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사 계곡으로 가자고 하던
친구들과 엇갈린 출발로
나는 북한산 서쪽
용호 능선으로 올라가서
비봉능선의 긴 등줄기를 타고
동쪽 끝 위문의 나무계단까지,
하산은
우이동 명사찰 도선사보다
키 큰 튤립나무와 물푸레나무
보호수로 지정될 만한 은행나무가
그림자 넓게 드리우는
산성계곡 아래
외로운 보리사 마당에서
의지했던 지팡이를 접었다.
마지막 여름의 선심으로
수리봉 향로봉 비탈에서
한바탕 소나기 땀 흘리고
보수 중인 청수동암문 깔딱고개,
노적봉에서 위문 가는 바위 틈에서
다시 한 번 옷이 흠뻑 젖도록
여름이 뜨겁게 몸을 덥혀 주었다.
어느듯 추석은 지났고 추분마저 지나면
단풍과 낙엽이 카메라를 채울 것이다.
물질과 명예, 경쟁과 승리는
풀빛 찾아가는 나를 지치게 하는
부질없이 피곤한 무서운 암벽,
산행에 필요한 한 병의 물과
허기를 견딜 수 있는
빵 한 덩어리 남아 있다면
그 경계선 너머의 욕망은
산 속에 깊이 묻어 버리리라,
길 위의 햇살, 시원한 바람 따라
내 마음의 평온을
등산화 소리 들으며 찾아보리라
높은 봉우리 바라보며
하얗게 닳은 화강암 좁은 길에 흡수되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종주산행에서
나도 모르게 노장사상의
무위, 무형, 무용의 세계로
저항없이 빠져드는 것이 아닐까?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외침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 아닐까?
언제까지 길 위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면,
아름다운 풍경을
여과 없이 담아올 수 있으면,
바둑의 복기처럼
행복한 산행 돌아보며
작은 느낌 하나 잊지 않고
되새김할 수 있다면 뭘 더 바랄까.
인간이 만든 도시에서
신이 만들어 놓은
자연스러운 자연이 그리워
여름을 넘기고
가을을 맞이하는 길목에서
북한산 서쪽에서 동쪽으로
산길을 물길 가르듯
잘 다녀왔습니다.
-정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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