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길(山 능선)

서초동,반포대교,중량교,청계천,남산

능선 정동윤 2015. 10. 11. 17:50

일요일,서초동 내가 일하는 사무실 근처에서 결혼식이 있어

느긋하게 늦잠까지 잔 뒤에 결혼식에 참여하였고,식사 후

친구들과 커피 한 잔을 하며 잠시 환담을 나누다가 길을 나섰다.

오늘 일정은 이곳에서 반포대교를 건너 중량천을 거쳐 청계천을

종주하여 집으로 갈 계획이다. 대충 4시간 정도 예정으로.

 

 

법원 앞 '정곡'마을 표시석을 출발지로 삼았다.

서울 거리의 소요자처럼 서울의 구석구석을 찾아 다니며 도시를 탐구하고

서울의 옛문화를 즐기며 발품을 팔며 다닌다.

 

서리풀공원과 몽마르뜨공원을 잇는 누에다리.

한동안 점심시간마다 두 공원을 왕복하여 산책을 즐긴 적이 있었다.

근처에 뽕나무도 여러 그루 심겨져있다.

벼룩시장,명칭은 에코브릿지페스티벌,

집 안에 있는 쓰지 않는 물건들을 가져나와서 파는 행사다.

별 일도 아닌 일에 지나친 준비와 비용이 투입된 것 같다.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노래하는 가수,

오늘은 날씨도 도와주지 않았다.

중고 물품 몇 점 팔기 위해 도로를 차단하면서까지 요란한 행사를 한다.

각종 편의 시설을 설치하며 도우미 인력도 채용하여 잔치를 벌였는데

손님이 없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일에 모양새를 갖춰 홍보하며 일을 벌이는

한쪽으로 쏠리는 행정 탓이 아닐까?

 

북한산과 한강은 내 발길의 단골이 되었다.

산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에서 거시적 안목을 키워보고

강물의 흐름을 바라보며 미시적 현상을 관찰하며 자연의 조화를 익힌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선거에 나올 사람들의 공적을 만들어 주는 행사처럼 보여진다.

필요에 의해 자생적으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고 누군가의 기획에 의해

의도적으로 동원하고 일을 교묘하게 포장한 부자연스러운 현상으로만 보인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구축물인 다리는 흔들리면 안된다. 단단하고 강력해야 한다.

그러나 내 몸의 다리는 많이 흔들리고 많이 움직여야 한다.

내 다리는 오장육부를 흔들어야하고 혈관이 막히지 않도록 에너지를 소비해야한다.

전혀 공해가 없는 내 안의 충분히 에너지를 힘껏 소진시켜야 한다.

 

한강변엔 물억새도 상당히 많이 심어져 있다.

물억새에 비하여 갈대는 나락처럼 알갱이가 달려 무게감이 다르다.

강물을 바라보며 바람에 반응하는 갈대가 처연해 보인다.

좀작살나무의 보라색 열매의 넉넉함이나 물억새의 가벼움이 아닌

진지하고 의미심장한 자세로 거슬러 오르는 물결따라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비둘기들이 데모를 하고 있다.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하여 땅바닥을 쪼는 일을 하지 않겠다!

우리도 높은 나무 가지에 앉아 가을을 만끽하며 성찬을 즐기고 싶다.!

왜 우리는 땅바닥의 먹이만 먹어야 하는가!

 

우리나라에서는 밥그릇을 들고 밥을 먹으면 거지처럼 먹는다고 나무람을 들었는데

일본에서는 밥그릇을 들지 않고 먹으면 소나 개처럼 먹는다고 핀잔을 듣는단다.

비둘기는 땅 바닥의 음식을 쪼는 식습관이 오래된 그들의 습성이다.

그러니 데모하지 마라. 변화는 작은 데모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저렇게 튼튼하고 건장한 다리처럼 나의 지적인 근육도 강력했으면 좋겠다.

파르테논 신전의 우아한 회랑들과는 달리 오직 실용성만을 추구하는 다리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역활을 완벽하게 해내고 있지 않는가?

 

 

 

자연은 직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은 빠르고 효율적인 직선을 좋아하지만 곡선의 필요성을 놓치지 않는다.

곡선으로 휘어진 건축물을 보면 부드러움과 친밀감을 느낀다.

 

나는 기본적인 먹을 것과 잠 잘 곳만 있으면 잘 지내는 사람이 되어간다.

돈이 많이 들지 않는 길을 걸으며 행복해 하고

주변의 도서관에서 넘치도록 읽을거리를 찾아낼 수 있고

약간의 감성을 흔들어 자신을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그 기본만이라도 하루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이 살곶이벌에는 전곶교(살곶이 다리)라는 다리가 있다. 조선 시대 다리는 대개 짧다. 하지만 이 다리는 조선 시대 건축한 돌다리 가운데 가장 길다. 이 장석판교(長石板橋)에 쓰인 이 크고 웅장한 돌들을 어떻게 옮겼을지 궁금하다. 조선의 다른 돌다리들은 창덕궁 금천교처럼 대부분 짧으며 웅장함보다는 아름다움에 치중한 모습이다. 하지만 청계천과 중랑천이 합수돼 한강으로 흘러드는 개울 위에 만든 이 살곶이 다리는 꽤 길고 다리에 얽힌 사연 또한 흥미롭다

이 다리가 놓인 살곶이벌에는 권력을 놓고 부자가 벌인 살벌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함흥에 오랫동안 칩거하던 태조 이성계가 서울로 돌아오다 살곶이벌로 마중을 나온 아들 태종 이방원을 발견하고는 화가 치밀어 화살을 쏘았는데, 이방원이 급히 피하자 화살이 차일 기둥에 꽂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을 '화살이 꽂힌 곳'이란 뜻의 살곶이벌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연려실기술》 <태조조고사본말(太祖朝故事本末)>은 이 사건을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태조가 함흥에서 돌아오니, 태종이 교외에 나가서 친히 맞이하면서 성대히 장막을 설치하였다. 하륜 등이 아뢰기를 "상왕의 노여움이 아직 다 풀어지지 않았으니, 모든 일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차일(遮日)에 받치는 높은 기둥은 의당 큰 나무를 써야 할 것입니다" 하니, 태종이 허락하여 열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로 기둥을 만들었다.

양전(兩殿: 태조와 태종)이 서로 만나자, 태종이 면복(冕服)을 입고 나아가 뵈었는데, 태조가 보고는 노한 얼굴빛으로 가지고 있던 동궁(彤弓)과 백우전(白羽箭)을 힘껏 당겨서 쏘았다. 태종이 급히 차일 기둥에 의지하여 몸을 가렸으므로 화살이 그 기둥에 맞았다. 태조가 웃으면서 노기를 풀고 이르기를, "하늘이 시키는 것이다" 하고, 이에 나라의 옥새를 주면서 이르기를 "네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니, 이제 가지고 가라" 하였다.

태종이 눈물을 흘리면서 세 번 사양하다가 받았다. 마침내 잔치를 열고 태종이 잔을 받들어 헌수(獻壽)하려 할 때에 하륜 등이 몰래 아뢰기를 "술통 있는 곳에 가서 잔을 들어 헌수할 때에 친히 하지 말고 마땅히 내시에게 주어 드리시오" 하므로, 태종이 또 그 말대로 하여 내시가 잔을 올렸다. 태조가 다 마시고 웃으면서 소매 속에서 쇠 방망이를 찾아내어 자리 옆에 놓으면서 이르기를 "모두가 하늘이 시키는 것이다" 하였다""

-서울,한양을 걷다/김용관-

청계천을 복개하는 시절과 나의 청소년기와 겹치지만 청계천 판자촌의 기억은 거의 없다.

대구 신천동의 피난민촌에 살다가 서울로 이사와서는 싸전과 연탄장사를 겸하는 가게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도와 봉투 쌀을 팔기도 하고 연탄을 새끼로 꿰어 낱장으로 팔기도 하였지만

연탄 리어커로 백장씩 배달하기도 하였다.물론 쌀을 자루에 담아 배달하기도 하였고.

청계천 복개 후에야 현대적인 도시생활에 참여 할 나이가 되었다.

 

억지로 청계천의 감상을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시절 물지게로 물을 사오는 일이나

학교 급식으로 옥수수로 찐 빵이나 우유덩어리를 받아

깨물어 먹거나 집에 있는 동생들을 위해 남겨서 가져온 일들은

전국 어디서나 있는 비슷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흐렸다가 비가 내렸고 이제는 맑아져 온다.

수박과 참외,토마토를 먹던 계절은 가고 쿰쿰한 냄새를 풍기는 은행알이 떨어지는 가을이 오고있다.

판자집에 살아도 대궐에 살아도 나이는 똑같이 먹는다.

죽을 때까지 해야할 일을 정해 놓고 건강을 유지하며

조금씩 이루어 나가는 재미는 노년의 즐거움이 되리라.

 

나이가 들어 신체적 능력은 줄지만 여전히 활기차게 삶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지식과 경험이 무르익고 연륜과 지혜가 완숙하여 가능한 일,잘 할 수 있는 일에 몰입한다.

당구을 즐기는 친구도 있고 등산을 좋아하는 친구나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도 있다.

 

모여 사는 물고기들의 활발한 움직임 대신에

홀로 사는 왜가리는 수심에 가득 차 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누구도 원망하지 마라.운명이다..." - 노무현 대통령 유언 중에-

 

행복한 사람은 가진 것을 사랑하고 불행한 사람은 가지지 못한 것을 사랑한다고 한다.

알에서 부화되어 저렇게 덩치가 클 때까지 저 잉어는 가지지 못한 것을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으리라

주어진 환경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며, 욕심 부리지도 않았으리라.

자기 한 몸에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모아두거나 숨겨놓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청계천 맑은 물 속의 잉어를 보러 오시게

초가을 청둥오리와 수양버들 그늘이 한가롭고

뚝방의 이팝나무 까만 열매가 보석 같다네

자네가 오지 않는다면

이 모두가 무슨 소용이겠나.

진정 자네가 이곳으로 날 찾아 온다면

이 또한 무슨 소용이겠나.

혼자 걷는 길이 쓸슬하기도 하네.

 

지금의 서울은 한강이 중심으로 흐르지만 조선시대엔 도성 중심에 흐르는 청계천이 있었다.

인왕,남산,낙산,북악의 물줄기가 모두 청계천으로 내려왔다.

청계천은 조금 걷다 사진만 찍고 가는 관광객이 아니라면 길게 걸어보아도 좋다.

약 8키로미터 정도지만 정조대왕 능행의 반차도가 그려져 있고 궁중음악이 흘러나오기도 하며

인근 재래시장으로 올라가 요기를 하기도 하면서 빈손으로 와도 소풍을 즐길 수 있다.

<끝>

이하 청게천 업사이클 페스티벌 작품들이다.

말하자면 재활용 소재로 만든 물건들을 전시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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