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소개]
독일 문학을 세계문학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가 괴테의 비극적 소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샤를로테 부프에 대한 괴테 자신의 짝사랑과 그의 친구 카를 빌헬름 예루잘렘의 죽음을 그린 작품이다. 사회에 융화하지 못하고 일상적인 삶에 적응하는 데 서투른 젊은 예술가의 마음을 감각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유럽 문학에 등장한 최초의 위대한 비극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계몽주의로 대변되는 이성 만능의 조류에 감성의 우위를 운위하며 새로운 사랑의 방식을 창출하고, 정체된 시민 사회구조를 개인의 주체성의 시각에서 비판한다.
[저자]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1832)
174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태어났다. 교육에 열정적인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그리스어, 라틴어 등 다양한 언어를 배웠고 그리스 로마의 고전 문학과 성경 등을 읽으며 자랐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문학과 미술 분야에도 큰 흥미와 소질을 보였다. 1770년 법학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 다니던 시기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에 눈을 떴으며, 혁신적 문학 운동인 ‘질풍노도 운동’의 계기를 마련했다. 1772년 베츨라에 있는 제국대법원에서 법관 시보로 일하면서 알게 된 샤를로테 부프와 사랑에 빠졌는데, 이때의 경험을 소설로 옮긴 것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1775년에는 칼 아우구스트 공작의 초청으로 바이마르 공국으로 가서 교육, 재정, 건설, 군사 등 여러 분야의 행정에 참여하며 10년 남짓 국정을 이끌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고, 식물학, 광물학 등 과학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1794년 독일 문학계의 또 다른 거장 프리드리히 실러를 만나 돈독한 우정을 나누며 독일 바이마르 고전주의를 꽃피웠다. 1831년 필생의 대작 『파우스트』를 탈고하고 이듬해인 1832년 83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스물다섯 살의 청년 괴테가 폭풍처럼 써내려간 소설로 당시 젊은 세대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출간되자마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작품 속에서 베르테르가 즐겨 입던 노란색 셔츠와 푸른색 연미복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베르테르 효과’라는 모방 자살 신드롬까지 생겨났다. 이 작품으로 괴테는 문단에서 이름을 떨쳤으며, 질풍노도 문학운동의 중심인물로서 활발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젊은 베르터의 슬픔] 청년 괴테가 말하는 열정과 고통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비극적 주인공 베르터는 자의식이 당당한 질풍노도적 반항아로 비쳐지고 있다. 하지만 베르터는 사회적 약자, 특히 어린이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표현하고 있다. 이전에 어린이는 단순히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유치한 단계를 의미하였지만, 18세기부터 어린이는 독자적 성격을 가진 독립적 단계라는 의식이 확산되었고, 어린이에 대한 베르터의 인식은 괴테가 이러한 시대의 발전을 빠르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자기보다 하층 사람들에게 우월감을 과시하지 않는 베르터는 상층인 귀족에 대해서도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다. 이는 약자에게 진심으로 친절할 수 있는 사람은 강자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베르터를 통해 표현한 괴테는 낡은 귀족사회를 대하는 당당함을 보여준 것이었다.
베르터의 당당함은 자신의 내면에 대한 자신감, 즉 귀족과 달리 마음도 순수하고 교양도 풍부하다는 정신적인 면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는 정신적인 측면에 그칠 뿐이었고, 귀족에게 수모를 겪는 베르터를 통해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모습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비극적 주인공 베르터는 자의식이 당당한 질풍노도적 반항아로 비쳐지고 있다. 하지만 베르터는 사회적 약자, 특히 어린이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표현하고 있다. 이전에 어린이는 단순히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유치한 단계를 의미하였지만, 18세기부터 어린이는 독자적 성격을 가진 독립적 단계라는 의식이 확산되었고, 어린이에 대한 베르터의 인식은 괴테가 이러한 시대의 발전을 빠르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자기보다 하층 사람들에게 우월감을 과시하지 않는 베르터는 상층인 귀족에 대해서도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다. 이는 약자에게 진심으로 친절할 수 있는 사람은 강자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베르터를 통해 표현한 괴테는 낡은 귀족사회를 대하는 당당함을 보여준 것이었다.
베르터의 당당함은 자신의 내면에 대한 자신감, 즉 귀족과 달리 마음도 순수하고 교양도 풍부하다는 정신적인 면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는 정신적인 측면에 그칠 뿐이었고, 귀족에게 수모를 겪는 베르터를 통해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모습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비극적 주인공 베르터는 자의식이 당당한 질풍노도적 반항아로 비쳐지고 있다. 하지만 베르터는 사회적 약자, 특히 어린이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표현하고 있다. 이전에 어린이는 단순히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유치한 단계를 의미하였지만, 18세기부터 어린이는 독자적 성격을 가진 독립적 단계라는 의식이 확산되었고, 어린이에 대한 베르터의 인식은 괴테가 이러한 시대의 발전을 빠르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자기보다 하층 사람들에게 우월감을 과시하지 않는 베르터는 상층인 귀족에 대해서도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다. 이는 약자에게 진심으로 친절할 수 있는 사람은 강자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베르터를 통해 표현한 괴테는 낡은 귀족사회를 대하는 당당함을 보여준 것이었다.
베르터의 당당함은 자신의 내면에 대한 자신감, 즉 귀족과 달리 마음도 순수하고 교양도 풍부하다는 정신적인 면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는 정신적인 측면에 그칠 뿐이었고, 귀족에게 수모를 겪는 베르터를 통해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모습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18세기의 지고지순했던 사랑에 비하여 현대사회의 사랑이랑 냄비사랑이라고 도 말할수 있다, 너무 문란해진 성문화와 난잡한 지구종말론을 일깨울수 있는 듯한 사회적인 문란성이 많은 비교가 된다
베르테이 효과로 이작품의 내용을 이미지로 새긴 찻잔들은 베르터 찻잔으로 불티나게 팔리고 푸른 연미복과 노랑 바지가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 작품으로 인한 부작용 또한 심각했다. 이혼과 자살이 증가하였던 것이다. 특히 자살에 대한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는데, 이는 실제 자살한 경우가 많았던 것 보다 이 작품의 영향력이 당시 워낙 강하게 여겨지다 보니 현상이 과장되면서 부풀어 오른 측면도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몇해전 유명연예인의 자살을 모방하는 자살사건 많이 일어났다
OECD가입 국가중에서 자살율 1위를 기록하는 나라도 우리나라여서 여전히 심각한 사회문제점을 안고있다
늘 그시대를 대변하는 우상을 모방하고 살아가면서 또 새로운 사회적 변수를 작용하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청년 괴테가 말하는 열정과 고통
어려서부터 문학적 소질을 보이며, 13세에 시집을 낼 정도였으나, 아버지의 뜻으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여, 졸업 후 고향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였다. 하지만, 괴테는 법률보다는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20대 중반에 저술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큰 인기를 끌면서 유명작가로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1775년 괴테는 고향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바이마르에 정착하게 되며, 바이마르 궁정의 고문을 맡게 되고, 다양한 개혁활동을 통해 관료로서 신임을 얻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갈등하게 된다.
10년 후 괴테는 3년여의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게 되고, 이때의 경험은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 시기에 고전주의적 예술관이 확립되었고, 옛 친구들과도 결별하며 긴 고독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당대 독일 문학의 거장 실러와 교류하게 되고, 문학적 교감을 이루며 우정을 쌓아나갔고, 급기야 실러가 바이마르로 이주해오게 되었다. 둘은 함께 작품을 쓰기도 하고, 서로의 작품을 평하고 집필을 독려해 나갔으나, 1805년 실러가 46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큰 충격에 빠졌다. 이후 파우스트 제1부가 쓰여진 1808년부터 20여 년간 괴테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등 많은 문학작품을 남겼다.
1825년 괴테는 파우스트 제2부의 집필을 시작해 6년 후 마쳤으나, 원고를 봉인한 뒤 자신의 사후에 발표하도록 하였으며, 다음해인 1832년 괴테는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문학적 동반자인 실러의 곁에 남게 되었다. 괴테의 작품들은 이후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시들은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물레질하는 그레첸, 마왕, 들장미 등의 독일 가곡의 대표작으로 남았으며, 베토벤의 서곡은 괴테의 희곡 에그몬트에 붙인 것이었다. 비록 괴테의 바램처럼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파우스트를 오페라로 작곡해주지는 않았지만, 그의 사후에 베를리오즈와 구노가 파우스트를 오페라로 옮겨 좋은 평을 얻었다.
이처럼 괴테는 독일 뿐 아니라 세계의 문학 및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 대문호로서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ㅇ베르터 열풍 -청년 괴테를 유명작가로 만든 베스트셀러 -베스트셀러(초판 30쇄, 개정판 25쇼돌파) -영국,프랑스.스웨덴,덴마크,러시아 등에서도 변역되어 인기 -각지에서 해적판도 등장 -오페라도 만들어짐 -소설의 인기와 더불어 베르터와 로테의 이미지가 새로운 문화의 아미콘 처럼 떠올랐던 현상 -베르트 찻잔(마이센 도자기 : 베르트 세트가 나올정도로 인기 -패션의 변화 : 18세기 초 프렌치 패션, 18세기 후반 베르트 패션 -베르트 열풍이 모방자살로 나타나기도 했다는 것은 전설 -배르트 열풍과 베르트 효과를 구분할 필요 ㅇ베르트 효과 : 언론에 유명인사가 자살이 보도될 경우 인반인의 자살률에도 영향을 미치는 현상 -괴테 시대에도 이 소설은 많은 지식인들에게도 자살이라는 현상에 대해 생각하게 만듦 ㅇ베르터의 죽음에 대한 당대 지식인들의 반응 -자살을 권유하는 소설 이라고 간주하고 격하게 비판 -자살을 권유한다고 보지는 않지만 자살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조금 더 강하게 표현해줄 것을 주문 -괴테는 자살에 대한 담론 자체를 금기시하는 것이 현상의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안는 다고 생각 -작품의 구조도 죽어가는 베르터의 내면을 클로즈업하는 방향으로 짜여져있다
우리시대의 베르터:
-. 괴테가 예루잘렘의 사건에서 시대 전체의 문제를 봤듯이 이 소설의 주인공에 대한 논의를 우리시대에 적용해 볼 필요가 있음 우리시대에도 베르터와 같은 영혼들은 많기 때문
-. 그들의 슬픔이나 무기력감을 정시적 나약함의 결과라고 매도한 것은 위험
-. 괴테가 베르터의 내면을 전면적으로 클로즈업 시켰듯이 일단은 그 문제 자체에 집중해서 들여다보고 공감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 베르터의 열풍과 베르터 효가를 구분할 필요 있음
-. 문제점은 베르터 열풍의 모방자살로 나타나기도 함(수십명 수백명이 죽었다고 하는 것은 전설)
-. 베르터 효과 : 언론에 유명인사의 자살이 보도될 경우 일반인의 자살률에도 영향을 미치는 현상
-. 베르터 열풍 : 소설의 인기와 더불어 베르터와 로테의 이미지가 새로운 문화의 아이콘처럼 떠올랐던 현상
-. 생각할 거리 : 내면의 순수함과 사회적 요구
분석
-. 베르터는 떠나고 괴테는 남았다 (나는 머물도록 자네는 떠나도록 선택되어 자네는 나보다 먼저 갔구나 그러나 자네가 잃은 것이 많지는 않네)
<젊은 베르터의 슬픔>
18세기 독일이란 나라에서 대문호 괴테가 집필한 첫번째 작품으로 친구,사랑등을 갈구하면서 암울한 시대를 평가한 작품이라 본다.
<집필배경>
청년 괴테가 젊은 베르터의 슬픔을 저술하게 된 요인은 크게 샤를로테 부프와의 만남과 친구인 예루잘렘의 자살로 볼 수 있다.
베츨라에서 활동하던 고위 관리의 열 여섯 형제 자매 중 둘째 딸인 샤를로테 부프는 동생들을 잘 돌봐주는 따뜻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괴테가 샤를로테 부프를 처음 만났던 순간도 언니의 약혼 축하 무도회에서 동생들에게 빵을 잘라주고 있었다. 하지만, 샤를로테 부프는 괴테 자신의 친구인 케스트너의 약혼녀였고, 첫눈에 반한 괴테는 그녀를 짝사랑 하게 된다. 이런 샤를로테 부프와의 만남은 플라토닉 러브의 추억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으나, 결정적으로 친구였던 예루잘렘의 자살로 인해 젊은 베르터의 슬픔이라는 괴테의 대작은 탄생하게 된다.
예루잘렘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사관의 서기관이었으나, 시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귀족 상관들의 무시를 받아왔으며, 유부녀와의 사랑으로 고뇌에 빠져 있었다.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가 반복되면서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때 사용했던 권총은 샤를로테의 약혼자 케스트너에게 빌린 것이라고 한다.
괴테는 예루잘렘의 비극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하게 된다. 당시 대다수의 시민계급 젊은이들은 귀족계급처럼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직업을 선택할 가능성을 가지지 못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우울한 정서에 빠져들기 쉬었던 환경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괴테 자신의 경험을 모티브로 하여 젊은 베르터의 슬픔을 집필하게 되었고, 당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 작품으로 괴테는 일약 유명작가가 되었고,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지역에서도 번역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젊은 베르터의 슬픔] 청년 괴테가 말하는 열정과 고통
젊은 베르테의 슬픔을 읽으면서 현대 시대의 문제점에 대해 한번 고민을 해 본다.
지난 여름 퇴근을 하면서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30대 청년 얘기를 들었다. 음악을 하는 청년이 아버지와 싸우다가 창문으로 뛰어내려 부모의 가슴을 찌르는 엄청난 짐을 두고 사라졌다.
반면 베르테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봄 부터 그 다음해 겨울까지 참으로 다양한 자신과의 진지한 고민을 통해 아름다움과 슬픔을 아우르는 삶을 진지하게 산 사람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신중한 고민을 통해 죽음이라는 것을 선택하는 반면 우리시대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정신적 성장을 위한 환경이 없는 상황에서 많은 젊은이가 즉흥적으로 삶을 끊는 경우가 발생한다.
내면의 순수와 사회의 요구, 이 상황은 현대사회든 과거 사회든 마찬가지일것이다.
우리의 젊은 청소년들이 삶을 고민하고 그들의 내면적 성숙을 스스로 겪고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과정, 시간적 여유가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젊은 베르터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현대 사회에서도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안식처를...
나의 자식들한테라도 그런 여유를 엄마들은 해 줘야 하나도 생각한다.
[젊은 베르터의 슬픔] 청년 괴테가 말하는 열정과 고통
[문]18세기 베르터를 통해 '우리시대의 베르터'에 대해 생각해보고, 현대 시대의 문제와 함께 분석하여보시오.
ㅇ 괴테가 살았던 18세기의 유럽은 정치적으로 시민혁명이 일어나고, 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 괴테를 포함한 당시 시민계급의 청년들에게는 소용돌이치는 사회환경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던 이른바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당시 25살의 괴테는 자신이 짝사랑 하였던 샤를로테 부스와의 이루지 못한 인연으로 사랑의 아픈 상처를 경험하였다. 그리고 그의??친구 예루잘렘이 유부녀와의 이룰수없는 사랑의 고뇌와 귀족 계급사회의 차별과 냉대로 인한 삶에 대한 회의로 격심한??우울증에 빠지고 결국 권총자살로 젊은 생을 마감하였다. 괴테는 자기가 경험하였던 슬픔과 자기 친구의 비극이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하게 된다. 당시 대다수의 시민계급 젊은이들은 귀족계급 처럼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직업을 선택할 가능성을 가지지 못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우울한 정서에 빠져들기 쉬었던 환경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괴테 자신의 경험을 모티브로 하여 젊은 베르터의 슬픔을 집필하게 되었고, 당시태동하고 있던 유럽의 시민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되었으며, 이 작품으로 괴테는 일약 유명작가가 되었다. 오늘날의 한국의 젊은세대들은 산업화 이후의 저성장 경제하에서 전례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그들은 부모세대와는 달리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하였으나 고질화된??청년실업, 부동산가격의 앙등으로 인한 전세난등으로 무직장, 무주택, 무결혼이라는 이른바 삼무의 고통에 직면하고있으며. "꿈을 일은 세대"라고도 불리우고 있다.?그 주요 원인중의 하나는 요즈음 젊은세대들에게는 사회가 통념적으로 요구하는 삶의 기준 즉, 직장, 아파트, 가구등 모든 것을 미리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인것 같다. 그래서 부모세대가 이를 대신 갖추어 주지 못하면 스스로가 이를 갖출 때까지 차일피일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 채 무작정 기다리는데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무기인 젊음을 낭비하지 말고??꿈이 사라지기 전에 행동에 옮기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만약 요즘 젊은이들이 베르터의 경우와 같은 사례를 겪는다면 괴테당시와는 달리 사회적 윤리적 장애가 없는 환경이니까 두사람이 함께 애정도피라도 결연히 감행할 수있을 것이다. 그러나??이해타산에 밝은 요즘 세대에게 그러한??용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들은 아파트 전세값과 자기봉급 그리고 생활여건이 안되어 있으므로 그것들이 완비될 때까지 현상유지하면서 고민하지 않을까? 오늘날 괴테같은 소설가가 한국에 있다면 "젊은 베르터의 기다림"이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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