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위의 시/이성선
네팔의 한 무명 시인
그는 가난하여 설산만 쳐다보았습니다
책도 경전도 가질 수 없어
눈[目] 속에 설산을 경전으로 펼치고 살았습니다
그 빛으로 그는 결국 눈이 멀었습니다
멀리 걸을 수 없어 앉아만 있는 그를
작은 풀꽃들이 동무하여 말을 건네주고
흩어진 머리칼을 바람이 쓸어주고
세월이 와서 얼굴에 주름을 새겼습니다
그는 어느 곳도 가보지 못해
땅의 일에는 귀가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에서 몸 안으로 뿌리내린
설산의 말씀 하나가
광막하고 고요한 그의 내부를 가득 울렸습니다
울리는 소리마다 시로 뿌려져 그를 채웠습니다
그것을 시인은 그의 무릎 위에 썼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 무릎 위의 시를
달빛이 와서 읽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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