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의 가을/정동윤
화석나무에 슬며시 다가온 바람
허세을 앞세운 정치인의 혀처럼
부드럽고 친밀하게 속삭입니다.
밤이면 더 은근하게
봄은 향기롭고 가을은 엄숙하지만
바람의 힘 자랑하며 가지를 흔듭니다.
검정 연탄재 뒤집어쓰고
홀로 제자의 입술을 훔치는
시인도 힘들게 사는 세상에서
바람이 더 음산해지기 전에
노란 이파리에 넉넉한 여비 주며
은행나무는 자리를 지킵니다.
비둘기처럼 가뿐한 착지
맨땅에 떨어져도 아프지 않게
은행나무는 쉬 잠들지 못합니다.
여한 없는 삶 일구며
한 해의 화려한 잔치 끝내고
모두가 헤어지는 계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