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市 능선)

운명

능선 정동윤 2011. 8. 16. 10:00

 

운명/정동윤

 

매운 마늘 고춧가루 속에서 속절없이

하얗게 익혀져 죽기는 억울했습니다.

그것은 결단코 나의 운명이 아니었습니다.

한 점 떡밥의 향기에 속아

당신이 가두어 놓은 망에서 죄도 없이

죽을 시간 기다린다는 것은 너무 억울하였습니다.

나는 살아야 했습니다. 정말 살고 싶었습니다.

피라미 같은 목숨 거두기 위해 우리의 배를 가르기 직전

당신은 당신답지 않게 물가에 작은 구덩이를 파서

우리를 몰아넣는 실수를 하였습니다.

내 삶의 의지가 워낙 강하였기에

우린 그 순간을 결코 놓칠 수가 없었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 육신이 당신의 미각을 위해

끈적거리는 위장 속에서 삭혀질 수는 없기에

따가운 모래와 멍드는 자갈 위를 솟구치고 뒹굴며

강을 향한 탈주 멈출 수 없었지요.

죽을 힘을 다해 파닥거렸습니다.

드디어 물을 만났습니다

수많은 동료의 내장과 부레가 흘러나오는

그 비릿한 냄새를 뒤로하고

꼬리지느러미를 힘차게 흔들며

유유히 강의 중심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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