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길/정희성

능선 정동윤 2011. 9. 27. 14:32

길/정희성

 

 

아버지는 내가 법관이 되길 원하셨고

가난으로 평생을 찌드신 어머니는

아들이 돈을 잘 벌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어쩌다 시에 눈을 뜨고

애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나는 부모의 뜻과는 먼 길을 걸어왔다

나이 사십에도 궁티를 못 벗는 나를

살 붙이고 살아온 당신마저 비웃지만

서러운 것은 가난만이 아니다

우리들의 시대는 없는 사람이 없는대로

맘 편하게 살도록 가만두지 않는다

세상 사는 일에 길들지 않은

나에게도 그것이 그렇게도 노엽다

내 사람아, 울지 말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아라

평생을 죄나 짓지 않고 살면 좋으련만

그렇게 살기가 죽기보다 어렵구나

어쩌랴, 바람이 딴 데서 불어와도

마음 단단히 먹고

한 치도 얼굴을 돌리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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