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 함/김기택

능선 정동윤 2011. 9. 27. 08:06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 함/김기택

 

 

텔레비젼을 끄자

풀벌레 소리

어둠과 함께 방 안 가득 들어온다

어둠 속에서 들으니 벌레 소리들 환하다

별빛이 묻어 더 낭랑하다

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그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한다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드나드는

까맣고 좁은 통로들을 생각한다

그 통로의 끝에 두근거리며 매달린

여린 마음들을 생각한다

발뒤꿈치처럼 두꺼운 내 귀에 부딪쳤다가

되돌아간 소리들을 생각한다

브라운관이 뿜어낸 현란한 빛이

내 눈과 귀를 두껍게 채우는 동안

그 울음소리들은 수없이 나에게 왔다가

너무 단단한 벽에 놀라 되돌아 갔을 것이다

하루살이들처럼 전등에 부딪쳤다가

바닥에 새카맣게 떨어졌을 것이다

크게 밤공기 들어쉬니

허파 속으로 그 소리들이 들어온다

허파도 별빛이 묻어 조금은 환하다.

'좋아하는 시(詩 능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석남사에서/채필녀  (0) 2011.09.27
강물을 따라가며 울다/정호승  (0) 2011.09.27
상가에 모인 구두들/유흥준  (0) 2011.09.27
손공구/이면우  (0) 2011.09.27
보름달/노창선  (0) 2011.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