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무화과/김지하

능선 정동윤 2011. 9. 27. 12:58

무화과/김지하

 

 

돌담 기대 친구 손 붙들고

토한 뒤 눈물 닦고 코 풀고 나서

우리는 잿빛 하늘

무화과 한 그루가 그마저 가려 섰다

 

이 봐

내겐 꽃 시절이 없었어

꽃 없이 바로 열매 맺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친구는 손 뽑아 등 다스려주며

이것 봐

열매 속에서 속꽃 피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일어나 둘이서 검은 개굴창가 따라

비틀거리며 걷는다

검은 도둑괭이 하나가 날쌔게

개굴창을 가로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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