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길(山 능선)

백련산과 안산

능선 정동윤 2015. 12. 2. 06:36

 

살짝 내린 눈으로 북한산 바윗길은 조심스러웠다.

셋(근엽, 천수, 나)이서 출발하였으나 다섯(종수, 성호 포함)이 되어 내려왔다.

뒤풀이로 따끈한 대구탕으로 요기하니 아침에 나타났던 저혈당 증세가 말끔하게 사라졌다.

넷은 당구장으로 떠나고 나는 홍제동으로 와서 다시 백련산으로 올랐다.

유진상가를 대각선으로 보는 방향에 들머리가 있는 초록숲길이란다.

 

한 10분 정도 잘 만들어진 데크 계단을 올라가니 금방 시야가 트인다.

저기 보이는 뒷편의 큰 산이 안산이다.

산 아래서 보면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지만

산 위에서 보면 큰 산이 작은 산을 품고 있다.

오늘은 저기 안산을 돌아 독립문공원을 거쳐 후암동으로 갈 계획이다.

 

바위를 뚫고 나온 세 그루의 소나무의 뿌리는 하나로 생각된다.

이런 뿌리를 연리근이라고 할까? 한참을 머물다 간다.

백련산의 수목도 거의 소나무와 참나무류가 대부분이었다.

초록숲길이 어울릴 정도로 나무들이 많다.

 

인왕산 자락이 앞에 보이고 그 뒷쪽은 북한산이다.

처음 올라왔을 때는 길을 몰라

다소 혼란스러웠지만 동네 주민으로 생각되는 분께

대강의 길 안내를 듣고나서야 자신있게 능선을 따라 걷기 시작하였다

그랜드힐턴호텔을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듯이 도는 포란형의 지세였다.

약간의 불안감을 털고 걷는 길은 발걸음이 가볍다.

 

인왕산의 전체 윤곽을 잘 볼 수 있었다.

기차바위와 치마바위가 능선으로 연결되어 보인다.

초록숲길은 화강암이 대부분이지만 이따금 부드러운 흙길이 나타나고

구청에서 잘 깔아놓은 덮개로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다.

 

오전에 눈이 오고 오후는 개일 줄 알았는데 여전히 구름이 짙게 덮여있다.

좀 더 빨리 안산으로 가려고 지름길을 찾아 보았다.  

젊은 연인으로 보이는 이에게 이쪽으로 가면 안산이 나오느냐고 물어보니

자신 있게 그렇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잘 모르면서 쉽게 대답하였다.

산기슭을 내려가는 길이 점점 좁아지고 길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돌아 나와서 반대편으로 가니 그제야 왔던 길이 다시 보였다.

 

작은 산이라 얕보고 준비 없이 길을 나선 나의 실수였다.

구름 속으로 지는 저녁 해가 왜 애절하게 보일까?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먼 데 해는 뉘엿뉘엿 잠기기 시작한다.

안산의 규모가 백련산보다 크니 서둘지 않으면 어둠 속으로 걸어야 한다.

 

여기까지 오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서두르는 마음에 남쪽을 정하고 무조건 걸었다,

길은 점점 덤불과 나뭇잎으로 발이 푹푹 빠질 정도이고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어렵게 내려가니 연립주택 단지가 나오고

철조망으로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출입금지구역.

아뿔싸! 은평정 아래의 잘 조성된 길이 의심스러워

목적지에 빨리 가려다 오히려 더 늦는 경우가 되었다.

 

은평정.

주변의 조경공사가 한창이었다.

 

겨우 제 갈 길을 찾으니 같은 길을 세 번이나 걸었다.

한 번 간 길을 되돌아 지름길을 찾으려다가 실수하여

다시 돌아서 이곳으로 왔으니...

겸손의 산골짜기를 욕심으로 밟았으니 두려운 마음과

아까운 시간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백련사로 가는 차도로 내려와서 홍제천에 닿았다.

홍제천에서 안산으로 진입하는 길이 있다고 들었는데

바로 이곳이다. 서대문구청으로 우회하는 일이 있지만

점점 어두워 오는 밤이 걱정되어 빠른 길을 택했다.

 

안산자락길을 전부 돌기에는 금방 어두워질 것 같아 정상으로 올라서

바로 내려가면 어떨까 고민하니 랜턴이나 플래시도 준비하지 않았다.

다행히 안산자락길은 거의 데크길로 설치되어 있어

야간에도 걷는데 불편이 없었다.

자락길이 멀지만 안전하니 정상은 포기하였다.

 

 

이번은 판단을 잘하였다. 낮은 산이지만 산은 산이다.

어둠 속에서 헤매지 않고 잘 마련된 길을 그냥 걷기만 하면 되었다.

아침 9시에 북한산으로 올라 여기까지 걷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내 삶도 오전은 친구와 더불어 즐겁게 지내고

오후는 풍경 속을 거닐며 자연에 취해 거닐다가

밤이 되면 이렇게 편안한 데크길처럼 걸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독립문 공원까지 가려면 1시간 이상 걸리고 집에 도착하면 7시쯤이 될 것 같다.

여기까지 오면서 일어났던 일을 곰곰이 되새겨 보기도 한다.

하루의 일상이 내 생애의 축소판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이렇게 적어본다.

 

그날을 꿈꾸며

 

은퇴하면 떠돌이가 될

내 배낭 속에는

아주 사소한 죄도 채우지 않고

가벼운 민폐도 담지 않으리라

 

내 지도에는

도우미 산의 경위도와

봉사라는 강의 방향이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고

 

내 두 스틱으로는

욕망과 출세, 명예와 부를 위해

남을 딛고 올라서는 일 따위는

정말 짚지 않으리라

 

여러 곳을 다녀올수록

생애의 골짜기는 더 깊어지고

머릿속은 가을 하늘처럼 맑게

높은 내공을 쌓으리라

 

먼 여행에도

쉬 지치지 않는 건강 챙기다

철새처럼 날아가 버리는

짐이 되지 않을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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