차적으로 바꿔가기 시작한다.

▲ <사진 5> 졸참나무.
녹조류는 둥글거나 마치 젓가락 모양을 하고 있는 아주 작은 생물로, 수없이 많은 녹조류들이 작은 배 모양을 한 것처럼 뭉쳐서 살아간다. 녹조류는 그들의 후손들이 오늘날처럼 눈부시게 생활할 것이란 걸 알고서 그토록 놀라운 일을 했을까?

이러한 녹조류의 활동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활엽수나 침엽수의 나뭇잎이 광합성을 하는 것과 같다. 녹조류의 그 놀라운 활동은 지상의 지의류나 이끼, 고사리와 같은 식물이 살 수 있는 기회를 우선적으로 부여했으며, 이후 거대한 나무들이 많이 증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다.

오늘날 여기저기서 관찰할 수 있는 다양한 색상의 초본식물들도 결국은 이 녹조류의 활발한 활동 덕택이다. 숲에서 살아가는 모든 동물들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러한 크고 작은 식물들이 존재해 살고 있는 결과이며, 인간도 숲의 혜택을 철저히 받고 있는 셈이 된다. 지상의 모든 생명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나무란 생명체에 의존되어 있다.

여기서 어떻게 나무가 지상 최후의 승리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일까란 의문이 꼬리를 문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는 나무만이 갖는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나무가 지상 최고의 식물로 번창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셀룰로스(cellulose·섬유소)와 리그닌(lignin·목질소)이란 물질의 발명에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책상이나 걸상은 바로 셀룰로스와 리그닌 덩어리로 만들어진 재품이다. 이 놀라운 발명품은 서울의 63빌딩만큼 높은 160m의 키로 자라는 나무를 지탱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 <사진 6> 녹색병원의 역할을 하는 숲.
또한 나무 높이가 160m까지 성장한다는 것은 단순한 놀라움을 넘어, 그 높이에 있는 나뭇잎까지 물이 운반되어 광합성을 한다는 사실에서 나는 나무에게만큼은 과학상을 줘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나무가 발명한 두 번째의 놀라운 것은 바로 이 운반시스템의 기술이다.

나무뿐 아니라 생명에게는 물이 가장 소중하다. 이는 인간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몸속에 피는 1/3이 사라져도 생명에는 지장을 받지 않지만, 물은 8%가 사라지는 순간 목숨의 위험을 받을 만큼 소중하다. 그처럼 물은 나무에게도 중요하며, 충분한 물의 공급과 적절한 곳에 부족함이 없이 공급될 때 나무는 건강한 상태를 유지해 갈 수 있다.

빛과 물이 충분히 주어지면 나무는 나뭇잎을 통해 활발한 광합성을 하면서 땀을 흘리게 되는데, 뿌리로부터 필요한 만큼의 물이 공급되지 않을 때는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아주 무더운 여름 같은 날 나무는 많은 땀을 흘리는데, 그만큼의 물을 뿌리로부터 빨아올리지 못하게 되면 나무는 병들고 반복되면 죽음에 이른다. 이 소중한 물을 즉시에 부족함이 없이 나뭇잎까지 공급하기 위해서 나무는 우선적으로 아주 원활하게 물을 운반할 수 있는 도로를 만드는 일이 시급한 과제였다.

그 운반도로를 침엽수에서는 가도관, 활엽수에서는 도관이라 하며, 이 둘의 차이는 국도와 고소도로의 차이라 할 만큼 물 운반속도가 다르다. 나무의 가장 위쪽에 있는 나뭇잎까지 물을 운반하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은 물론 나무에 따라, 그리고 나무의 높이와 시간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며칠 또는 몇 주 정도의 시간을 요하는 일이다.

▲ <사진 7> 양지꽃. 잎 주변에 수액이 이슬처럼 맺혀있다(일액현상).
오늘날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숲은 바로 나무가 물을 운반하는 시스템을 발명한 덕분이다. 충분하고 신속한 물의 운반은 나무의 성장을 가속화시켰으며, 거대한 몸집으로 빨리 자라 무성한 숲을 이루게 되었다.

어느 엉뚱한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결과물에 대한 기록을 전혀 남기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섬세하게 발명품에 대한 세세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나무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과정을 추적해 갈 수 있다. 목질화된 세포벽은 끄는 힘에 강한 셀룰로스와 압력에 강한 리그닌으로 만들어진 합작품이다. 이 둘의 합작품인 신축적이고 단단한 세포벽은 지금까지 내가 아는 자연의 발명품 중에서 가장 위대한 명품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위대한 발명품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 그것도 자신의 몸뚱이를 송두리째 내주는 그들의 헌신과, 소위 과학자들이 뭐 대단한 발명품도 아니면서 특허를 내고 그에 대한 사용권을 행사하는 인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얼마나 인간을 가소롭게 생각할까.

올 봄엔 숨쉬는 자연사과학박물관을 찾아보자

▲ <사진 8> 식물성 플라크톤들.
오늘날과 같은 위대한 나무가 탄생할 때까지는 인류의 역사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했으며, 그 인내를 통해 개발된 셀룰로스와 리그닌의 합작품인 세포벽, 즉 목재, 그리고 나무 내에서 물질을 운반하는 고속도로인 도관의 발명이 나무를 위대한 승리로 이끌었다.

나무는 지난 3억5천만 년 동안 최후의 승자로 이 지구의 제국을 지배해왔다. 어떤 생물이 사라지고 어떠한 환경변화가 일어난다 할지라도 나무는 최후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체다. 우리 인류가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우선 나무가 최후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일이다. 나무의 과학이 인간의 과학보다 위대하다는 나무의 가르침을 놓쳐서는 안 된다.

3월은 봄의 시작이다. 산을 찾는 사람이건 숲을 찾는 사람이건 간에 살아 숨쉬는 자연사과학박물관인 나무의 제국을 관람한다는 마음으로 숲과 나무를 만나보자. 

글·사진 남효창 숲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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