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소개]
가슴에는 노자의 ‘무위자연설’, 머리에는 순자의 ‘성악설’, 몸에는 상앙의 법과 신불해의 ‘술術’, 신도의 ‘세勢’를 조화하여 법치 사상을 집대성한 사상가 한비. 철저히 이기적 존재인 인간에게 강제와 구속, 공과에 따른 상벌만이 필요하다고 본 그의 법률만능주의는 유가 사상까지 압도하면서 중국 역대 군주의 통치 지침이 되었다.
『한비자』는 진보적, 현실적, 실천적 정치 이론을 정연하고 치밀하게 담고 있어 고금을 초월한 공감을 얻지만, 분서갱유의 단초를 주는 등 진시황이 폭정에 이용한 통치서이기에 악서로 금지된 적도 있다. 극도의 인간 불신과 왜곡된 사회 인식, 통치자만을 위한 편파적 사상 등 근본적 한계를 내포하고 있지만, 시공을 막론한 인간관계의 부조리, 권모술수의 허와 실을 꿰뚫는다. 현대 민주주의의 법치와 비교하면서 각계 지도층과 국민이 꼭 읽어야 할 살아 숨쉬는 정치교과서다.
『한비자』는 본래 『한자韓子』라 불렸다. 그런데 송나라 이후부터 그전 당나라 때의 학자 한유韓愈를 ‘한자’라 부르게 되면서 이 둘을 구별하기 위해 『한비자』로 바꿔 부르게 됐다.
『한비자』가 몇 편으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정확한 근거가 없다. 일찍이 사마천은 역사책인 『사기』를 저술하면서 한비의 전기를 실었다. 사마천은 『사기』 「노자한비열전」에서 「세난」 편을 언급하면서 한비는 과거 정치의 득실과 변화를 살펴 「고분」 「오두」 「내외저」 「설림」 「세난」 등 10여 만 자의 저술을 남겼다고만 했을 뿐, 『한비자』의 전체 편수에 대해서는 정확히 언급하지 않았다. 『한서』「예문지藝文志」에는 총 55편이라고 적혀 있으며 『수서隋書』「경적지經籍志」에는 20권이라 적혀 있다. 그러나 내용상으로 같은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판본은 ‘송건도본宋乾道本’인데, 원래 원나라 때 발견된 판본은 53편이었다고 한다. 명나라 때 능영초凌瀛初의 『한비자』 「범례」를 보면 「간겁시신」 한 편과 「설림」의 하편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여전히 55편이 전해지고 있으니 그 일부가 남아 전해지는 듯하다.
공자와 맹자 -유가 노자와 장자 -도가 한비자 -법가 한비자의 사상은 진시황의 통일제곡 건설의 밉거름이 됨 시대의 흐름을 읽어라 1. 운명을 거부하라 2운명론적 접근법의 허상 주변국의 힘의 균형을 이용하는 능력 법가 -진보적 개혁 법치주의 주장 주류와 비주류 약육강식의 처절함-삶과 죽음 비주류국가 -유가 대신 법가의 필요성 대두 인간관계나 국제사회에는 불평등이 존재 힘에 의한 권력 -서열 유지 한비 자신 역시 서얼 출신 -비주류 한비에게서 생존법을 배워라 10만자 속에 담긴 권력의 기술 혼돈의 시대에서 속내를 숨길수 밖에 없는 상황-차가운 인간관계형성 권력을 지행 -시대와의 불화 삶을 꿰뚫는 권세의 힘 -절대적 가치 도덕과 현실의 불일치 -소통거부 법치와 권세를 통해 강력한 통치술을 제시 생존ㄴ을 위한 최소한의 기본장치는 군주의 권력이다
[한비자] 한비를 통해서 본 군주론과 권력론, 그 통찰의 리더십
한비자의 법가사상은 기본적으로 인간관계를 보는 시각의 차이 와 시대적 상황에서 출발한다. 춘추시대의 유가사상은 인의예지로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역설하였다. 그러나 전국시대에서는 인간의 도리보다 생존이 더욱 중요시되게 되었다. 또한 모든 사람이 도덕적 이상으로만 관계를 지키고 발전시키지는 않는다. 한비는 이러한 관점에서 군주가 나라를 제대로 통치하기 위한 기본 얼개로 법, 술, 세의 세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법은 백성의 이해관계 등 이익을 통제하는 원칙과 규범이고 술은 신하를 조종하고 부리기 위한 통치술 내지 용인술이다. 세는 백성과 신하를 함께 통제하는 권세를 말한다. 이외에도 군주는 상벌이라는 채찍과 당근을 통해 신하와 백성을 다스리고 감정적인 언행을 삼가며 자기절제를 통한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했다.한비는 군주의 시각에서 법가사상을 주장하였지만 현대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리더이든 아니든 우리 또한 현대를 살아가기위해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며 말을 삼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세상의 모든 발전과 변화는 모순과 갈등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을 하기는 이른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비자] 한비를 통해서 본 군주론과 권력론, 그 통찰의 리더십
한비자의 법가사상의 기본 이념은 법, 술, 세이다. 법은 인의, 예절같은 불문법이 아닌 성문화되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법가 사상의 기반이다. 술은 통치술, 용인술 등으로 왕이 신하와 백성을 다루는 방법론이다. 세는 세력을 말한다. 한비자는 왕은 법을 이용해서 백성을 통제하고 상벌권을 통제하고, 술을 이용해서 신하로하여금 일을 제대로 하도록 감시하고 견재하여야 한다고 했으며, 세력을 왕주변으로 모아 혹시 모르는 위협에 항시 대비하여야 한다고 했다. 크고 작은 사회적 갈등 해소를 위해 한비자는 절대국가의 공권력 창출을 요청했다. 그의 제도와 사상은 관료제도를 통한 절대군주 정치와 신상필벌을 통한 엄격한 법의 시행과 속국의 경제적 자족 등의 특색을 지닌다. 군주는 최고입법자면서 법률에 구속받지 않는다는 공법은 사실상 군주의 법이었다. 그것은 심각한 불평등이었다. 전제제도에 대한 한비자의 구상은 민중의 희망에 유리한 점도 있었지만 그 주된 목적은 군주의 통치를 보호하고 유지하며 강화하는 데 있었고, 이러한 학설은 중국의 군주 전제주의 기본형식을 구축했으며 역대 제왕들에게 행위의 기준을 제공했다.
[한비자] 한비를 통해서 본 군주론과 권력론, 그 통찰의 리더십
크고 작은 모든 사회적 갈등의 궁극적 해소를 위해 한비자는 '절대국가의 공권력'의 창출을 요청했다. 그의 사상은 관료제도를 통한 절대군주 정치와 신상필벌을 통한 엄격한 법의 시행, 그리고 속국의 경제적 자족 등의 특색을 지닌다. 군주는 최고 입법자이자 또한 법률에 구속 받지 않는다는 "공법(公法)"은 사실상 가장 큰 사법(私法)이었다. 그것은 결코 평등이 아니었으며 심각한 불평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군주 전제제도에 대한 한비의 구상은 민중의 희망에 유리한 점도 있었지만, 그 주된 목적은 군주의 통치를 보호하고 유지하며 강화하는 데 있었다.
한비자의 이러한 학설은 중국의 군주 전제제도의 기본형식을 구축했으며 또한 역대 제왕들에게 행위의 기준을 제공했다. 진나라의 정치가 법가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후로도 역대왕조는 기본적으로 이를 계승하고 바꾸지 않았다.
전국시대에 있어 제자백가가 나와 제각기 천하평정을 외쳤지만 결국은 한비자의 '형명법술(刑名法術)' 정치가 주효하여 진시황이 6국을 병합하여 천하통일을 일단 달성하게 된 것은 또한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고 본다.
군주는 호불호를 논하지 말라. 군주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말고 편정심을 유지하라. 지금의 군주들의 자질은 과거 제나라때 군주보다 미흡하다. 자신의 호불호를 밖으로 표현하고 종교를 이야기하여 파벌을 형성하여 조직을 망가뜨림.
[한비자] 한비를 통해서 본 군주론과 권력론, 그 통찰의 리더십
시대적 변화를 인정하라 수주대토 각구주검. 시대는 시대에 맞는 상황에 따라 변화를 하고 그 변화에 따라 적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온고지심은 방법의 하나이요, 믿음이 아니다.
[한비자] 한비를 통해서 본 군주론과 권력론, 그 통찰의 리더십
인간의 마음을 감정을 믿을 수 없다(동상이몽) 이는 한비자의 성장과정에서 온 출생의 열등의식과 인간관계의 피해의식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그는 조직/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함. 그 조직/시스템의 도구로 법술세로 표현하였음.
[한비자] 한비를 통해서 본 군주론과 권력론, 그 통찰의 리더십
시대적 변화를 읽는 것 시대적 트렌드를 읽고 상황변화에 신속히 적응하는 자세가 한비자를 통한 현대사회를 적응하는 첩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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