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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는 씨앗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 씨앗은 가꾸지 않으면 더 이상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의 씨앗으로 남아있을 뿐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씨앗이 싹을 틔우고 성장하여 詩라는 꽃을 피우기까지는 오로지 자신의 몫에 해당합니다. 누가 대신해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씨앗 하나를 얻는 일도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이제 이를 자라도록 하는 일이 더욱 중요합니다. 필자는 이 글에서 시 "빚는"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약간 의도적인 말을 사용한 것이랍니다. "빚는다"는 말은 음식을 만드는 것처럼 여러 가지 재료나 도구를 사용하여 보기 좋게, 먹기 좋게, 맛있게, 음식을 만들어내는 일을 이르는 말입니다. 시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재료를 사용하여 시를 빚어내는 작업이지요. 자신의 경험(직접경험), 다른 사람의 경험(간접경험) 또는 책이나 연극, 영화, 방송, 음악, 미술, 여행 등을 통하여 알거나 느끼고 있는 인생과 자연과 역사 등을 글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함축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 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씨앗(詩語) 하나를 얻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어를 가지고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심사숙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쉽고 간단하게 시가 빚어진다면 굳이 이런 글을 쓸 이유가 없겠지요. 이미 다른 시인들이 표현했던 글을 진부하게 답습할 생각이라면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기에 여기서는 그런 분들은 제외하고 글을 이어가겠습니다. 좋은 시는 거의 신선한 생각과 아울러서 기발한 시각이 나타나있습니다. 시어를 붙들고 많이 생각한 흔적이 묻어나며 일반인의 시선을 뛰어넘는 각도에서 대상(시에 표현된 소재 또는 주제)을 사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시어였던 한마디가 결국 시로 태어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사유를 거쳐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작가 자신도 알 수 없는 영역입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한없이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 뿐입니다. 여기서 "생각"이라 함은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기"라고 바꾸어 말 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사물도 보는 각도에 따라 그 모습이 바뀝니다. 음영의 차이는 물론이고 색상의 차이도 있으며 높이나 넓이 입체감이 모두 다르게 보입니다. 하물며 변화무쌍한 사유적 세계는 더 말 할 나위가 없겠지요. 그럼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르게 표현되는 것에 대하여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비가 내리는 것을 표현한다고 했을 때 시인은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기”를 시도합니다. 1.하늘은 창을 내리꽂듯이 땅에 비를 내리고 있었다. 2.비는 땅에서 솟아올라 하늘을 향하여 날아오르고 있었다(1.2는 하늘과 땅의 수직관계 또는 상하관계). 3.하늘은 땅에게 비를 빼앗기고 있었다. 4.하늘은 침략군처럼 비의 화살을 쏘고 있었다(3.4는 땅과 하늘의 세력관계). 5.비는 하늘의 전령, 사랑의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6.땅은 하늘의 입김을 빨아들이고 있었다(5는 비의 역할, 6은 비의 은유) 등등 얼마든지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어는 남의 것을 빌어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생산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언어라도 빌어 쓰면 그 생명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달이 뜬 밤에 구름이 흘러갈 때 마치 구름이 가는 것이 아니라 달이 유유히 흘러가는 듯이 보입니다. 이때 박목월 시인의 “구름에 달 가듯이”라는 시어를 차용하여 온다면 이 시는 그 순간 자신의 생명을 잃고 맙니다. 신선하고 기발한 시어는 거저 얻게 되는 언어가 아닙니다. 깊고 넓은 사유의 강을 건너야만 닿게 되는 포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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