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원을 사다/성선경
백화점에 들렀다 복숭아 통조림 한 박스를 샀다
이 복숭아 철에 웬 통조림이냐는 아내의 핀잔을 들으며
내 마음의 무릉도원 한 세트를 들고 신이 났다
아홉 살이던가 열 살
나는 홍역을 앓아 펄펄 열이 끓고
사흘 동안 미음 한 모금 넘기지 못하고
어머니는 설탕물을 끓여 숟가락으로 떠먹이고
먹는 족족 나는 게워내고
할머니 이러다 우리 장손 큰일 나겠다고
쌀됫박을 퍼다주고 사오신 복숭아 통조림
나는 꿈결인가 잠결인가 언뜻언뜻 도원을 거닐며
따먹은 기억이 생생한 부귀부록의 천도복숭아
아내는 한참동안 제철 과일 이야기를 바가지를 긁고
나는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 생각에 미리 즐겁고
나는 몽유도원 한 세트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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