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시의 맛/김현승

능선 정동윤 2011. 10. 2. 09:18

시의 맛/김현승

 

 

멋진 날들을 놓아두고

시를 쓴다

고궁엔 벚꽃

그늘엔 괴인 술,

멋진 날들을 그대로 두고

시를 쓴다

 

내가 시를 쓸 때

이 땅은 나의 작은 섬

별들은 오히려 큰 나라

 

멋진 약속을 깨뜨리고

시를 쓴다

종아리가 곧은 나의 사랑은

태평로 2가 프라스틱 지붕 아래서

나는 호올로 시를 쓴다

 

아무도 모를 마음의 빈 들

허물어진 돌가에 앉아

썩은 모과 껍질에다 코라도 부비며

내가 시를 쓸 때,

나는 세계의 집 잃은 아이

나는 이 세상에서 참된 어버이

내가 시를 쓸 땐

 

멋진 너희들의 사랑엔

강원도 풍의 어둔 눈이 내리고

내 영혼의 벗들인 말들은

까아만 비로도 방석에 누운

아프리카산 최근의 보석처럼

눈을 뜬다

빛나는 나의 눈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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