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떠난 뒤
산능선
금방 건져 올린 아침 해를 데리고
무아의 산길을 걷노라면
현실 통증은 어지간히 가시지만
한 모금 알콜로 마취시키지 않으면
간헐적으로 현실에 기습 당한다.
하산 후,
유쾌한 뒷풀이를 마치고
상 위에 늘어 선
빈 술병들의 배웅을 받으며
붉은 얼굴로 배낭을 챙기고
풀어 진 등산화 끈을 다시 조이면
시대의 그늘이 스며든 등산모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뒷풀이가 끝난 뒤에도
나만의 뒷풀이는 남아 있었다
산을 좋아하지만
산에 오는 사람을 더 좋아하고부터
뒷풀이 술이 늘었다.
술병이 점점 많아지는 것은
위로 받고 싶은 일도 많아진 것이다.
뿔뿔이 떠난 뒤에 시작되는
나만의 뒷풀이는
바람이 쓸고 간 빈 뜰의
한 그루 나무처럼 울적하다.
반성하는 자세로 과음을 평가하고
만남에서 헤어짐까지
토막 난 그림과 희미한 그림을 짜맞추며
산행을 골똘히 반추하고
알콜로 적셔진 가슴을 말린다
알콜에 묻은 공허감까지 증발되어야
나의 등산 후기는 겨우 입력된다.
오랫동안 마르지 않을 때도 종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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