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詩論)들

가장 적절한 詩語의 선택

능선 정동윤 2011. 9. 20. 07:04

가장 적절한 詩語의 선택


첫 씨앗을 얻은 후 그 시상을 붙들고 심사숙고 하는 가운데 시가 성장하게 됩니다. 이때 사유의 결과로 얻어지는 시어의 선택에 있어서 문장 속에 위치해야 할 언어는 단 하나라는 생각으로 언어를 선택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유사한 언어는 많지만 가장 적절한 언어는 단 하나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어떤 학자는 “제1의 언어”라고 명명하였더군요. 작가는 바로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시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이 과제를 두고 평생을 씨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적절한 시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할까요? 답은 이미 독자들이 아시고 있을 것입니다. 많은 시를 읽는 일은 당연한 것이라 말 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고 항상 우리말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틈만 있으면 국어사전과 친구를 해야 할 것입니다. 단어와 어휘력을 향상시켜야겠지요.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더하여 말 할 것이 있군요. 시를 읽을 때 번역시는 될수록 안보는 것이 더 낫습니다. 읽으시려면 원본을 구하여 보시든가 아니면 우리 시를 더 많이 읽으십시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글로 시를 빚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다시 어느 학자의 말을 인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시란 번역 불가능한 것이고 번역을 통해서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야말로 시다”라고 하였습니다. 현명하신 독자들은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셨겠지요? 바로 시어는 자신의 “모국어”를 사용할 때 가장 적절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최상의 시어를 만들어 쓸 수 있도록 우리말을 연마해야만 할 것입니다.

시를 빚다 보면 한 행 두 행 늘면서 연으로 발전하고 나중에는 그 연이 늘어납니다. 어떤 때는 얽혀있던 실 타래가 풀리는 듯 술술 잘 빚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때는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알맞은 단어를 생각해낼 수가 없어서 시 빚는 일을 잠시 멈추기도 합니다. 그렇게 멈춘 것이 몇 날이 흐르기도 하고 때로는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는 몇 달이 지나서 다시 빚은 것도 있답니다. 그러면 하나의 시를 빚을 때 행은 몇 개로 해야 하며 연은 또 몇 연으로 구성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단 한 행으로도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고 여러 연으로 구성되기도 하며 동일 제목의 연작시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행이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가 길든 짧든 “시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를 가장 적절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필자의 졸작을 인용해야 하겠군요. 타인의 시를 인용하여 이러쿵저러쿵 할만한 자질이 없는 사람이니 독자들의 이해를 바라면서 필자의 가장 최근에 빚은 시를 드러내기로 하겠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봄 입니다. 온 산야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정말 아름답고 활기차고 만물이 역동하며 꿈틀대는 것 같습니다. 특히 활짝 피는 꽃들을 노래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데 이를 어떻게 노래할까 사유하다가 다음의 시를 빚었습니다. 독자들의 감상을 바라면서 여기에 실어보겠습니다.



봄 꽃들은


봄 꽃들은 성질이
어찌나 불 같은지

잎이 불붙기 전에
꽃들부터 태운다



봄에는 여러 꽃들이 제각각 몸매를 자랑하며 피어납니다. 그런데 사계절 중에서 봄에 피는 꽃은 다른 계절에 피는 꽃과 확연하게 다른 점이 눈에 뜨입니다.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다른 계절의 꽃은 무성한 잎 속에서 꽃이 나오지만 봄에 피는 꽃은 대부분 꽃이 먼저 나오고 그 뒤를 이어서 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특징을 잡아 표현한 시가 위에서 인용한 필자의 졸작 “봄꽃들은” 입니다. 짧은 시이지만 내용은 여러 꽃들을 함축하고 있는 시라고 할 수 있겠지요. 개나리, 진달래, 목련, 산수유 등 우리 주변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들이 이처럼 잎보다 꽃을 먼저 피어내고 있답니다.

그러므로 많은 말이 필요한 시라면 당연히 여러 행이나 연으로 구성해야 할 것이고 짧게 함축하여 표현할 수 있다면 간단하게 표현하면 될 것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시어는 “함축적 언어”라는 진리를 망각하면 아니 됩니다. 시인의 평생을 두고 고뇌해야 할 작업이 “함축적 언어 만들기” 입니다. 시에 사용할 언어는 가장 적절한 “단 하나의 언어”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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