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소개]
목민심서는 조선 순조 18년에 정약용이 전남 강진의 유배지에서 저술한 것이다. 전체를 12강 72조로 나누어 목민관의 생활을 총망라하고 그 책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시의 정치제도는 물론 사회상을 상세하게 알 수 있어 그 시대 사람들의 사고방식까지 전해준다.
[저자] 정약용 (1762~1836)
본관 나주(羅州). 자 미용(美鏞)·송보(頌甫). 초자 귀농(歸農). 호 다산(茶山)·삼미(三眉)·여유당(與猶堂)·사암(俟菴)·자하도인(紫霞道人)·탁옹(籜翁)·태수(苔叟)·문암일인(門巖逸人)·철마산초(鐵馬山樵). 가톨릭 세례명 안드레아. 시호 문도(文度). 광주(廣州)(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출생이다.
1783년 회시에 합격, 경의진사(經義進土)가 되어 어전에서 《중용》을 강의하고, 1784년 이벽(李蘗)에게서 서학(西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책자를 본 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789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가주서(假注書)를 거쳐 검열(檢閱)이 되었으나, 가톨릭교인이라 하여 같은 남인인 공서파(功西派)의 탄핵을 받고 해미(海美)에 유배되었다. 10일 만에 풀려나와 지평(持平)으로 등용되고 1792년 수찬으로 있으면서 서양식 축성법을 기초로 한 성제(城制)와 기중가설(起重架說)을 지어 올려 축조 중인 수원성(水原城) 수축에 기여하였다.
이듬해 병조참의로 있을 때 주문모(周文謨)사건에 둘째 형 약전(若銓)과 함께 연루되어 금정도찰방(金井道察訪)으로 좌천되었다가 규장각의 부사직(副司直)을 맡고 97년 승지에 올랐으나 모함을 받자 자명소(自明疏)를 올려 사의를 표명하였다. 그 후 곡산부사(谷山府使)로 있으면서 치적을 올렸고, 1799년 다시 병조참의가 되었으나 다시 모함을 받아 사직하였다. 그를 아끼던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1801년(순조 1) 신유교난(辛酉敎難) 때 장기(長鬐)에 유배, 뒤에 황사영 백서사건(黃嗣永帛書事件)에 연루되어 강진(康津)으로 이배되었다.
그 곳 다산(茶山) 기슭에 있는 윤박(尹博)의 산정을 중심으로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18년간 학문에 몰두, 정치기구의 전면적 개혁과 지방행정의 쇄신, 농민의 토지균점과 노동력에 의거한 수확의 공평한 분배, 노비제의 폐기 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학문체계는 유형원(柳馨遠)과 이익을 잇는 실학의 중농주의적 학풍을 계승한 것이며, 또한 박지원(朴趾源)을 대표로 하는 북학파(北學派)의 기술도입론을 받아들여 실학을 집대성한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시재(詩才)에 뛰어나 사실적이며 애국적인 많은 작품을 남겼고, 한국의 역사·지리 등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여 주체적 사관을 제시했으며, 합리주의적 과학정신은 서학을 통해 서양의 과학지식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1910년(융희 4) 규장각제학(提學)에 추증되었고, 1959년 정다산기념사업회에 의해 마현(馬峴) 묘전(墓前)에 비가 건립되었다. 저서에 《정다산전서(丁茶山全書)》가 있고, 그 속에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마과회통(麻科會通)》 《모시강의(毛詩講義)》 《매씨서평(梅氏書平)》 《상서고훈(尙書古訓)》 《상서지원록(尙書知遠錄)》 《상례사전(喪禮四箋)》 《사례가식(四禮家式)》 《악서고존(樂書孤存)》 《주역심전(周易心箋)》 《역학제언(易學諸言)》 《춘추고징(春秋考徵)》 《논어고금주(論語古今注)》 《맹자요의(孟子要義)》 등이 실려 있다.
국가사회의 기본이 되는 주춧돌 역할은 항상 필요하고 기본이 부실하면 사회곳곳의 틈이 생겨 갖은 병폐와 부실이 동반된다.
온고지신이 아니더라도 정치,경제,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보고 배울 옛 서적은 우리 일상에 곧바로 적용하지는 못할지라도 참고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런 점에서 다산의 목민심서는 오늘날 공직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귀감이 되며 참고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되며,또한 이런 학습컨텐츠는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된다. 청렴과 도덕, 법률 등 세분화하지 않더라도 자구 하나하나가 경전이라 할수 있을것이다. 목민심서는 다산의 경세유표,흠흠심서와 더불어 대표적 저서이다. 공직자의 직무자세와 몸가짐에 대한 일종의 메뉴얼이라 할수도 있겠다. 지방자치제이후 병폐는 지자체장의 각종 이권 개입과 통제불가능한 인사권 등이 대표적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옛 관리나 현재의 공무원이나 백성 또는 시민을 대하는 자세의 기본은 같을것이다. 공무원들의 준법의식과 윤리의식은 공복으로서의 기본 자세이고 갖추어야할 덕목이다. 강의 내용 하나하나가 200년전의 생각이 아닌 현재의 시각으로 서술된 것 같은 목민심서는 현시대에도 그대용 적용 가능할 듯하다. 공직자로서의 자세를 가다듬는 계기가 됨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목민심서] 다산(茶山)의 애민(愛民)사상과 휴머니즘
1.바른 몸가짐(飭躬)
일상생활을 절도 있게 하고, 옷차림은 단정히 하며, 백성들을 대할 때에는 장중하게 하는 것이 옛날부터 내려오는 수령의 도(道)이다.
밝기 전에 일어나서 촛불을 밝히고 세수하며 옷을 단정히 입고 띠를 두른 후 조용히 앉아서 정신을 함양한다. 얼마쯤 있다가 생각을 풀어내어 오늘 해야 할 일들의 순서를 정한다. 제일 먼저 무슨 공문을 처리하고, 다음에는 무슨 명령을 내릴 것인가를 마음속에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는 제일 먼저 할 일을 잘 처리할 방법을 생각하고, 다음 할 일을 잘 처리할 방법을 생각하되, 사욕을 끊어버리고 하나같이 천리(天理)를 따르도록 힘써야 한다.
공사에 여가가 있거든 반드시 정신을 모으고 생각을 안정시켜 백성을 편안히 할 방책을 헤아려내어 지성으로 잘되기를 강구해야 한다.
치현결(治縣訣)에서ㅗ는 “벼슬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두려워할 외(畏)‘ 한 자뿐이다. 의(義)를 두려워하고 법을 두려워하며 상관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두려워하여 마음에 언제나 두려움을 간직하면, 혹시라도 방자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니, 이로써 허물을 적게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정요(政要 )에서는 “벼슬살이에는 석 자의 오묘한 비결이 있으니, 첫째는 ‘청(淸 , 맑음)이고, 둘째는 ’신(愼, 삼감)‘이며, 셋째는 ’근(勤, 부지런함)‘이다”라고 하였다.
일을 처리할 때 언제나 선례만을 좇지 말고, 반드시 백성을 편안히 하고 이롭게 하기 위해서 법도의범위 내에서 변통을 도모해야 한다. 만약 그 법도가 나라의 기본 법전이 아니며 현저히 불합리한 것은 고쳐서 바로잡아야 한다.
2. 청렴한 마음(淸心)
청렴은 수령의 본래의 직무로 모든 선의 원천이며 모든 덕의 근본이다. 청렴하지 않고서 수령 노릇을 잘할 수 있는 자는 없다.
뇌물은 누구나 비밀스럽게 주고받겠지만, 한밤중에 주고받은 것도 아침이면 드러난다.
아전들은 늘 “이 일은 비밀이라 사람들이 아무도 모릅니다. 퍼뜨리면 제게 해로울 뿐이오니 누가 감히 퍼뜨리겠습니까?”라고 말한다. 그래서 수령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뇌물을 흔연히 받지만, 아전은 문을 나서자마자 마구 떠벌려 자신의 경쟁자를 억누르고자 하니, 그 소문은 삽시간에 사방으로 펴지건만 수령은 깊이 들어앉아 고립되어 있어서 전혀 듣지 못하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양진(楊震)이 형주자사로 있을 때 왕밀(王密)이 창읍(昌邑 )의 수령을 제수받고서 밤에 금 열근을 품고와 내어놓으면서 “어두운 밤이라 아무도 모릅니다”라고 말하니, 양진이 “하늘이 알고 신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아는데, 어찌 아무도 모른다고 하오”라고 대답하자, 왕밀이 부끄럽게 여기고 물러갔다.
과격한 행동과 각박한 정사(政事)는 인정에 맞지않아 군자가 내치는 바이니 취할 것이 아니다.
정선은 “사대부들이 덕을 손상하게 되는 것은 이름을내려는 마음이 너무 급한 데서 오는 일이 많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정선이 말하기를, “전에 어른들의 말씀을 들으니, 상관이 탐욕스러우면 백성은 그래도 살길이 있으나,청렴하면서 각박하면 곧 살길이 막힌다 하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청렴한 관리의 자손이 많이 떨치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각박함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내려오는 잘못된 관례는 고치도록 결심하고, 혹 고치기 어려운 것이 있으면 나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관아의 비용으로 쓰기 위해 자질구레한 명목으로 백성들에게 거둬들이는 돈은 결코 관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이런 종류의 예는 일일이 들 수 없으니, 모름지기 수령된 자가 의리를 헤아려서 천리에 어긋나고 왕법(王法)에 거슬리는 일은 절대로 자신이 범해서는 안된다. 혹 여러모로 구애되어 혁파하기 어려운 것은 비록 고칠 수는 없더라도 나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
무릇 자기가 베푼 것은 말도 하지 말고 덕을 주었다는 표정도 짓지 말며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도 하지 말 것이다. 또한 전임자의 허물도 말하지 말 것이다.
청렴한 자는 은혜를 베푸는 일이 적어서 사람들이 이것을 병통으로 여긴다. 스스로 자신을 책망하는 데 무겁게 하고, 남을 책망하는 데 가볍게 하는 것이 옳다. 청탁이 없으면 청렴하다 말할 수 있다.
[목민심서] 다산(茶山)의 애민(愛民)사상과 휴머니즘
목민심서의 내용 중 현재 상황에서 적용 할 수 없는 것이 없겠지만 특히 적용 가능하면서도 반드시 적용되어야만 하는 것을 한가지 꼽는다면 '청렴'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직자가 청렴하지 못하여 뇌물을 받았다면, 반드시 그 뇌물을 준 사람이나 집단의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 밖에 없고, 그 결과 어떤 혜택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나 집단은 배제되고, 종국적으로는 그 부패가 드러나 공직자 본인은 징계를 받게 되고, 심각할 경우 민형사상 책임까지 짐으로써 본인 뿐만아니라 국민의 공직에 대한 불신감을 높혀 신뢰도가 추락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공적으로 추진하는 여러 일에 대해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결국 공직자 한 명의 청렴하지 못함이 국가와 국민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여 종국적으로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을 저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청렴'이야말로 공직자의 삶에 반드시 적용해야 하는 것이고, 청렴한 공직자만이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목민심서] 다산(茶山)의 애민(愛民)사상과 휴머니즘
애민사상은 백성을 섬기는 자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이라 하겠다. 현 시대에 맞게 조금은 각색이 되어야 하겠지만 백성을 대하는 근본이념은 계승 되어야 할 것이다.
청렴한 삶, 가정을 먼저 올바르게 이끄는 제가, 공공의 재산을 자신의 재산과 같이 여겨 아끼고 올바르게 사용할 뿐 아니라 베풀어야 할 곳(사람)에게는 풍족하게 베푸는 행정, 준법은 법 집행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백성의 안위가 목적임을 생각하여야 함, 재해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이 최고의 행정이겠으나 어쩔 수 없이 재해를 입은 백성에 대해서는 최선을 대해 돌보는 것이 국가와 사회의 책임임, 지방에 감춰져 있는 인재를 발굴하여 중앙에 천거하는 것이 지방 관리의 큰 임무이며 이를 온전히 받아 적절한 곳에 배치하여 백성을 다스려야 할 것임, 죄는 처벌하되 죄인(인간) 자신만은 미워하지 말고 공평하고 인간적으로 법을 집행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다산 정약용의 애민정신은 반드시 현 공직자가 숙지하여 계승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 우리의 자산이다 하겠다.
[목민심서] 다산(茶山)의 애민(愛民)사상과 휴머니즘
목민심서는 고금의 여러 책에서 치민에 대한 도리를 논술한 책이다.
저자인 다산 정약용은 조선 순조 시대 학자로서 실학을 대표하는 학자이다.
우리 나라와 중국의 역사 서를 비롯한 여러 책에서 자료를 뽑아 수록하여 목민관이 여러 일을 함에 있어서의 일의 처리방법, 사람을 대할 때의 몸가짐 등을 아주 세세하게 예를 들어서 목민관의 자세를 알려주고 있다.
이를 토해 지방의 관리들의 폐해를 제거하고 지방 행정을 쇄신하려고 한 것이다.
목민심서는 현대에서도 적용이 된다. 물론 지칭하는 것이나 정치를 함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으나 목민관으로서의 자세와 백성을 위한 마음에 있어서는 현제 우리 공무원의 자세를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정치를 하시는 분들이 목민심서가 좋은 책이라고 말한 것을 본적이 있다. 과연 그들은 목민심서를 읽었을까? 공무원들이 이 글을 읽고 그 뜻을 잘 생각해서 자신의 마음을 다졌으면 하는 생각이든다. 말로만 좋은글이 아닌 그들이 정말 목민심서를 읽고 느꼈으면 한다. 그러면 이사회가 좀더 나아지지 않을까? 지금 같은 정치 현실에서 한국의 미래는 과연 밝은 것인가에 대한 거창한 생각도 한다. 목민심서는 말 그대로 관리들의 백성에 대한 올바른 `정치 지침서`이다. 정약용은 당시 조선의 관리들의 악마적 수탈과 부패에 반기하여 관리들에게 올바른 윤리의식을 심어주고자 책을 저술하였다.
목민심서 강의를 듣고 공직자로서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국가의 재정을 좀먹지않게 하게 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목민심서] 다산(茶山)의 애민(愛民)사상과 휴머니즘
200년 전의 저서 목민심서를 공부하면서 당시의 시대상을 새로 생각해보고 또 지금과의 차이점은 무었인지 많이 생각했지만,결국 당시나 지금 모든 사람이 살아 가는 올바른 방법은 과거나 현재 모두 똑 같다고 생각한다.정치의 본질이 "백성이 사람의 아들로서 태어난 것에 대해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라고 했듯이 "사람답게 살아 갈 수 있는 천부적 인권보장"이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 한다.오직 경제발전만이 지상최대목표로 앞만 보고 달려 왔던 우리의 현실앞에는 지금까지 전혀 경험하지 못하던 이상한 일들이 계속이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전혀 상대에 대한 배려없이,또 공익보다는 사적이익이 우선시되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그냥 지나치듯 방치된 사회는 더이상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지금 선진국의 문턱에선 우리사회도 좀 더 선진화된 의식,즉 내가아닌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정서가 더욱 필요할 것이다.사회 각지에서 모든사람이 자신의 위치에서 도리를 다하게 될 때 보다 더 선진화된 복지국가가되는 것이라는 것을 목민심서를 통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목민심서] 다산(茶山)의 애민(愛民)사상과 휴머니즘
공직자로서의 청렴성은 어느 시대에서나 반드시 필요한 정신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청렴성을 갖춘 공직자는 매사에 헌신적이며 국민을 위한 공복으로서의 충실한 마음가짐과 사명감으로 공정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황폐해지고 있는 시점에서 국민의 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종직자의 가치념 정립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며 도덕적 정신적 가치추구를 중요시 했던 이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속에 공직자상 정립이 확고하게 담겨져 있어 현 시대와의 비교속에서 공직자와 사회지도층, 그리고 가진자의 사회적 책무는 그 사회를 건강하게 지탱하는 생명수와도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름 강의시간이 좀더 많았으면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공직자로서 반드시 지켜야할 내용 위주의 강의에 매우 성실하게 임할 수 있었다. 시간이 되는대로 목민심서를 다시한번 정독하여 남은 공직생활을 정약용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수행하여 더 청렴하게 많은 애민사상을 가지고 국민을 위한 진정한 공직자의 길을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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