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읽기

[부활]정신적 부활을 통한 진정한 인간성 회복

능선 정동윤 2014. 2. 20. 19:42

[고전 소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만년에 완성한 역작으로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리나>와 더불어 톨스토이 3대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한 귀족과 창녀가 정신적으로 부활하는 과정을 통해, 당대 러시아의 불합리한 사회 구조에 비판을 가하면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근본으로 하는 톨스토이의 사상을 담고 있다.

[저자] 톨스토이 (1828~1910)

1828년 러시아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났다. 1844년 카잔 대학교에 입학하나 대학 교육에 실망하여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삼 년간 방탕한 생활에 빠진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로 가 군대에서 근무했다. 이듬해 잡지 <동시대인>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라냐>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하여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린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게 된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그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또한 술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을 하기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으로 인한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가출한 뒤 폐렴을 앓다가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영면하였다.

 

[부활]정신적 부활을 통한 진정한 인간성 회복
유럽에 비해 중세의 구습을 벗어나지 못한 19세기 러시아, 귀족중심의 보수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던 시대에 귀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생활을 하던 농민들이나 하층계급의 사람들의 삶을 통해 귀족인 주인공 네훌류도프는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봄으로써 자신이 살아온 삶속에서 격는 갈등과 후회를 하게 된다.
시대적 격변기에 러시아의 귀족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더 공공히 하기 위하여 하층민들에게 가하는 위선과 독선속에 살고 있었다.
주인 네훌류도프는 양녀이자 하녀였던 카츄사의 인생을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짓밟은 것을 뒤 늦에 후회하며 죄책감이 동반된 사랑을 하게 되지만 그런 네휴룰도프의 진심을 알게된 카츄사는 그를 사랑하지만 또 다른 사랑으로 표현하고 그의 곁을  떠난다-주인공들의 삶을 통하여 톨스토이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정신적 부활을 통한 인간의 삶을 표현하였다.  

 
[부활]정신적 부활을 통한 진정한 인간성 회복
소설의 배경이 된 시대는 유럽의 새로운 사조와 혁명의 움지임이 한창이던 유럽에 비해서 아직 중세의 구습을 벗어나지 못한 19세기 러시아로, 귀족중심의 보수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던 때이다. 특히 중세 봉건주의의 사회구조가 서서히 변화하고, 농노해방이 일어나던 시기였으나, 여전히 귀족들은 자신들의 기득권, 그리고 중세부터 물려 받은 재산으로 방탕한 생황을 누리고 있었다. 특히 유럽의 산업혁명이 전파되어 산업화된 러시아 경제는 자본가 계층과 지식은 계층을 중심으로 부를 축적하였고, 한편으로 시민혁명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은 러시아의 귀족들은 그러한 부의 축적을 통해 더욱 그들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였다. 그러한 격변기 러시아의 시대상황 속에서 가난한 농민들은 철저히 소외받고, 경제적으로도 독립하지 못한 채 귀족들에게 예속, 착취되어, 사회적으로 모순된 체제하에서 억울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한 사회적 모순과 피폐한 농민들의 모습을 보며, 변화를 꿈꾸던 톨스토이는 "부활"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진정한 인간성의 회복을 갈망하였던 것 같다.
소설 부활의 주인공 네흘류도프는 당시 러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귀족집안의 자재로 살아가고 있었고, 어느날 이모님 댁의 하녀 카츄사를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그저 한창 젊은 사내의 욕구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여기고 처녀성을 범한다. 그는 그러한 자신의 행동을 전혀 의식하지도 않은채 귀족가문의 아들로 자랐고, 반면 네흘류도프에게 짓밟힌 카츄샤는 주인 집에서도 쫓겨나고, 결국은 사창가의 창녀로 밑바닥 생활을 하게 되고 결국 살인사건에 연류되어, 재판장에서 네흘류도프를 만나게 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네흘류도프는 자신의 한 순간의 행동이 한 여인의 운명을 어긋나게 하였고, 이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그녀을 구원하려고 한다.
작가 톨스토이는 이러한 주인공의 죄책감을 느끼는 과정과 카츄샤를 도와주려는 그 모습을 통해,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무감각하게 남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고, 심지어 남에게 깊은 상처를 주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깊은 내면의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설교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이처럼 우리 내면과 영혼, 양심, 그리고 정신적인 교화를 통해 우리의 인간성의 회복이야 말로 진정한 "부활"이라고 삭막하고 각박하게 오늘을 살아가능 우리들에게도 100여년도 지난 지금에도 생생하게 말해 주고 있는 듯 하다.
 
[부활]정신적 부활을 통한 진정한 인간성 회복
[문]"부활"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정신적 교화를  "부활" 집필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비추어 설명해 보세요.

[답]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812년 러시아는 알렉산드로1세가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을 좌절시키고  러시아를 유럽 최대의 강대국으로 부상시켰으나,내부적으로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국은 귀족 중심의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장악되었다.
1825년 알렉산드르 1세의 뒤를 이어 니콜라이 1세가 즉위하였으나, 제위식날 일어난 비판적 지식인들의 반란모의 인해 니콜라이 1세는 더욱 보수적인 정책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크림 전쟁에서 영국, 프랑스, 터키 연합군에게 패하게 되면서 러시아 사회의 문제점이 다시 부각되었고, 이후 즉위한 알렉산드르 2세는 1861년에 농노해방등 개혁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농토를 떠난 농민층은  더욱 피폐해 가는 반면 산업화로 인하여 부유해진 상류층과 귀족층의 사치,부정과 부패로 얼룩지게 되었다.
그후 과격 혁명파에 의하여 알렉산드르 2세를 암살당하면서 다시 보수주의로 회귀하는 등 격변의 시기가 이어졌으며, 이후 1904년에 러일 전쟁의 패배로 민중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1905년 1월에 `피의 일요일' 사건이 일어나게 되어 혁명의 기운이 무르익게 되었다.

부활은 이러한 러시아의 혼란기에 귀족청년 네흘류도프가 순결한 처녀 카츄사를 유린한 다음 기억에서 마져 지워버렸으나, 이후 창녀의 길로 빠져든 그녀를 재판정에서 다시 만나면서 자신과 자신이 속한 상류층의 부정과 부패에 대해 통절한 반성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영혼의 부활을 경험하게 된다는 줄거리이다.
이 소설에서  톨스토이는  타락한 기득권층의 일원인 네흘류도프가 영혼의 위선과 사악함을  회개하고 상류 계급의 지식인으로서 윤리적으로 재무장하여 도덕적 의무와 책임이행을 실천하게 한다. 그가 회개하여 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에 의해서 삶의 밑바닥까지 내던져 버렸던 카튜사를 부활시켰듯이 사회 지도층의 회개와 갱생은 러시아사회전체의 회개와  갱생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개인으로서 네흘류도프는 자신의 귀족이라는 지위, 부, 위신 등 사회적 특권을 버리고 자기성찰을 통하여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된다. 그의 진지한 모습에서, 즉 타락한 인간이 회개와 자기성찰을 통하여 인간구원의 길을  찾는 다는 것이 바로 톨스토이가 전하고자 했던 부활의 참된 의미라고 생각한다.  
또한 톨스토이는 이소설을 통하여 격변기의 제정 러시아 사회의 여러모습, 즉 귀족 상류층 사회의 사치와 부정부패, 하층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모습을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사실주의 소설가로서의 진면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부활]정신적 부활을 통한 진정한 인간성 회복
가난한 일반 농민들의 힘든 생활속에 부유한 귀족들은 자신들의 부와 생활의 안락함 속에서 그 생활에 안주하면서 서민 대중의 고달픔에 무관심하고 사회적 모순된 제도속에 희생당하는 그들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톨스토이는 기독교적인 사랑의 마음으로 어려운이들을 같은 인간으로 불평등한 모순을 시정하고 그들에게 따듯한 인간의 마음을 보내며 사회적 모순을 시정하려고 하였다 또한 그들의 입3장에 서서 억울하고 힘든 상황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시정하려는 마음을 가졌다
 
[부활]정신적 부활을 통한 진정한 인간성 회복
[부활]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정신적 교화를  [부활] 집필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비추어 설명해 보세요.

톨스토이가 부활을 집필하였던 19세기에 러시아는 알렉산드로1세가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을 좌절시키고  러시아를 유럽 최대의 강대국으로 부상시켰으나,내부적으로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국은 귀족 중심의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장악되었다.

1825년 알렉산드르 1세의 뒤를 이어 니콜라이 1세가 즉위하였으나, 제위식날 일어난 비판적 지식인들의 반란모의 인해 니콜라이 1세는 더욱 보수적인 정책을 시행하였다.

러시아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을 좌절시키고 유럽 최대의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요한 경제적 변화를 겪는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귀족 중심의 보수주의자들에 의해서 장악되었다. 산업화로 인하여 부유해진 상류층과 귀족층은 사치 부정 부패로 얼룩지고 농민은 더더욱 피폐해져 가는 극도의 혼란기를 겪게 된다.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당한 후 러시아는 정치면에서 절대주의 군주체제를 강화하는 등 보수주의 회귀를 시도하였으나 극도의 양극화된 사회문제로 체제위기가 고조되었다. 1904년 러일전쟁의 패배로 민중이 불만이 고조되고, 이에 자극받아 일어난 1905년 1월의 노동자들의 혁명은 차르 체제를 급속히 약화시켰으며, 1917년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부활]정신적 부활을 통한 진정한 인간성 회복
톨스토이가 부활을 집필하였던 19세기에 러시아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을 좌절시키고 유럽 최대의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요한 경제적 변화를 겪는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귀족 중심의 보수주의자들에 의해서 장악되었다. 산업화로 인하여 부유해진 상류층과 귀족층은 사치 부정 부패로 얼룩지고 농민은 더더욱 피폐해져 가는 극도의 혼란기를 겪게 된다.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당한 후 러시아는 정치면에서 절대주의 군주체제를 강화하는 등 보수주의 회귀를 시도하였으나 극도의 양극화된 사회문제로 체제위기가 고조되었다. 1904년 러일전쟁의 패배로 민중이 불만이 고조되고, 이에 자극받아 일어난 1905년 1월의 노동자들의 혁명은 차르 체제를 급속히 약화시켰으며, 1917년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부활은 개인적 차원 및 사회적 차원의 단죄와 심판, 용서와 화해등의 대립되는 요소를 복합적으로 엮어내는 구조의 소설이다. 즉 카츄샤는 사회 제도가 만들어놓은 공식적인 절차인 재판 및 유배를 통해 네흘류도프 등의 도움으로 피동적으로 단죄와 심판 용서와 화해의 과정을 겪어 나가는 반면 네흘류도프는 개인적인 이해관계 하에서 비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스스로 용서받고자 하는 하는 자기성찰과 인간의 본질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즉 카츄샤는 상인의 독살사건이라는 재판 과정을 통해 비합리적인 단죄와 심판을 받게 되지만 후에 누명이 벗겨져 사면된다. 그에 비해 네흘류도프가 겪는 단죄와 심판은 눈에 띄게 이루어지지 않으며 보다 내면적인 차원에서 전개된다. 카츄샤의 타락한 모습과 처음에 보이는 냉소적인 반응에 스스로 고통을 느끼는 것이 곧 네흘류도프가 겪는 단죄와 심판이며, 후에 카츄샤가 보이는 눈물은 그에 대한 용서와 화해의 표상이다.

톨스토이는 부활을 통해서 격변기의 제정 러시아 사회의 귀족 상류층의 사치와 부정부패, 하층민들의 피페한 삶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성 회복의 자기 주장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부활]정신적 부활을 통한 진정한 인간성 회복
톨스토이 부활의 집필배경은 당시 정통파 기독교 농민운동 단체인 두호보르파의 캐나다 망명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집필되었다고 한다. 이 단체는 병역을 거부하고 정부의 정책에 불복하는 것 때문에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게 되었고 캐나다로 망명을 가게 된다. 이를 지지하는 톨스토이는 부활에서 타락하고 부정한 귀족, 재판관등 지배계층의 모순을 비판하고 주인공 네흘리됴프와 창녀 카츄샤의 사랑을 통한 시대적인 혁신을 이루고자 시도했다. 명망있는 귀족가문의 전도양양한 귀족청년 네흘리도프는 젊은 청년 장교시절에 자신의 고모집을 방문해서 고모의 수양딸로 생활하고 있던 하녀 마드리드(카츄샤)를 순결을 빼았고 돈을 내던지며 자존감을 짓밟았다. 임신하게된 카츄샤는 그 집에서 내쫓겨나서 방황하고 타락한 삶을 살다가 마침내 여관집 돈많은 주인의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연루 되었다. 때마침 배심원으로 참여한 네흘리됴프는 카츄샤를 알아보고 처녀 때의 그녀의 순결함과 착한 심성으로는 도무지 살인사건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어서 그녀의 무죄를 확신했으나 당시의 타락하고 안일한 재판관과 귀족은 그녀를 시베리아 유형을 보게개 된다. 네흘리됴프는 황제에게 상소하며 그녀를 구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했고 카츄샤와의 결혼까지도 진지하게 고려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통하여 죄악의 정화를 찾는다면 자신은 결코 따라가지 않겠다고 말하며 혁명가 시몬손을 결혼하기로 한다. 네흘리됴프의 타락과 도덕성의 회복을 부활로 볼 수 있다는 해설을 마무리하면서 글쓰기를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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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정신적 부활을 통한 진정한 인간성 회복
톨스토이가 <부활>을 저술했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으로 러시아 장교들이 파리로 입성하여 민주적이고 발전한 정치상을 접하였고 이에 따라 1825년 러시아 혁명가들이 데카브리스트의 반란을 일으켰다.
1861년 농노해방령 선포로 귀족 계급과 농노계층의 사회구조가 붕괴되고 산업자본주의가 러시아에 형성되었으며 사회계층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1890년대에는 궁핍과 기아문제가 발생되어 톨스토이는 나름 무료급식소도 운영하기도 하였으나 귀족계급의 사치스러움과 부패는 극에 이르렀다. 농민들이 고통을 받는 것은 농민에게서 토지를 빼앗은 상황 때문이며 민중들의 삶을 묘사하고 민중들의 아름다운 언어표현에 매달리게 되었다.
19세기 말 러시아의 러시아 사회의 타락한 상류층 사회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날카롭게 폭로하고 기득권층의 타락한 인간 영혼의 부활을 추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톨스토이는 부지런히 육체를 움직여 노동하며 선행을 실천하고 신에게 깊이 의지하는 남루한 일상 속에서 진정한 행복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작인들에게 땅을 나눠 주었고 그들과 더불어 노동하고 기도했으며 조그만 간이역에서 쓸쓸히 생을 마쳤습니다.
 
[부활]정신적 부활을 통한 진정한 인간성 회복
[문]"부활"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정신적 교화를  "부활" 집필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비추어 설명해 보세요.

[답]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812년 러시아는 알렉산드로1세가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을 좌절시키고  러시아를 유럽 최대의 강대국으로 부상시켰으나,내부적으로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국은 귀족 중심의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장악되었다.
1825년 알렉산드르 1세의 뒤를 이어 니콜라이 1세가 즉위하였으나, 제위식날 일어난 비판적 지식인들의 반란모의 인해 니콜라이 1세는 더욱 보수적인 정책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크림 전쟁에서 영국, 프랑스, 터키 연합군에게 패하게 되면서 러시아 사회의 문제점이 다시 부각되었고, 이후 즉위한 알렉산드르 2세는 1861년에 농노해방등 개혁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농토를 떠난 농민층은  더욱 피폐해 가는 반면 산업화로 인하여 부유해진 상류층과 귀족층의 사치,부정과 부패로 얼룩지게 되었다.
그후 과격 혁명파에 의하여 알렉산드르 2세를 암살당하면서 다시 보수주의로 회귀하는 등 격변의 시기가 이어졌으며, 이후 1904년에 러일 전쟁의 패배로 민중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1905년 1월에 `피의 일요일' 사건이 일어나게 되어 혁명의 기운이 무르익게 되었다.

부활은 이러한 러시아의 혼란기에 귀족청년 네흘류도프가 순결한 처녀 카츄사를 유린한 다음 기억에서 마져 지워뱌렸으나, 이후 창녀의 길로 빠져든 그녀를 재판정에서 다시 만나면서 자신과 자신이 속한 상류층의 부정과 부패에 대해 통절한 반성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영혼의 부활을 경험하게 된다는 줄거리이다.
이 소설에서  톨스토이는  타락한 기득권층의 일원인 네흘류도프가 영혼의 위선과 사악함을  회개하고 상류 계급의 지식인으로서 윤리적으로 재무장하여 도덕적 의무와 책임이행을 실천하게 한다. 그가 회개하여 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에 의해서 삶의 밑바닥까지 내던져 버렸던 카튜사를 부활시켰듯이 사회 지도층의 회개와 갱생은 러시아사회전체의 회개와  갱생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개인으로서 네흘류도프는 자신의 귀족이라는 지위, 부, 위신 등 사회적 특권을 버리고 자기성찰을 통하여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된다. 그의 진지한 모습에서, 즉 타락한 인간이 회개와 자기성찰을 통하여 인간구원의 길을  찾는 다는 것이 바로 톨스토이가 전하고자 했던 부활의 참된 의미라고 생각한다.  
또한 톨스토이는 이소설을 통하여 격변기의 제정 러시아 사회의 여러모습, 즉 귀족 상류층 사회의 사치와 부정부패, 하층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모습을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사실주의 소설가로서의 진면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부활]정신적 부활을 통한 진정한 인간성 회복
톨스토이가 <부활>을 집필 할 당시 정치 사회적 환경은 제정 러시아가 농노를 해방했던 시기이다.
러시아가 투르크제국 내에 있는 정교회 신자들에 대한 보호권을 주장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일어난 크림전쟁은 크림반도를 중심으로 러시아가 연합군인 영국, 프랑스, 오스만 터키 제국과 벌인 전쟁이었다. 크림전쟁 중에서도 톨스토이가 참가한 세바스토폴 전투는 가장 치열했던 격전으로 유명하다. 그때의 전쟁 경험은 전쟁을 테마로 여러 작품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전쟁이 끝난 후 1856년, 톨스토이는 유럽여행을 마치고 야스나야 폴라냐에 돌아와 정착했다. 그는 농노들과 일하면서 노동의 중요성을 깨닫고, 농노 자녀들의 교육, 영지관리에 전념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했으나 1878년을 기점으로 정신적 위기를 맞아 자기 자신의 모든 예술을 부정하면서 삶과 죽음의 진실한 의미를 찾아 방황했다. 그의 신념은 기독교적 무정부주의로 볼 수 있는데, 일체의 정부형태나 사유재산과 제도로서의 교회를 부정했다. 특히 그가 추구한 비폭력 무저항주의는 전세계로 유포돼 그 추종자들이 끊임없이 영지로 찾아들었다. 이 때문에 그는 인류의 양심으로 추앙 받으면서 러시아 정부와 교회의 탄압을 받아 1901년에는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부활>작품에서 들어내고자 하는 것은 순순한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이 작품에 나타난 철학적 세계관 역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독립된 철학적 세계관의 장은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도덕철학이 작품 전체에 배어 있다. 이 철학은 낙관적이 아니라 비관적이고, 세속적이기보다는 청교도적이다. 이 작품 속에서 작가는 네푸류백작의 카츄사의 처녀성을 뺏았고 그로 인하여 그녀가 불행에 빠지는 상황에서 목가적인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인간의 죄는 법적으로 처벌하지 않아도 신의 뜻에 따라 저절로 심판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죄를 회개하기 위한 참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