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자루의 생애/박남준
그건 마치 원하지 않는 죽음을 내리쳐야 하는
망나니의 칼이나 망나니 같다
도끼가 수직의 단말마를 가를 때마다
나무들은 속절없이 무너져 갔다
단단한 것이 죄였다
도끼자루가 되어야 되는 태생을 원망하기도
때로 몸을 비틀어 도끼날을 떨어뜨리기도
도끼는 그때마다 더욱 깊이 옥죄여와서
무자비해졌다
신라의 마의태자 목을 매던 옛날
제 몸에 벼락을 내려달라던
천년 은행나무가 생각났다
빌고 또 빌었다 낡고 또 낡아갔다
도끼자루가 부러졌다
부러진 도끼자루는 도끼날의 구멍 속에
깊이 박힌 채
도끼와 함께 불 속에 던져졌다
물푸레-물푸레- 살아서 세상의 모든 강물
푸른물 들이고 싶던 어린 물푸레나무는
아궁이 속 아주 잠시 푸른 불꽃이 되어서야
비로소 한 생애를 마쳤다
한 사내가 도끼자루를 구하러 톱을 들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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