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市 능선)

**이런 사랑**

능선 정동윤 2013. 12. 27. 16:36

**이런 사랑**


작은 솔씨 하나가 소나무가 되려면 참으로 많은 햇빛과 달빛,

별빛의 사랑에 더하여 바람과 비의 노력과 길고 힘든 세월이

하나하나 쌓여 있어야 한답니다

1억7천만년 전부터 살아온 생명의 신비를 간직한 소나무,

바늘같은 두 개의 잎을 모아 한 쌍을 이루는 이엽송,

수 많은 나무 중에도 활엽수의 사시나무와 침엽수인 소나무의

바람 소리가 가장 듣기가 좋다고 하는데, 쏴아~하는 소나무의

바람 소리를 듣노라면 그윽한 솔향과 함께 소나무의

깊은 철학을 느낄 수 있어 천지에 부러울 것이 없어집니다.

옛날, 지극한 효성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그대로 바위가 되어 버린 호랑이의 슬픈 전설을 간직한

인왕산 범바위 아래 풀빛 진한 늠름한 소나무 한그루와

갸날픈 분홍의 진달래 한그루가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소나무는 처음 솔씨로 이 바위 아래에 내려 앉았을 때

작은 솔씨 하나를 감싸 줄 흙이 없어서 이리저리 밀려 다니며

그렇게 막막하고 처연했던 일을 잔잔하게 추억 해 봅니다.

소나무는 산 아래에서 바람이 불어 올 때마다

함께 묻어오는 흙먼지를 모우고 모아서 새벽 이슬로 곱게 다지고,

다진 흙가루를 바위 틈으로 조금씩  밀어 넣기도 합니다

비가 내리면 그 빗물로 또 다지고 다진 뒤에야

겨우 자신의 뿌리가 내릴 자리를 확보 하였고,

그 때의 그 감격은 도저히 잊지 못 합니다.

비록 좁고 깊진 않지만 자신의 뿌리를 처음으로 바위 틈으로

쭈욱 내리면서 밤마다 달과 별의 이름을 빌어 튼튼한 나무로

자라게 해 달라며 간절한 기도를 참 많이 하였습니다.

밤하늘 별들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바람 빌어 우는

소나무의 애절한 기도소리도 충분히 들을 수 있습니다

또 한겨울 혹한에 얼어 죽지 않기 위하여 해가 뜰 때부터

노을이 번질 때까지 팽팽한 긴장으로 해를 바라보면서

얻어 놓은 따뜻한 열기를 줄기에 가득 받아 저장 해 두기도

했습니다.

그런 힘든 과정을 몇 차례 겪은 뒤 비로서 의젓하고 당당한

푸르름을 간직한 붉은 가지 소나무로 자라 날 수 있었습니다.

한겨울 눈이 얼면 그 차가운 한기에 한없이 외롭기도 하고,

폭염의 여름날엔 바위마저 녹일 듯한 더위을 숨 한번 쉬지 않고

견디면서, 어린 솔잎을 무성하게 피우도록 노력하고 자신의

주위를 생기있게 만들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진달래 꽃씨 하나가 소나무 곁으로 날아 왔습니다.

창백한 분홍의 진달래를 볼 때마다 도발적으로

온 산을 순식간에 물 들이는 민첩함에 놀라기도 했고,

보름정도 지난 다음 맥없이 사라져 버리는 진달래 붉은 꽃잎이

참으로 황당하고 발칙하기도 하였답니다.

2억년을 푸르게 이어온 소나무는 이른 봄날 한번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미련없이 지고 마는 진달래의 변덕 심한 모습이

의아 하였는데, 이렇게 자신의 뿌리 곁으로 날아와서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넓히는 진달래가 신기하기도 귀엽기도 했습니다.

농부의 억센 손마디처럼 굵고 강한 소나무 뿌리옆에서

진달래 뿌리는 보드라운 잔뿌리를 뻗기도 하고 소나무를

간지럽히기도 하였습니다.

소나무는 애처롭고 여린 진달래 뿌리에게 넉넉한 공간을 애써

만들며 잘 보살펴 주었습니다.

진달래도 자연이 주는 온갖 혜택과 소나무의 보살핌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무럭무럭 잘 자랐습니다.

때로는 거칠고 험한 비바람, 혹독한 추위와 더위,

가뭄과 긴 장마까지도 참으로 잘 견디어 내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만 보았던 진달래가 건강한 소나무의 울타리

안에서 이른 봄날 터질듯힌 자태를 뽐내며 한꺼번에 피기

시작 했습니다.

소나무는 진달래를 내려다 보며 깊은 생각에 사로 잡혔습니다.

이렇게 한꺼번에 꽃을 피우려고 긴 긴 겨울 땅 속에서 그토록

심한 몸앓이를 하였구나.

이 고운 다섯 꽃잎을 피우려고 땅 속 벌레들의 무심한 공격에

그렇게 그렇게 애를 태웠구나.

그런 정성 어린 노력의 결과로 순수하고 깨끗한 수액을

줄기로 가지로 올려 보냈으니  이렇게 독이 없는 말간 꽃잎으로

피어 나는구나.

벌레도 그 꽃잎을 먹고, 산새들도, 다람쥐도 심지어 사람들도

맛이 좋다며 술을 담궈 마시고 전이나 떡에도 즐겨 넣어 먹었구나.

이렇게 독이 없는 순수한 꽃잎을 피우려고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남김없이 소진하니 어떻게 오랫동안 꽃을 피울 수 있겠는가.

내 솔잎에 독이 없어 사람들이 송편을 만들 때 가져 가는 것를

알았을까...

진달래의 뜨거운 열정을 이해한 소나무는

봄날 한 번의 짧은 꽃피움을 위해 모든 정성과 노력을 한꺼번에

쏟아내고 미련없이 지고 마는 진달래가 한없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와 늦가을까지 푸르름을 유지하도록 도와주고 잎이 질 때까지

늘 그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진달래도 사철 변치않는 소나무와 함께하는 삶이 너무 행복 하였습니다.

진달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자신의 사랑이 식지 않는 한, 해마다  봄이 오면 누구보다 먼저

사랑의 꽃을 소나무를 위해 피우겠다고.

또 꽃이 피는 한  진달래의 사랑은 영원 할 거라는 약속을 하고

꽃이 진 뒤 녹색 잎을 피우면서 소나무를 새삼 우러러 보았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다정한 부부처럼 아름답게 서 있는

소나무와 진달래는 자연의 혹독한 시련도 이젠 전혀 겁내지 않게

되었으며,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와

진한 사랑을 해마다 꽃으로 피워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었습니다.


<산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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