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詩 능선)

겨울 나그네/우대식

능선 정동윤 2011. 9. 29. 16:59

겨울 나그네/우대식

 

 

너구리 한 마리가 절뚝거리며 논길을 걸어가다

멈칫 나를 보고 선다

내가 걷는 만큼 그도 걷는다

그 평행의 보폭 가운데 외로운 영혼의 고단한 투신이 고여 있다

어디론가 투신하려는 절대의 흔들림

해거름에 그는 일생일대의 큰 싸움을 시작하는 중이다

시골 개들은 이빨 세우며 무리진다

넘어서지 말아야 할 어떠한 경계가 있음을 서로 잘 알고 잇다

직감이다

그가 털을 세운다

걸음을 멈추고 적들을 오랫동안 응시한다

나도 안다

지구의 한 켠을 걸어가는 겨울나그네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나도 안다

이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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