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詩論)들

신경림의 시론

능선 정동윤 2011. 9. 20. 00:28

신경림의 시론

(1) 나는 왜 시를 쓰는가

申庚林은 1955년 《문학예술》지에 〈낮달〉이, 다음 해 〈갈대〉 〈석상〉이 추천되면서 시단 활동을 시작한다. 그의 초기시는 자연을 소재로 삶의 슬픔을 간결하게 노래하지만, 1973년 시집 《농무》를 계기로 이런 숙명적인 슬픔의 정서는 극복된다. 이 시집이 던진 문제점에 대해서는 당시 의견이 분분했지만, 윤영천 교수의 견해에 의하면,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5 ) 첫째는 시와 독자간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사회적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비슷한 시적 태도를 지녔지만, 난해성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60년대의 김수영·신동엽 등과 변별되는 신경림의 특성으로 부연된다. 둘째는 서정시의 기존 통념에 근본적인 이의를 제기, 그 개념을 혁신코자 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삶의 구체성이 배제되고, 일체의 상황적 의미가 사상된 초역사적 ‘순수서정’이 아니라 ‘생활서정’에 주목하는 현실주의시를 지향한다. 세째로 시적 소재를 민중적 차원으로 확대시켰다는 점이다. 그것은 주로 농민의 궁핍상, 피폐한 광산촌 이야기, 떠돌이 노동자와 도시로 유입된 이농민의 실상 등을 겨냥한다.
윤영천 교수의 이런 지적은 신경림의 시적 특성을 비교적 정확하게 요약한 것으로 생각된다. 신경림에게는 이 시집 외에 《새재》(1979), 《달넘세》(1985), 장시 《남한강》(1987) 등이 있고 평론집으로는 《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1983), 산문집으로는 《우리 시의 이해》(1986), 문학선집으로는 《씻김굿》(1987) 등이 있다. 그의 대표적인 평론으로는 〈문학과 민중〉(1973), 〈농촌현실과 농민문학〉(1972) 등이, 시론으로는 〈나는 왜 시를 쓰는가〉(1979) 등이 있는 바, 이 자리에서는 후자를 중심으로 시에 대한 그의 견해를 살피기로 한다. 이 시론은 70년대 우리시의 한 경향으로 지적되는 이른바 민중시를 실천한 그의 생각이 솔직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글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시적 대상과 독자의 수용문제, 쉬운 표현과 한자문제, 민요적 가락 및 대중가요와 시의 관계 등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로 그는 시적 대상, 그러니까 시의 소재를 민중적 삶에 두어야 하며, 시의 수용 역시 민중에게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그의 고백에 의하면, 자신의 초기시에 대한 비판과 관계된다. 이 시론에서 그가 인용하고 있는 초기시 〈갈대〉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이 시는, 그의 말에 따르면, 아무런 의식 없이 쓴 시에 속한다. 아무 의식없이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앞에서 나는 그의 초기시가 삶의 숙명론적 우수나 슬픔을 노래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시세계가 의식없이 씌여진 것이라면, 그가 말하는 의식이란 단순한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개념이라는 할 수 있다. 그의 경우 의식을 가지고 시를 쓴다는 말은 위의 시가 놓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한 자각을 뜻한다. 그 자각은 위와 같은 시를 쓰다가 거의 10년을 쉬면서 그가 깨달은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인식이 계기가 된다. 그것은 50년대 말 60년대 초의 우리나라 시골 농촌의 황폐한 실상으로 부연된다. 따라서 그가 새로운 시세계로 넘어가면서, 흔히 민중시의 길을 튼 것으로 평가되는 시집 《농무》는 우리의 삶에 대한 역사의식과 민중의식을 형상화한다.
이때의 민중의식을 그는 ‘이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과 ‘끈질기고 꿋꿋한 생명력’이라는 두 차원에서 이해한다. 전자가 민중의 삶을 억압하는 부정적 요소라면, 후자는 그런 억압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고 꿋꿋하게 삶을 영위하는 민중적 삶을 뜻한다. 말하자면 그의 경우 민중의식은 부정적 요소와 긍정적 요소를 내포한다. 그의 시가 우리시의 역사에 하나의 새로운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두 요소의 변증법적 울림 때문이었으리라. 왜냐하면 우리시의 경우 시골이나 농촌은 신경림만이 노래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시인들은 농촌의 삶이 보여주는 위의 두 요소 가운데 어느 한 요소만을 거의 감상적인 태도로 노래했다. 그런 점에서 그가 노리는 시의 소재로서의 민중의식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느낌을 준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런 의식이 이른바 민중들에게 쉽게 읽혀져야 한다는 그의 주장 역시 타당하다. 그러나 한편 나는 우리시가 모두 그래야 된다는, 그의 주장 배후에 깔린 강압적인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시라는 것이 반드시 무엇을 노래해야 하고, 또한 반드시 어떤 계층에게 읽혀야 한다는 것은 시의 공리성을 지나치게 낙관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시가 민중에게 쉽게 이해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자연스럽게 쉬운 표현의 문제로 발전한다. 시를 쉽게 표현하자는 그의 주장은 당대의 우리시가 보여주던 이른바 난해시의 문제와 관련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난해시의 문제는 아직도 많은 시비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에 의하면 우리나라 난해시는 개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결과 나타났으며, 따라서 남, 이웃, 독자에게 호소하기 보다는 오직 자기고백에 만족한다. 이런 사정을 그는 민중적 바탕의 상실과 관련시킨다. 말하자면 난해시는 ‘민중에 대한 지적 오만 내지 경멸’이 그 밑바탕에서 작용한다고 부연된다. 따라서 난해시는 반역사적·반민중적 엘리트주의의 소산으로 평가절하된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의 난해성은 그렇게 단순하게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엘리트주의나 민중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가 환기하는 예술의 소외, 나아가 인간의 소외와 관계되기 때문이다. 시가 어렵게 된데에는 물론 여러 요인이 있다. 그러나 근대시와의 대조 속에서 읽게 되는 이른바 현대시의 어려움은 먼저 이 시대가 예술을 예술로 수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동기를 이룬다. 참된 예술적 가치가 산업적 가치로 둔갑할 때 예술가들이 그런 가치에 저항하는 길은 이른바 아방가르드 예술을 통해서이다. 이 아방가르드 예술은, 시의 경우, 그 매재가 되는 언어의 일상적 기능을 불신하고, 그런 불신은 사회에 대한 저항의 미적 형식이 된다. 언어의 일상적 현실적 기능을 부정할 때 시는 어려워지게 마련이며, 또한 사회로부터 소외된다. 그러나 이런 소외가, 아도르노도 지적했듯이, 사회를 부정하는 잠재력이 된다. 예술의 이런 부정성은 따라서 엘리트주의로 치부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나, 민중주의로 간주되는 반부르주아 이데올로기도 동시에 거부한다. 그것은 이 시대에 오면서 자유, 휴머니티, 정의라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허위의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참된 예술가들이 간파했기 때문이며, 또한 마르크스적 시각에서 강조되는 이데올로기가 지나치게 거칠다는 사실, 나아가 궁극적으로 참된 예술과 이데올로기의 관계는 상호 배타적인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은 이데올로기를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零化 혹은 허위화시킴으로써만 가능하다. 6 )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변증법적 비판을 전제로 할 때, 현대시의 난해성 문제는 무조건 매도되기보다는 좀더 성숙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본다.
쉬운 시를 쓰자는 말 자체는 시비거리가 안된다. 그리고 신경림도 지적하듯이 표현이 쉽다는 것은 시의 수준이 낮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쉬운 표현의 문제가 한글 전용의 문제로 발전하는 데에는 논리적 비약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가 한자를 비판하는 것은 그것이 문화의 독점현상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식인들일수록 어려운 한자나 외래어를 사용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른바 엘리트주의를 지향한다. 이런 견해에는 나도 동감이다. 그러나 성찬경의 시론을 살피면서도 말했듯이, 우리시가 보여주는 관념이나 철학의 빈곤이라는 측면을 염두에 둘 때 순수한 우리말만으로 시를 쓰자는 주장은 자칫하면 국수주의적 폐쇄성으로 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한자를 사용하자는 게 아니라 같은 한자라 하더라도 우리말로 순화시키거나 그것이 어려우면 한글로 표현하면 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관념어 투성어인 한자를 무조건 쓰자는 것이 아니다. 가능하면 관념어 역시 한글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우리시는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신경림 역시

"제 경험을 또 내세우는 것이 되겠는데, 저는 제목 이외에는 모두 시에서 한글 전용을 했습니다만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덧붙여 말씀드려 둡니다. 부끄러운 말씀입니다만 저 자신 한문에 익은 독자들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어 아직 제목만은 한글 전용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고백해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한다.
세째로 그는 시가 민중으로부터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 고유의 민요적 가락을 되살리자고 주장한다. 그것은 민요 속에는 ‘이 민족의 한자 설움, 견딤과 참음, 끈질긴 생명력’이 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되살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죽은 것 혹은 죽어가는 것에 새롭게 생명을 부여하자는 뜻이리라. 민요적 가락을 우리시에 도입한다는 문제는 오늘의 우리시가 음악적 요소를 상실하고, 시각적 요소 아니면 내용전달에만 치우치기 때문이리라. 시가 아니라 산문에 가까운 것들을 시랍시고 발표하는 최근의 우리시의 상황을 놓고 볼 때, 시의 기본요소로서의 음악성을 강조하는 그의 견해는 타당하다. 그러나 민요적 가락의 도입문제는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본다. 먼저 우리의 근대시가 형성되면서 비록 아직도 그런 단계에 있기는 하지만, 최초로 자각한 것이 이른바 詩歌의 단계에서 詩의 단계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이조시가니 고려가요니 부르던 것이 갑오경장 이후 시라는 용어로 분화된다. 따라서 謠와 詩의 분리, 말하자면 노래와 시의 분리는 근대시의 특성을 형식의 차원에서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낳는다. 다음 민요적 가락을 현대시에 되살린다고 할 때, 그 변형과정이 문제된다는 점이다. 시인의 호흡과, 전통적 율격 가운데 하나인 민요적 가락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만일 이런 갈등이나 긴장관계가 상실된다면, 그가 말하듯이 대중가요와 시의 관계는, 형식의 차원에서는 변별성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그에 의하면 대중가요는, 내용의 차원에서는, 병든 노래로 규정된다. 그리고 이런 병적 현상은 병든 우리의 사회를 반영한다. 시인은 이런 병적 현상을 치유할 의무가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병든 노래는 개인의 골수에 병균을 옮겨 놓기 때문이다. 병들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교환가치에 지배되는 삶을 뜻한다면, 시인이 할 일은 대중가요와의 싸움보다는 그런 가요의 배후에 있는 상업주의에 대한 미적 저항이 아닐까. 결국 신경림의 시론에서 읽을 수 있는, 이상에서 살펴본 내용들은, 그가 민중시의 개념을 실천하고, 특히 그의 민중의식이 반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를 표방한다는 진보적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시적 형식의 차원에서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내용의 진보성과 형식의 보수성은, 그런 점에서, 70년대 민중시의 한 특성으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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