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詩論)들

문학적 언어로서의 詩語

능선 정동윤 2011. 9. 20. 07:03

문학적 언어로서의 詩語


사유(思惟) 즉 생각을 필자는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기”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일상의 언어(과학적 언어)와 시어(문학적 언어)는 다르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상의 언어란 사물이나 현상을 보통의 말로 표현해서 사물의 개념이나 자신의 의사를 전하면 되는 것이기에 보통 사람들의 말을 사용해야 말하려는 의도가 바르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이때 예사로운 말보다 특별한 말을 사용하게 되면 오히려 의사전달이 불분명하게 되어 혼란을 가져올 우려가 있게 됩니다. 전하는 자와 받는 자의 이해가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에 반하여 시어란 사물의 개념이나 자신의 의지를 무엇인가에 빗대어 표현하는 은유의 언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풍자나 해학, 역설이나 반어, 직유나 비유 또는 풍유, 과장이나 과소, 의성이나 의태, 의인이나 의물 등등의 수사법적 기능을 망라하여 가장 적절하게 개념이나 의지를 표현하는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그 표현에 있어서 서술적인 문어가 아니라 축약형의 문어로 전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과감한 절제 또는 대칭, 비약적인 전개 또는 발전, 또한 상상을 뛰어넘는 반전 등이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편의 시에는 발단이 있고 전개나 발전이 있으며 나중에는 종결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시도 있으니 모든 시를 이 틀에 가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기”란 다른 말로 하면 “새롭게 보도록 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먼저 어떤 것에 대한 새 이름을 부여하고 독자로 하여금 그 새 이름에 동의하도록 만드는 작업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구름”을 표현한다고 했을 때, “양털”이라는 말은 너무 낡고 색이 바랜 표현이지요? 그런데 “시루떡 한 조각”이라는 표현은 어떻습니까? 약간 우습지요? 그러나 배고픈 사람에게는 구름도 떡으로 보일 수 있답니다. “종이배”라면 어떨까요? 하늘을 강이나 바다로 여기고 구름을 종이배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요. 솜이불(형상의 관점), 배(동작의 관점), 아기 요람(포근함에 관련된 의미부여), 천사의 마차(허공에 존재하며 떠다닌다는 관점), 나의 꿈(지상을 초월하는 의미부여 – 하늘에 떠있는 나의 꿈), 섬(망망대해에 홀로 있는 의미) 등등 “구름”을 대체시킬 수 있는 시어는 한계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구름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아니므로 문학적 언어로는 수많은 표현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시어를 선택하느냐는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주제가 되느냐 아니면 소재가 되느냐에 따라서도 다르게 될 수 있습니다. 좀 더 설명하자면 하나는 “구름”을 주제로 삼아 다른 소재들을 활용하는 가운데 구름을 표현하는 시어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며, 다른 하나는 어떤 주제를 표현하는 중에 구름이 소재로 사용될 경우의 시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구름”이지만 어떤 위치에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시어의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쯤에서 앞에서 했던 말들을 정리하여 봅시다. 시를 읽고 좋아하는 차원을 넘어서 시를 빚는 수준에 다다르게 될 때에 우선 자신의 정체성이 정립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정체성이란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을 비롯하여 무엇 때문에 시를 빚으려 하는가에 대한 철저한 자기성찰에서 나온 답을 지니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음으로는 그 정체성으로 걸러진 또는 내면화 된 시각에서 말미암은 시상을 건져올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씨앗과 같다고 했지요. 이 씨앗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메모라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일렀습니다. 또 그 작은 씨앗이 발아하고 싹이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과정으로서 깊고 넓은 사유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때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지요. 그 결과로 표현할 시어는 문학적 언어로서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표현 즉 창조적 표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