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길(山 능선)

서울대공원 산림욕장 탐방

능선 정동윤 2011. 8. 31. 10:00

 

서울 근교의 공원 중에서 대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은 광진구의

어린이대공원과 더불어 과천 서울대공원이 유일할 것이다.

월드컵공원,남산공원,여의도 공원,효창공원 등과 비교해 보아도

규모면에서 압도적이며 산림욕장의 길이도 아늑하고 길었다.


서울대공원의 여러 시설 중에서 산림욕장만을 둘러보고 왔다
75세의 산꾼과 더불어 올라 갔으나 내가 이리저리 수목을 쳐다보는 사이에
수목 향기의 유혹이 강렬했는지 휑하니 먼저 올라가 버리셨다.

한때는 친구들과 많은 산을 다녔지만 이제는 함께 다닐 친구가 없어서
혼자 이곳의 산림욕장을 찾는다면서 쓸쓸한 표정까지 지어셨는데...


한바퀴 둘러보는데 대략 3시간 정도 걸렸다.

오른쪽으로 올라 가나다라 구간의 순서대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능선 아래로 돌았다.

가 구간 2.2키로, 나 구간 1.7키로, 다 구간 1.4키로, 라 구간 1.6키로  합계 6.9키로.
군데군데 산막으로 휴게시설과 계곡의 물과 약수터가 있었다.

일반적인 공원으로 생각하고 만만하게 보면 안될 것 같다.

숲길로 다니는 등산이라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대부분의 수목들이 낙엽수로만 구성되어서 겨울에는 황량할 것 같았다

측백나무나 소나무 잣나무 등을 많이 심어서 겨울에도 산림욕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 하다가도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소나무 등의 생육환경이

날로 악화되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희망사항으로 남겨 두고 만다.

그래서 가을과 겨울 사이는 출입을 통제하고 있나보다.


 

올해의 마지막 낙엽을 질 때까지 숲이 그리울 때마다 자주 와야겠다.

부드러운 흙길을, 햇볕을 가리는 수목 사이로 3시간을 걸을 수 있다면

제주도의 올레길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친구들과 함께 걷고싶은 길이다.
4호선 전철을 타고 서울대공원역의 2번 출구로 내려 잠깐이면
산림욕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입장료 3천원.주차장 주차비 4천원.

 

수목으로는
입구로부터 느티나무,전나무,튤립나무,잣나무,칠엽수,당단풍나무,복사나무
팥배나무,노간주나무,신갈나무,산초나무,자작나무,물갬나무,작살나무,광대싸리
자귀나무,아까시나무,진달래,리기다소나무,소나무,밤나무,쪽동백나무,야광나무
물오리나무,물푸레나무,느릅나무,다릅나무,신갈나무,굴참나무,상수리나무,떡갈나무
벚나무,노린재나무,버드나무,산뽕나무,생강나무,털생강나무,병꽃나무,산돌배나무,
개옻나무,음나무,딱총나무,은사시나무(은수원나무),때죽나무 등이 보였다.


시로는
낙엽끼리 모여산다/조병화
낙화/이형기
모란이 피기까지는/김영랑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꽃/김춘수
진달래꽃/김소월
즐거운 편지/황동규
가을의 기도/김현승
오늘/구상
한 잎의 여자 1 /오규원
(낙화/조지훈.)

 

쉼터에 적혀있는 시들이다.

시의 선택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애송되는 시를

고르고 고른 대표작들 같았다.

대공원 시집이라 생각하고 모두 모아 보았다.

 

.....................

낙엽끼리 모여산다/조병화

 

낙엽에 누워 산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항상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
아, 나의 육체는 낙엽 속에 이미 버려지고
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마시고 산다.
비 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
비 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
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에 누워 산다.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
...................................................

낙화/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모란이 피기까지는/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의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는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으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 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꽃/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

진달래꽃/김소월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분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즐거운 편지/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속을
헤매일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언제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가을의 기도/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무 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오늘/구상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


한 잎의 여자 1 /오규원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女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病身 같은 女子,
詩集 같은 女子,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女子.

************
 
한 잎의 여자 2 /오규원

 

나는 사랑했네 한 여자를 사랑했네.
난장에서 삼천원 주고 바지를 사 입는 여자,
남대문시장에서 자주 스웨터를 사는 여자,
보세가게를 찾아가 블라우스를 이천 원에 사는 여자,
단이 터진 블라우스를 들고 속았다고 웃는 여자,
그 여자를 사랑했네.

순대가 가끔 먹고 싶다는 여자,
라면이 먹고 싶다는 여자,
꿀빵이 먹고 싶다는 여자,
한 달에 한두 번은 극장에 가고 싶다는 여자,
손발이 찬 여자,
그 여자를 사랑했네.

그리고 영혼에도 가끔 블래지어를 하는 여자.
가을에는 스웨터를 자주 걸치는 여자,
추운 날엔 팬티스타킹을 신는 여자,
화가 나면 머리칼을 뎅강 자르는 여자,
팬티만은 백화점에서 사고 싶다는 여자,
쇼핑을 하면 그냥 행복하다는 여자,
실크스카프가 좋다는 여자,
영화를 보면 자주 우는 여자,
아이 하나는 꼭 낳고 싶다는 여자,
더러 멍청해지는 여자,
그 여자를 사랑했네.

그러나 가끔은 한 잎 나뭇잎처럼 위험한 가지 끝에 서서 햇볕을 받는 여자. 

***********

한 잎의 여자 3 /오규원

 

내 사랑하는 여자,
지금 창밖에서 태양에 반짝이고 있네.
나는 커피를 마시며 그녀를 보네.
커피 같은 여자,
그레뉼 같은 여자.
모카골드 같은 여자.
창밖의 모든 것은 반짝이며 뒤집히네,
뒤집히며 변하네,
그녀도 뒤집히며 엉덩이가 짝짝이가 되네.
오른쪽 엉덩이가 큰 여자,
내일이면 왼쪽 엉덩이가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 여자,
줄거리가 복잡한 여자,
소설 같은 여자,
표지 같은 여자,
봉투 같은 여자.
그녀를 나는 사랑했네.

자주 책 속 그녀가 꽂아놓은 한 잎 클로버 같은 여자,
잎이 세 개이기도 하고 네 개이기도 한 여자.

내 사랑하는 여자,
지금 창밖에 있네.
햇빛에는 반짝이는 여자,
비에는 젖거나 우산을 펴는 여자,
바람에는 눕는 여자,
누우면 돌처럼 깜깜한 여자.
창밖의 모두는 태양 밑에서 서 있거나 앉아 있네.
그녀도 앉아 있네.
앉을 때는 두 다리를 하나처럼 붙이는 여자,
가랑이 사이로는 다른 우주와 우주의 별을 잘 보여주지 않는 여자,
앉으면 앉은,
서면 선 여자인 여자,
밖에 있으면 밖인,
안에 있으면 안인 여자.
그녀를 나는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처럼 쬐그만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여자.

...........................................
낙화/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걸어가는 길(山 능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아등520  (0) 2011.09.04
불이토와 함께  (0) 2011.09.04
토북 519  (0) 2011.08.28
정오의 산책코스  (0) 2011.08.24
팥배나무 아래서의 휴식  (0) 2011.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