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겨울나기/정동윤
겨울을 눈이 내린 태백산이나 설악산에서 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일본의 어느 온천이나 동남아의 따듯한 휴양지에서 보내는 일은
그야말로 나에겐 사치이다.
그저 집 주변의 남산의 숲을 찾아 눈길에 푹푹 빠지며
잣나무나 팥배나무 사이로 걸어서 남산을 한 바퀴 돌고
케이블카 방향에서 명동으로 내려가 영화를 한 편 보고
남대문에서 순댓국 한 그릇 하거나,
한옥마을 거쳐 충무로 쪽으로 내려가
광장시장의 먹자골목에 들러 긴 나무의자에 앉아
김이 나는 만두나 손칼국수 아니면 녹두 빈대떡에 막걸리 한 잔하고
청계천 돌아 집으로 오는 일정도 재미있다.
일주일에 한 번쯤 북한산에 올라
먼 풍경을 바라보며 답답한 마음을 확 터주는 일도 필요하다.
사무실에 갇혀서, 아파트에 들어앉아서,
도로를 걸어가거나, 지하철 속에서는 멀리 볼 수가 없다.
산이라도 올라야 다른 산봉우리를 내려다 볼 수 있고
강이나 바다, 도시를 한 눈으로 바라 볼 수 있다.
그래야 마음의 공기가 풍선처럼 빠지지 않고
서울에서 겨울나기가 수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